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P2012 다큐멘터리 피칭' 프로젝트 선정위원 글 중에서.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달리 실재하는 현실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그 현실은 카메라로 담아내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감독의 작업이 그러한 현실을 작업의 의도에 따라 변형하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감독의 개입 없이 그것은 무한한 현실의 익숙한 반복으로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다큐멘터리 심사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과 ‘대중성’은 선택한 소재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얼마나 참신하게 대중들에게 앎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가로 설정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대중적인 이야깃거리를 넘어선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나 형식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춰서 이번 예심을 진행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포함한 예심의 과정은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발견하는 흥분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떨어뜨려야 하는 아쉬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만큼이나 탈락한 작품도 다큐멘터리로서의 미덕과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설정한 심사 기준에 적합한 작품을 골랐다는 것을 밝혀둔다.

예심에 접수된 총 26편의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 일상, 역사, 휴먼 드라마까지 다큐멘터리가 다룰 수 있는 현실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풍부한 소재에 비해서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에 있어서는 좀처럼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현실과 그것의 대중성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그것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라는 영화형식에 대해서는 너무 관습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이 결정되는 순간 그 현실을 바라보는 관객의 위치가 결정된다는 사실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양식과 형식의 전통을 지녔다. 현실을 담아내려는 치열함이 기존의 양식과 형식의 견고함을 유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치열함은 카메라 앞의 대상에 대한 치열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무엇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는 다큐멘터리 피칭의 장이 해를 거듭할수록 진일보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종 피칭의 기회를 주기로 한 기획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의 소통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과감하고 독창적인 결과를 기대해본다.

'JPP2012 다큐멘터리 피칭' 프로젝트 선정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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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아이> 백연아 감독 제작 노트 중에서.

촬영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만 한 것들.


성열이와 군산촬영을 먼저 하고 나서 수범이 집을 찾아갔는데, 수범이는 정말 평범한 아이같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성열이와는 달리 카메라를 굉장히 의식하고 수줍어하면서도 갑자기 학교까지 와서 카메라 들고 자기를 쫓아다니니까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터뷰할 때는 성열이 생각하고 어른들 인터뷰 하듯이 이것 저것 물어봤다가 완전히 낭패를 봤죠. 쉽게 지루해 하더니 나중에는 완전 삐쳐서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게 평범한 아이들의 반응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중략) 

성열이도 그렇지만, 수범이를 촬영하면서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법이나 다큐 촬영을 할 때 가져야 할 자세 등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성열이를 촬영할 때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예를 들어 타인을 재현한다는 것이 가능한 건지, 그들의 입장에 서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한 건지, 그리고 그런것들을 재현해야 하는 입장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수범이의 경우는 보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것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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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 인터뷰 중에서. 

시몬 엘 하브레 감독이 극장판을 편집할 때 가장 중요시한 건 뭐였나.
내가 편집한 버전을 보고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너는 관객을 자꾸 끌고 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여기 재미있는 일화 있으니까 이거 봐, 이거 봤어? 그럼 이런 일화도 있어.' 관객이 극중 주인공의 삶이 어떤지 상상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호흡이었다. 지금 버전이 다소 느린 속도의 편집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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