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뭐,이쯤이야

인용 2008. 3. 9. 01:32


이사 온 날
하얀 벽지로 꾸민 팽팽한 방
천장도 벽도 그늘 한 점 없이 환했다
한 달이 지나 한쪽 벽
천장에서 방바닥까지
길게 금 하나 생겼지
또 한 달이 지나니
창틀 모서리에서 금 하나 또 기어나와
신발장 뒤로 숨어들었다
벌어진 틈으로 시멘트가
바싹 마른 맨살을 드러냈다
뭐, 이쯤이야

날이면 날마다 벽과 천장이
올록볼록 울퉁불퉁
벽지 안쪽 사정을 조잘조잘 실토하고
그래도 뭐, 나는 태평했는데

온종일 비 쏟아진 뒤
천장에 갈색 점 하나
멍처럼 번진다
둘,셋,넷,다섯
수심처럼 번진다

벽지 너머에서
커다란 비밀이 발꿈치를 듥
젖은 발을 딛고 있는 듯
다섯 개의 둥그스름한 얼룩이여

조마조마 지켜보는데
그대로 뚝 멈춰 있다
뭐,뭐,저쯤이야

비가 전혀 새지 않는 집은
살아 있는 집이라 할 수 없다네.


               집1, 황인숙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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