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이다

일상 2012. 12. 7. 01:15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잠에 든 지 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방은 뜨겁게 달궈졌다. 순간적으로 나는 내가 왜 이 시각에 불현듯 눈이 떠졌는지를 직감했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배를 접었다. 지난 밤 먹은 소주 한 병과 돼지갈비와 과메기에 전들이 섞여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바닥의 뜨거운 열기 떄문인 걸까. 취한 것도, 체한 것도 아니었기에 당장의 증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엉덩이를 일으켜 화장실로 갔다. 이럴 때마다 항상 오른손을 깨끗이 씻는 것으로 시작한다. 검지 손가락을 특히 신경써서 씻고는 변기 뚜껑을 열었다. 그때부터는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다.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여러 번 찔러 넣었고 음식물이 쏟아져 나왔다. 음식물이 쏟아져 나오기 이전에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음식물은 음식물이 아닌 것이었고 위액과 함께 거의 소화가 된 양분덩어리이자 똥덩어리였다. 가슴과 식도가 타는듯한 고통이 시작됐지만 갑갑함보다는 나았다. 제발 빠르게 끝나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쏟아냈고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덩어리가 변기로 떨어지며 그 무게의 반동으로 일부가 다시 내 이마로 튀어오르자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스스로 우스워하면서도 이렇게 곧잘 토할 때마다 나는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을 떠올리곤 했다. 오랜만에 엄마는 불만을 털어놓으며 뭐라도 잘못되면 내 탓을 할 거라 원망을 했고 난 할 말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계속했지만 지금 이순간엔 그 말에 살을 붙여, 아마 나는 오래 살 지 못 할수도 있으니까 더욱 더 나 하고 싶은대로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라고 뒤늦게 중얼거린다. 토를 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아이 코스프레를 하는 스스로도 좀 지겨워졌다는 걸 느끼며 그보다 더 지겨운 건 스스로를 조소하는 것이란 걸 알았다. 지겨운 반복을 이제는 그만해야 하겠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또 하나 만들기 시작한 건 곧 그 날이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멀미가 심했던 나는 차만 타면 토를 해서 어른들을 곤욕스럽게 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속버스 안이었고 조그마한 나는 검은바지를 입은 남자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그네를 높이 탈 때처럼 울렁거리더니 나도 모르게 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이 다 나를 미워할 거라는 짐작에 눈물까지 쏟아낼 참인데 남자는 등을 토닥이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말없이 바닥의 토를 덮고는 구두로 슥슥 문질러서 본인쪽으로 끌어 닦았다. 슥슥 닦던 그 까만 구두코가 자꾸 눈에 밟혔다. 서로가 남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 이미지 하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래 내일은 당신의 생일이다. 변기에 물을 내리고 이마에 튄 토와 지저분해진 손과 입을 씻고는 방에 돌아와 누웠다. 이젠 목에서 가슴까지 타는듯한 고통이 시작됐다. 엎드려 누워 라디오를 들었다. 한 남자 작가가 라디오 디제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년에 가까워 가는듯한 그의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심각해지고, 심각하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되는 건 사실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자연현상이다. 그럴 만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 자연스러운 거다. 자연현상이다. 사실 와닿지도 않는 이 말을 깨달아보려고 몇 번이고 되뇌이다 다시 잠에 들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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