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가 무산될지도 모른다. 이런 기사 제목을 보고 잠시 놀랐습니다. 프랑스 문화예술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실업수당 감축에 항의해서 영화제 지원 거부 및 영화제 점거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미 지난 해 유럽 최대 연극 축제인 아비뇽 연극제도 무산시켰습니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 입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요,
꿈에서 혹 깨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칸 영화제, 조금은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요, 하지만, 그 역시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 당연한 사실을 그 뉴스가 다시 깨닫게 해주네요. 영화와 밥, 그리고 우리 영화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004. 04. 24. 정은임의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팟캐스트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이게 아이폰의 가치로움이구나, 감탄하였다. 뒤적이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발견했다. 당시 방송을 할 때에는 들을 생각을 못 했고 후에도 오래도록 알지 못 했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가, 최하동하 감독의 영화 '택시블루스'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는 것. 처음 듣는 순간부터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 그랬다. 슬프게 그려진 서울이란 도시의 이미지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렸다. 서울이 아니라 슬픈 서울의 이미지와. 듣고 싶어졌다. 열 개를 내리 다운을 받아 두고는 잠에 들 때마다 꼭 틀어 두었다. 왠지 따뜻하더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거의 십년 전 만들어진 라디오 방송에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유명인인 그녀가, 그저 유명하기 때문은 아닌데, 그리워졌다. 매끈하지 않은 방송 음질과 제인 버킨을 연상시키는 엷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다. 왜 이 방송이 이토록 오래 회자되는 지 알 것 같았다. 좀 더 깊이 있는 영화 이야기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다. 그리고 좀 더 가치롭고 속정 깊은 이야기들에.
길을 걸으며 듣는데 위의 멘트가 흘러 나왔다. 시그널송과 목소리의 리듬과 그리고 오프닝 멘트. 죽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쉰 후, 안녕하세요 정은임입니다 하고는, "꿈에서 혹 깨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라는 멘트가 이어질 때. 아 눈물을 훅 긷는 말. 영화 이야기도 좋지만 이렇게 마음 쓸어내리는 오프닝 멘트들이 특히 좋다. 내 마음이 무엇을,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해주어서 그래서 쓸어내리게 된다. 이렇게 귀를 쫑긋하고 라디오를 듣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냥 이 모든 것들에서 느껴지는 정은임이라는 사람, 그리고 이 이 방송을 만든 사람들. 내가 느낄 수 있는 그 위치로서의 그들이, 좋다. (이제 사람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조금 전에 또 다른 방송을 들었는데, 게스트가 한참 구로사와 아키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키라의 영화 '란'은 꼭 꼭 스크린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길 하고 거의 마무리 하는 와중 그제서야 게스트인 그가 Film 2.0의 이지훈 편집장이란 걸 알았다. 글만 읽었지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내 인터넷 크롬의 가장 왼 귀퉁이 창엔 살아생전 그가 쓴 글을 엮어 만든 책, '해피-엔드'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읽어야지 했던 거라 까먹을까봐 오래 창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지훈 편집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둘은 코너의 마지막 방송을 아쉬워하며 우리 그동안 한 번도 술을 못 마셨네 하며 대화를 한다. 죽는다는 건 뭘까. 이 세상에 없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얼마나 가까운 걸까, 얼마나 먼 걸까. 닿는 목소리, 닿는 마음, 멀어도 자꾸만 멀어져도 닿아가는 마음들. 어떤 평안.
이지훈 편집장의 마지막 멘트.
이 방송이 나가는 시간이 새벽대고요, 새벽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시간대는 아니죠. 영화가 아무리 이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엔터테인먼트 수단이라 할지언정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일정 부분, 어떤 폐쇄적인 마니아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지금 이 새벽 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되는데. 그런 특별한 사랑, 대중적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특별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에 바라는 영화의 매력이라는 것은, 평생 영화를 짊어지고 가는 영화인들이나 평생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한번쯤은 갖춰볼 만한 조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랑,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새벽 세시에 가까워 가는구나. 냄비 안 고구마들이 익는다. 새벽 세 시에 삶은 고구마들에, 담긴 특별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