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김영하 작가님이 느낄 수 있는 책임감이 세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소설가로서의 책임이 있을 수 있고요 십 대 아이들에 대한 여기서 묘사된. 또 하나는 취재과정에서 어떤 얘길 들으셔을 텐데 그 얘기를 듣는다는 건 일종의 증언이잖아요 증언을 들은 사람으로서, 청자로서 책임감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소설쓰기 행위와 완전히 무관하게 김영하 작가님이 한국을 살아가는 사십 대 남자니까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셋 중에서 이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어느 책임감이 가장 크셨나요.


김영하
저는 어떤 얘기를 듣든, 아무리 처참하고 아무리 끔찍한 이야기를 듣든 만나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든 간에 소설가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미학적 책임감이죠. 잘 써야 됩니다. 그것이 잘 쓰여져셔 독자들이 그 소설을 읽고 나서 간단하고 쉽게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어야 돼요. 그게 저는 소설가의 유일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걸 읽고 분노한다거나 아니면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아니면 아 십대 애들을 위해서 내가 봉사해야되겠다거나 아니면 우리집 애를 위해서 내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이걸 사람들이 읽고 나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리고 간단한 도덕적인 책무들로 귀결되지 않으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단 십분이라도 삼십분이라도 앉아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걸 못한다면 제가 책임을 느껴야 하고요. 그걸 독자들이 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끼죠. 그렇지만 말씀하신 세 가지 정도의 책임감은 공민적 책임감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이 사회에 책임이 있는데 십대들이 저렇게 됐다니 아니면 가난한 십대들 계급 문제에 대해서 느낄 수 있고 조지 오웰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쪽에 책임감은 거의 느끼지 않는 편이고요. 소설은 누가 그랬잖아요. 복수심으로 써도 안 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도 안 되고 그런 걸 넘어서는 어떤 것이죠.  


<이동진의 빨간 책방 :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작가 편 중에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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