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여행 2013. 7. 14. 20:43

 침낭에 묻은 먼지 하나까지 손으로 탁탁 털더니 끝부터 조물조물 말기 시작한다. 그 손길이 어찌나 야물고 정성스러운지 침낭이란 것이 아주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그는 가방 안의 물건들을 전부 빼낸다. 하나하나 수건으로 닦아 팩에 빈틈없이 채워 넣고는 끝을 단단히 밀봉해 가방에 하나씩 차곡차곡 넣는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탁탁 털고는 마주 비빈다. 메마른 소리가 났다. 아마 꽤 오래 여행했을 듯한 차림, 낡은 짐. 검소하고 소박했다. 스스로를 가볍게 하는 것이 여행이겠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낮은 자세는 남달랐다. 버리는 것과 비워내는 것의 차이가 있듯이, 그는 버리는 것이 아닌 비워내는 사람 같았다. 막 물을 비워낸 뒤의 항아리처럼, 그의 몸에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짐을 정리하는, 크고 까맣고 마르고, 거칠어진 손. 거친 게 아니라 거칠어졌을 손. 다양한 바람과 공기가 스며 있을, 변함없이 자신의 짐들에겐 다정한 손.

2012-02-10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