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12. 12. 20. 02:40

술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어차피 누가 돼도 다 똑같은 거라고, 냉소적인 그 말이 위로가 될 줄 몰랐다, 순간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동의할 순 없었다. (난 절대 동의할 수 없는) 1번에 투표한 옆사람의 의견에도 끄덕끄덕 했던 내가 용기를 내 말했다. 다 똑같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거라고, 그 정치인도 우리가 만드는 거라고. 정치인이 있고 유권자가 있는 게 아니라, 유권자가 있고 정치인이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절대 냉소적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속은 아프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 무대가 열리는 광화문을 지나면서 친구랑 울었다. 막연하게 속상했는데 오늘은 지난 체감 때문인지 정말 속이 아프다. 

전화 속 그가 말했다. 라히리의 책-파시즘의 대중심리-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놀랍느냐고 했다. 이제부터 우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좀 더 '쎄지라'고 말했다. 다큐를 하는 사람은 쎄야 한다고. 편집 중인 다큐의 어떤 컷들 때문에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그랬다. 그리고 원칙을 이야기해주었다. 투사가 되고 싶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내 천성도 알겠다.  

1번에 투표하는 젊은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말에 그는, 그러니까 니가 순진한 거라고 했다. 또 한 쪽에선, 비정규직 처우에 대해서는 언급도 안 하는 노조에 분노하는 나를 보고 순진하다고 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순진하다고 한다. 이때 나는 어떤 질문을 해야할 것인가. 이런 고민으로 넘어간다. 가령, 순진한 게 죄인가 혹은 이걸 과연 순진함이라 치부해도 되는 것인가 혹은 순진함은 무력한가 - 이런 질문들 말고 완전히 새로운 질문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 뻔한 레파토리의 질문들을 모두 뭉개고 완전히 새로운 질문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외부의 힘이 생기면 좋겠다. 나에게 개입할 무엇,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들 싸움났다. 오늘은 너무 속상하니까 보일라를 켜두고 자야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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