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저 존재

인용 2012. 12. 10. 16:01

나는 그 숲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깊은 곳, 하늘을 받치고 선 키 큰 나무들과 투명한 햇빛이 큰 품이 되어 껴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의 정적 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면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그루
나무처럼 햇빛에 휩싸인 채 다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라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 이승우, 한낮의 시선 159p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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