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일상 2012. 4. 11. 09:06

불행해.
오랜만이었다. 이 맑고 투명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은 건. 작년 여름. 파란 블라우스에 감색 바지를 입고 구두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리막길을 내려 가고 있었는데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필. 멀리 보이는 자잘한 건물들 위로 붉은 빛이 감도는 걸 잠시 바라 보다 고개를 숙이고는 구두코를 보고 걸으며, 나도 모르게, 불행해 라고 말했다.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불행하다고 느낀 건. 어떻게 이런 느낌을 처음 가질 수가 있지 싶었다. 이 느낌을 잊지 않아야지 했다. 그 날은 별 일도 없었다. 그냥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일했던 하루였는데 더구나 퇴근도 일찍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감정표현을 뱉어내는 일은 오랫동안 작은 결석들이 모이고 모여 굳은 돌멩이 하나를 뱉어내는 것과 같아서, 배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혀도 아프고 그렇다. 이 돌멩이가 몹시 맑고 투명할 수록 더욱 서럽고 서글프다.
오늘 새벽, 지하철 막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불행해 불행해 라는 말이 입밖으로 뽁 하고 튀어 나오는데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아 서둘러 몰라줘서 미안해 미안해 하고 스스로 달래주고 말았다. 그러고 조금씩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걷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울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사건은, 늘 당황스럽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묻지 않으려고 했다. .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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