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지나고부터 강바람이 불어왔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지낸 며칠 동안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었고 이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강한 볕은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 덕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갠지스강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어느덧 오후의 중반을 넘어섰고 그제야 나는 일어나 길을 나섰다. 강변에서 멀어져 시장길을 거쳐 시내로 들어서자 거리엔 온통 사람들과 자동차와 사이클 릭샤로 붐볐다. 걸었다. 평소에는 목적지가 있는 걸음이었다. 하지만 여행지에 당도한 후 내딛는 걸음은 대부분의 경우 목적지가 없다. 그저 걸어가 볼 뿐이다. 이 길 끝까지 가보겠다 마음을 먹으면 계속해서 걷는다. 나는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걸어 매연과 경적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이 익숙함을 깨는 더 큰 소음 덩어리가 귀를 때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차들은 더욱 빠르게 달리고 사람들도 서둘러 걷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차는 한 덩어리로 엉켜 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강바람이 어느새 여기까지 불어오는 걸까. 하지만 강 앞에서도 나질 않던 물 냄새가 나는 듯했고 그 사이 나만 피해 내렸는지 빗방울들이 여기저기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지금이라도 빨리 발길을 돌리면 비를 많이 맞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서 잡아끄는 정신에도 발걸음을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걸음을 따랐다. 어디서든 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비는 그친다. 계속 걸었다. 모래가 날리고 수십 개의 다른 경적소리가 거리의 허공을 찢었다. 이제 막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거리는 비상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비에 익숙했다. 비가 익숙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냥 계속 걸었다. 비가 이 모든 매연과 경적소리를 잠재울 것이다. 침묵이 시작되고 빗소리만이 거리를 메울 것이다. 바라는 사이 일순간 뒤에서 세찬 비가 사람들을 몰았고 달려오는 사람들에 휩쓸려 나 역시 천막 아래로 옮겨졌다. 아무도 우산을 쓰질 않았다. 우산이 없었다. 비바람 속에서 상인들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였고 노점상인들은 비닐로 좌판을 덮었다. 몇몇은 물건을 지키느라 비바람을 그대로 맞고 서 있었다. 행여라도 좌판의 물건이 젖을까 모서리를 비닐로 더욱 여미고는 꼭 붙들고 있었다. 갑자기 이마를 때리는 무언가가 날아왔는데 송방울만 한 우박이었다. 비닐을 붙잡고 선 젊은이의 얼굴에도 우박이 떨어지자 그는 맞고서도 실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우박을 집어 맞은편 상인에게 던졌다. 주위 사람들 모두 웃었다. 이곳엔 우산이 없다. 이 사람들은 비에 익숙하지 않다.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던 나 역시 일순간 비가 낯설어졌다. 낯설어진 비를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한 방향으로 목을 빼고는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결국 비는 그쳤고 생각보다 짧았던 삽십 여분 간의 일이었으며 그 사이 거리는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지하로 빠지지 못 한 물이 거리 곳곳에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빗물이 좁은 골목의 온갖 똥들과 쓰레기와 자그마한 무엇들을 끌어안고 지금 내 눈 앞의 거리 위에 모여 있다. 물을 건너지 못 하고 서 있는 사람들, 신발을 벗는 사람들, 무심히 건너가는 사람들,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둥둥 떠있는 물건들을 쳐다보던 나는 양말과 운동화를 신은 채 마지못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꺼이, 발을 담궜다. 건너지 않을 수는 없었고 맨발로 건너기엔 게을렀다. 사실 유난떨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태연히 이 상황을 처리하고 싶었다. 티 나지 않게, 이방인이라는 걸 들키지 않게. 앞사람의 등만 보고 내디딘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겨우 열 걸음 남짓을 걸었다. 일순간 모험 후의 짧은 환희와 이내 긴 슬픔이 이어졌다. 나는 비가 익숙한 나라에서 왔고 늘 우산을 쓰고 다녔으며 물냄새에 익숙했지만, 더러운 빗물에 푹 젖은 이 축축한 발의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은 않은 감정들 때문에 자꾸만 슬퍼져서 더 걷지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사이 사람들은 태연히 비닐을 젖히고 바닥을 쓸고 갈 길을 갔으며 경적소리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비는 피할 수 있고 결국 비도 그쳤으나 이 거리 위에서 나 혼자만 무거워하고 있는 듯했다. 이내 매연이 보일 만큼 바짝 마를 이 거리 위에서.  
 
 
2013. 01. 19. 바라나시, 인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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