얼마나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림자가, 하면서 이모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보았던 것입니다. 현관 쪽으로 늘어진 내 그림자의 끝 부분이 종이 귀를 접은 것처럼 바닥에서 솟구친 채로 팔락이고 있던 것을 말입니다.  (p.71)

그래서 내 그림자가 일어섰을 때, 라고 여 씨 아저씨가 말했다.

녹아서 팥물이 되어 버린 빙수를 마지막 한 수저까지 말끔히 먹고, 그간에 손님이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온 앰프 하나를 고쳐서 보낸 시점에 나온 이야기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일어섰나요?
일어섰지, 나도.
여 씨 아저씨가 새삼스럽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나를 보았다.
나도 살면서 이런저런 사정을 겪었는데 그림자 정도, 솟구치지 않을 수가 있나. 우리 집 현관에서 말이야, 구두를 신고 있는데, 반짝 일어서더라고.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 그 친구 생각도 나고, 모골이 송연하다는 말은 이런 것을 목격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면서 보고 있었어, 뭘 해볼 수가 있나, 그림자에다 대고. 이게 일어선 것이라고 마구 잡아당기는데 내가 좀 근성이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말이야.  (p.44)


                                                                                                                                       백의 그림자. 황정은




개기월식을 떠올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일어서면,
그렇게 오롯이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하면 그리고 기어코 지구가 제 그림자를 따라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우주 끝간 데 없이 가기 시작하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또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지구를 말릴 수는 없겠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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