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감독/정재은)


1. 말이 많은 다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가 하는 말에 자꾸 귀기울이게 된다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가까이 가게 된다
내 앞에 앉은 한 남자는 몸을 점점 스크린 쪽으로 바짝 다가가던데, 스크린밖 그 광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보고 듣기에 충분한 상황임에도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들으려는 행동. 혹은 행위. (행위를 먼저 떠올렸다 행동으로 옮겨가고, 행동에서 다시 행위로, 마지막으로 행위에서 행동으로 이동해 본다)


2. "사람은 늙을수록 철학 공부를 해야 한다. 맑고 초롱한 눈빛으로 죽음을 정면을 마주할 수 있는 위엄을 갖춘 인간이 되고 싶다."
하고 말하던, 건축가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던 카메라가 물러나 당신을 비춰주는 햇빛을 손으로 받치며 감탄하는 장면을 잡았을 때, 살짝 흔들리던 카메라.   


3.
“문제도 이 땅에 있고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에게 있다.”
제대로 배운 의식 있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이유, 끌림이 당연하다면.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한다면. 그렇다면.  

정기용 건축가를 보면서 기자 리영희를 간간이 떠올렸다.


4. 카메라가 좀 흔들리고 포커스가 좀 덜 맞더라도 상황을 완벽하게 담지 않아도 얘기하려다 말고 또 말아도, 답답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영화의 리듬을 내가 탔느냐, 나와 잘 맞느냐 하는 것. 


5. 추리고 추린다면 이 컷은 꼭 없어도 될 것인데 굳이 왜 붙였을까 싶은 순간, 이 장면을 선택하고 싶었을 감독의 마음을 내가 느낄 때.


6. 장면과 컷 사이는 좀 거칠어도 시퀀스 사이와 거리는 예민하고 섬세했다.


7. 갈등이 일렁-거릴랑말랑하며 긴장을 좀 자아내는가 싶지만 끝까지 밀어 부치려는 연출의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집요함이 없다. 욕심이 없다. 역으로, 연출자의 집요함과 욕심이 필요하지 않다.

다큐란 무엇인가?


8. 다큐를 보면서 /보여주지 않은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에 습관이 들었다.  

하지만 이 다큐를 보고도 최종본에 나오지 않은 촬영분이 궁금하지 않았던 건,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욕심내는 것보다 소박하고 담백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살면서 느끼듯, 배우듯.


9. 제작일기를 몽땅 읽고 간 것이 다큐를 보는 데에 도움이 됐다. 누구는 방해됐겠다 할 지도 모르겠다. 영상 자체로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다큐에, 이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 


10. 건축가 정기용.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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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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