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라에 갔었어 새벽 컴컴한데 역에 떨어졌고 버스 안에서부터 내내 추위에 떨던 몸은 제어할 수 없이 바들거렸어. 외롭고 서글펐지만 이제 여행의 시작이니까, 견딜 수 있었어. 어쨌거나 견딜 수 있는 이유들은 많으니까. 흥정하며 따라 붙는 인도인들과 신경 싸움 할 힘도 없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갔어.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단 말에 내렸고 다시 인적 없는 곳에서 무거운 배낭 메고 내내 헤맸지. 이 곳은 현재 완전한 비수기였어. 오래 계단을 올라 눈에 익은 이름의 숙소를 찾았고 불이 꺼져 있어 영업 안 하면 어쩌나 하며 들어가선 두리번 거리는데 조그만 그림자의 헬로우 하는 소리에 기겁을 했어. 어쨌거나 얼마나 반갑던지. 시계를 보니 일곱 시 그제야 거짓말처럼 창밖이 환해지더라. 난 겨우 방으로 올라가 침낭을 펴고 바로 잠에 들었지. 그리고 오래 올라왔던 계단길을 다시 내려갔어. 모퉁이를 돌 쯤에 낯선 한국인을 만났는데 같이 내려가자고 하길래 따라가다가 인도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 걸 봤어. 홀린 듯 그리로 갔고 개중에 몸이 작고 얼굴이 아주 예쁜 인도 여자 아이가 있었어. 아이 몸인데 얼굴은 성인의 느낌이라 묘한 분위기를 가진 아이였지 예뻐서 빤히 보는데 한국인일 거란 예감이 들더라. 옆에 동행이 머리카락이 정말 예쁘다고 하자 그 아이는 머리를 우리에게 갖다대며 흔들었어. 그러자 아침 햇살에 비치며 반짝거리는데 우리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 내가 혹시 혼혈인이냐고 묻자 그 아이는 아니라며 엄마 아빠 둘 다 한국인이라고 말했어. "엄마 아빠가 바닷가 마을의 시장을 걷다가 인도 물고기를 먹었대요. 그리고 제가 태어난 거예요." 잔뜩 집중하는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하곤 고개를 까딱 끄덕여 보였어 우리는 다시 또 웃었어. 주위에서 함께 웃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왔어. 조금 더 허락했다면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또 어딘가로 끌려 이동하고 있었어. 어쨌거나 반짝거리는 머리칼이 정말 예뻤어. 잠을 아주 조금 잔 후에 맞은 이른 아침의 느낌을 알아? 피곤한 감각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쏟을 떄, 성실한 감각들이 가장 힘을 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