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책들 읽는 중.

글쓰기에 관한 서신집인 <칼 같은 글쓰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무엇을 향해 가는 지를 아는 작가들. 그 내용이 내부 아닌 밖을 향해 열려 있고 사명과 책임이 담겨 있다면 나는 항상 감동하고 만다.

 

1.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F.-Y.J.) : 그렇게 작업하도록 당신을 이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인가요? 과거를 해명하고 현재와 자신을 연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인가요? 글로 남기지 않은 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인가요?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시도에는, 기억을 통해 시현되는 작업에 기초를 둔 다른 자전적 시도(샤토브리앙, 레리스, 프루스트의...)처럼 암흑에 덮여 있는 지대들을 조금씩 채워나감으로써 살아온 삶 전체를 '총망라'하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앞으로 쓰게 될 텍스트들에서도 그렇게 작업에 임할 건가요?

아니 에르노(A.E.) : 내 삶의 암흑지대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샅샅이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내 과거는 그 자체로서는 내게 특별한 흥밋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독특한, 그러니까 전적으로 유일무이하다는 의미에서의 독특한 존재로 생각한 적은 거의 없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결정 그리고 다양한 어법의 총합으로서, 끊임없이 세상(과거의 세상이든 현재의 세상이든)과 소통하고, 독특한 주관성-그럼요, 물론이죠-을 형성하는 전체로서의 나 자신입니다. 하지만 좀더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현상이나 메커니즘을 재발견하고 들춰내기 위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주관성을 사용합니다. 솔직히 이 표현방식이 만족스럽지는 않군요. 때때로 나는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한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사물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싶다." 내가 이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아마 <사건>의 결말인 것 같아요. 거기서 나는 내 삶 전체가 사람들의 삶과 생각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모두에게 이해 가능한 보편적인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의 문장이 생각나는 군요. "그는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타인들은 그 속에서 생각하곤 했다." 내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 문장입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글쓰기의 최종 목적은, 다시 말해 내가 열망하는 이상적인 글쓰기는, 타인들-다른 작가들, 그러나 그들뿐만이 아닙니다-이 내 안에서 생각하고 느꼈듯, 내가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2.

진실을 저버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자전적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죠. 반대로 소설이라 불리면서도 진실에 가 닿은 텍스트들도 많습니다.

   

3.

이러한 성찰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겉으로는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는 하나의 생애, 바로 내 아버지의 생애를 떠올리는 유일하게 정당한 방법, (내 아버지와, 나를 배출했고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 즉 지배받는 자들의 세상을) 배반하지 않는 하나뿐인 정당한 방법은, 정확한 사실을 통해, 내가 들은 말을 통해 그 생애의 리얼리티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4.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군요. 이것은 내가 내 출신 사회계층을 배반하고 있다는 감정에 깊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치스러운활동을 하고 있어요. 비록 역시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글쓰기에 바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치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떤 안락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것, 내가 손으로는 한 번도 노동해보지 않은 만큼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써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5.

사물을 진실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시 경험해야 할 필요를 느껴요.

  

6.

전쟁이 끝난 직후의 릴본. 나는 네 살 반쯤 됐다. 테어나서 처음으로 내 부모와 함께 무대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 야외 공연인데, 아마 미군 캠프 안인 듯싶다. 사람들이 무대 위로 커다란 상자를 가져온다. 그러고는 그 속에 한 여자를 꽁꽁 가두어버린다. 남자 몇 명이 여러 개의 긴 칼을 상자 여기저기에 찔러 관통시키기 시작한다. 그 작업은 한없이 계속된다. 어린시절 그 공포의 시간은 끝이 없다. 생각해보면 결국 그 여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무사히 상자에서 다시 나오는데도.

   

칼 같은 글쓰기(L'ecriture comme un couteau)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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