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비친 인권풍경] 서울시정책으로 제2의 용산이 될까 두렵다

-시청광장 지하보도 상인들의 생존권은 어디에


윤미


서울시는 모순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청광장 지하보도 상인회 회장 안현수 씨는 서울시의 공개경쟁입찰방식에 대해 그 목적과 방식이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2002년, 시내 29개 지하도 상가 2780개의 점포에 대해 기존의 일대일 계약 방식에서 민간 위탁 운영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상인들은 반발했다. 상인들의 반대로 사태는 일단 5년 재계약으로 대충 마무리됐지만 5년이 지나고 계약이 만료된 작년 4월 또 다시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결국 서울시는 계약 만료 후에도 나가지 않은 상인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했고, 상인들 역시 민간위탁운영에 있어 서울시가 특정 업체와 유탁한 의혹이 있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고소했다.

서울시와 상인연합회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현재 강남역, 강남터미널 1,2,3구역과 영등포역 5군데만 민간위탁 하기로 결정된 상태다. 나머지 24개 지하도에 대해서는 3년 계약 연장을 했다. 하지만 나머지 24개 지하도 상가도 연장 계약이 완료되면 위탁 경영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상인들은 서울시가 몇 십 년 간 점포를 꾸려온 데에 대한 존중과 보상은 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권리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 한 채 쫓겨나야 할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사진설명시청광장 지하상가 여기저기에 서울시 정책을 비판하는 문구와 포스터가 붙여있다.


대기업에게 유리한 경쟁입찰이 기회균등인가
다음은 지하도상가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시설공단이 일반 경쟁입찰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힌 이유이다.

“지하도상가는 운영권이 소수에 독점되어서는 안 되는 공유 재산으로 일반시민 누구라도 운영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특히 지하도상가의 관리에 사용되는 재원이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만큼 일반경쟁입찰을 통한 기회균등이 제동되어야 한다. 서울시 지하도상가 임대료는 현재 지하철 역사 등 인근주변 상가보다 최소 2배 이상 저렴하다. 이를 현실화시켜 공유재산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서울시의 입장은 기회균등을 위해 공유 재산을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이기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걸까? 안현수 회장은 “공개경쟁입찰은 공정한 방식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서민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는 거라면 개별점포입찰을 해야 한다.” 고 말한다.

시청 광장 지하보도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ㄱ씨는 “공개입찰을 한다는 게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큰 그룹에 민간위탁을 해서 전체를 떠맡아서 운영권을 주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서민들은 비싸서 못 들어온다.” 공개경쟁입찰을 하는 순간 불공정한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공개적으로 누구나 경쟁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입찰에 참가하고자 하는 업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대기업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시가 특정업체와 유착했다는 의혹 사건이 발생하면서 서울시에 대한 상인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차라리 상인단체에 공사를 일대일 계약으로 맡기라는 것이 상인들의 요구이지만 서울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하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ㄱ씨는 “공유재산을 얻어서 오래 있었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도록 자연스럽게 로테이션 되는 거면 이해가 되고 또 그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서울시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만인이 사용할 수 있게끔 공개입찰을 하겠다고 하니까 서민들이 듣기에는 되게 좋아 보인다. 그렇게 서민들이 써내면 들어가겠구나 싶은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비싸서 못 들어간다.”

실제로 대구 지역 중심가인 동성로 중앙지하도상가가 2000년 공개경쟁입찰에 따라 민간회사가 리모델링을 한 뒤 보증금과 임대료가 배로 뛰고 규모가 늘어 점포수도 줄어들었다.


'제소전화해조서'는 기존 상인을 내보내는 절차일 뿐
서울시의 태도에 의혹을 제기한 또 다른 사건은 ‘제소전화해조서’다. 공개경쟁입찰이 확정된 5개 구역 외의 24개 구역은 3년 계약 연장이 결정됐다. 이때 연장 조건으로 서울시는 상인들에게 제소전화해조서 작성을 제시했다. ‘제소전화해조서’란 명도소송의 확정판결문과 같은 효력을 가진 문서다. 3년이 지나고 계약이 만료돼도 상인들이 나가지 않으면 지금처럼 명도소송까지 갈 필요 없이 상인들은 내보낼 수 있는 문서이다.

이에 대해 지하상가에 문구점을 운영하는 안현수 씨는 “이건 노비문서와 마찬가지다. 오세훈 시장을 두 번이나 직접 찾아가서 본인이 이걸 상인들에게 받아오라고 지시했는지를 물었다. 겉으로는 상인 보호한다고 하면서 이참에 상인들을 깨끗이 몰아낼 참” 이라며 “이젠 타협도 없고 무조건 나가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취지인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 보호에 위배되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상인에게 강제로 이행각서를 요구하려는 내용이 현실 법의 취지에 어긋나고 임차인의 권리를 배제 또는 제한하는 내용”이라며 시정 권고조치를 내렸다.

사진설명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을 비판하는 포스터


서울시는 다시 제2의 용산 참사를 불러오려는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상황에서 이제 상인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권리금 보상이다.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상인들은 보증금만 받고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ㄱ씨는 “나도 집 한 채 값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다. 강남은 5억 넘기도 한다고 하고,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입찰해서 팔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상인 대부분이 많은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 서울시는 상인들의 권리금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ㄱ씨는 “권리금을 주고받는다는 걸 서울시가 몰랐을 리가 없다. 지금껏 아무 제재 없다가 이제 와서 법대로 한다는 이유로 상인들 먹고 사는 문제는 다 무시하고 나가라고만 한다.” 며 서울시가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해결하는 태도라며 비판했다.

도시지하상가 상인 집회에 참가한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위탁업체만 떼돈 벌고, 임대료 올리고 상인들의 재산권은 박탈된다. 인천시는 상인조합에 지하상가 관리를 넘겼다. 왜 인천처럼 하지 못하는가.“라면서 오세훈 시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지하도상가 상인들의 문제는 결국 영세상인의 문제다. 상인들은 그러잖아도 장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와 싸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매우 지쳐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상가를 제외하고는 경기불황이라 장사가 안 된다. 말로는 영세상인들 보호하자면서 실제로 하는 정책은 어떤가. 지금 여기 시청 지하도 상인들 중에는 신용불량자도 많다.” (상인 안현수 씨)

“사실 여기 시청 지하상가 상권도 죽었다. 거기다 권리금 보장도 못 받고 서울시가 나가라고 한다. 나도 빨리 대책을 세워서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외국 같은 데는 전통적으로.. 뭔가.. 역사를 인정해주고 상가를 보호해주는 게 있는데, 서울시 정책은 옛날 건 다 무시해서 없앤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일만 한다. 저기 건물섰다. 저기 뭐 심었네. 서민들이 어려운 건 눈에 안 보이나 보다.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상인 ㄱ 씨)

무엇보다 서울시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의 우려는 결국 강제 퇴거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제 2의 용산참사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취지까지 헤아리지 않는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공공기관과 국민 간에 깊어가는 불신을 만들고 있다.


인권오름 제 153 호 [입력] 2009년 05월 20일 15:10:03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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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비친 인권 풍경] 국가 폭력의 현실과 피해자들 ①

군사정권의 폭력 피해자들에게서 현재의 국가폭력을 읽다


윤미, 이진주


  지난 6월 10일 경찰이 무기 하나 없는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던 것은 단순히 전경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르는 폭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국가폭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라는 한숨 섞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일 때, 내가 맞은 주먹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를 파헤쳐 보니 ‘그게 바로 국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 ‘과연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국가를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국가폭력의 정치를 파악하고,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일은 현실을 넘기 위한 첫 일이기에 관련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에게 국가폭력에 대해 듣고, 고문 피해자들과 함께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진범수 정신과 전문의에게 폭력피해의 현실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자 그 가족인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님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았다.


폭력, 근대 국가의 본질
국가 폭력은 한 국가의 국민에게 국가기구, 특별히 억압적 국가기구(예컨대 경찰, 군, 각종 정보기관, 사법기관 등)가 가하는 직․간접적인 물리적 힘의 행사를 의미한다. 직접적으로는 독재정권의 고문에서 시작해 간접적으로는 법도 국가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법’ 그 자체가 피지배세력에 대한 지배 권력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희연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근대국가는 그 ‘본질’에 있어 ‘폭력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전근대국가에서 물리력, 군사력, 무장력은 여러 지방권력들에 분산되어 있었지만 근대국가에서는 ‘국군’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물리력, 넓은 의미에서의 폭력이 근대국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에게 있어 폭력은 ‘위임받은 권한’에 속한다. 문제는 그러한 권력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의도에 따라서 사용된다는 점이다,


국가 폭력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적 폭력과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가 ‘공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희연 교수는 그의 저서 『국가 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 혹은 그에 의해 임명된 특정 국가 기구 책임자가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명령하였을 때 그 폭력도 위임받은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선출된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위임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체제가 바뀌고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문제제기하고 처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 당시에 피해자로서 국민들이 거대 권력인 국가와 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국가폭력과 죽음의 정치
이러한 국가폭력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였다.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국가폭력의 결과가 어떤 지를 잘 보여준다. 긴급조치 시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개인 및 가족에 대한 고문과 사찰, 사회적 추방과 사회적 박해, 빈곤과 심리적‧정신적 충격, 가족 해체와 가정 파괴, 자살 등을 동반하기도 했다.

국가폭력의 극단적 전형은 ‘죽음의 정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죽음의 정치란 국가 폭력이 극단적으로 구사되어 급기야 사람의 목숨을 박탈해버리는 정치적 현상이다. 조희연 교수는 “인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생명권이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상실되고 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죽음의 정치는 국가에 의한 직접 살인과 간접 살인으로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경찰과의 대치에서 희생당한 용산 참사에서부터 죽게 만들어 버리는 화물연대 박종태 씨의 죽음까지 모두 죽음의 정치에 포함되는 사건이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외상에 시달려
폭력의 주체가 국가라일 때, 피해자에게 ‘어찌할 수 없음’ 곧 대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준다. 정신과 전문의 진범수 씨는 “사람이 대처할 수단이 있고 반항할 기제가 있으면 깊은 상처가 남지 않지만 고문은 때리면 때리는 대로 속수무책으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고 맞붙을 수 없고 벌레처럼 벌벌 기면서 처절한 무력감에서 구타나 당한 외상이다.”며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시위진압의 모습만 봐도 자신이 다시 또 잡혀 가지 않을까 하며 여전히 두려움 속에 살고 있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권의 변화나 정치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다.

또한 진범수 전문의는 고문 등의 국가폭력은 개인에게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에 의한 고문은 사회에 나가서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차별, 냉대, 직장 취업에도 지장”을 줄 뿐 아니라 “누군가 감시할 것”이라는 정신적 상처까지 낳는다고 했다.

사진설명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무장한 경찰이 평온한 도시거리를 차지한다.

권력자의 두려움이 경찰차를 둘러
진중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말한다. "국가의 주권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시민인가? 아니다. 지금이 비상사태라고 판단할 권리를 가진 자가 곧 '주권자'다." 그리고 "자기를 국가라 믿는 자들은 자기가 위험하면 국가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개인적 비상상태를 국가의 비상사태라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 폭력이 더욱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진단은 곧 지금 정부가 얼마나 자신들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항상 도심에 늘 빡빡하게 세워둔 경찰차는 그들이 곧 보이지 않는 불안과 싸우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요즘 다들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인 국가폭력이외에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으로 ‘파시즘X’라 불릴 정도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네르바 구속 등 일련의 인터넷에 대한 통제장치, 비판적 보도를 행하는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매체에 대한 직간접적인 통제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시도하는 일련의 통제는 국가 폭력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차단한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 사법과 입법 기관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 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국가폭력’을 행하게 만들고 마는 상황은 현재의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할 상황은 이러한 통제에 익숙해져 국민들 다수가 침묵해 버리는 일일 것이다.


침묵의 카르텔의 선봉, 보수언론
조희연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우리 사회의 상층계급이나 보수적 대중들은 용산에서의 폭력과 희생에 대해서도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침묵’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 침묵의 카르텔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보수언론의 역할이 크다”며 “하나의 사건을 공론장에서 주변화시키는 기능을 통해서 용산의 문제를, 광화문에서의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게 된다.”고 지적한다.

가장 좋은 것은 국가를 딱히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국가가 오히려 국민의 삶을 위협해 ‘국가’는 ‘폭력’으로 각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연일 쏟아지는 기사는 우리를 화가 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조희연 교수의 말처럼 “국가폭력의 부당성이 쟁점화되고 그 국가폭력의 사용집단의 정당성을 타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국가폭력 사용집단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가 갖는 희망일 수도 있기에 비민주적인 정권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이 민주주의 역사였음을 되새길 때다.
 


군사정권의 폭력 피해자인 강민조 님을 만나다
  최근 들어 경찰과 집회 시위자 간의 충돌은 격화되고 있으며, 경찰폭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91년 노태우정권 시절 경찰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선생을 만나 과거와 현재의 경찰폭력에 대한 체감정도를 들어봤다.

강경대 열사(1972~1991)는 사망 당시 명지대 1학년 재학생으로, 명지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광철 씨 구속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이던 중 전투경찰의 쇠파이프와 몽둥이에 맞아 숨졌다.


◆요사이 경찰폭력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상당히 무섭다. 이승만 정권 말기, 4.19때 나도 학생으로서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정권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삼권분립은 사실상 없었고 청와대 말이 법이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검찰과 경찰의 태도는 대통령 성향에 얼마간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최근 경찰들의 모습은 '협의'보다 '지시'에 익숙한 CEO출신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10년간 민주화 세상은 있어서는 안 될 세상이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경찰의 모습도 민주화운동 이전, 일제순사와의 모습과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민주화 이전과 현재의 경찰폭력,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제말기, 우리나라에는 무학자가 많았다. 일제순사가 교육을 시켜도 잘 따르지 못했다. 그러면 동네 이웃 혹은 친척 둘을 세워놓고 뺨을 때리게 하는 등 갈등을 유발시켰다. 요즘 경찰폭력은 그런 양상을 닮아가는 중이다. 학생, 시민, 노동자가 시위할 때에는 그 속에 주장하는 바가 있어서 시위하는 것이다. 정권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을 외침으로써 알리는 것, 시정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위가 정권을 엎어버리고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정권은 이것을 단지 싸움 내지는 갈등으로 인식한다. 나는 91년에도 그 모습을 보았다. (힘)없는 사람에게 경찰은 최고의 권력자였다.

◆ 국가폭력 피해 경험자로서 느낌을 말한다면.
실제로 겪어 보지 않으면 심정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남은 인생 편히 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진짜 위로는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언제나 함께 못해줘서 미안하다.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정도면 족하다. 여생을 놀면서 지내라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 경찰에게도 할 말이 있다. 경찰들은 자신이 한 일은 아니더라도 경찰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유족에게 아주 작은 양심이라도 가져야한다. 경찰은 가해자인 셈이고 우리에게는 죄인이다. 이 정도는 가슴에 가질 인간,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경찰은 욕을 하고 상스러운 짓을 유족에게 한다. 그런 모습이 경찰의 모습일까. 경찰폭력은 국가폭력, 법에 의한 '정당한'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에 가만히 있는 사람 방패로 찍으라는 법이 있는가. 91년, 나는 감옥에 가게 됐다. 그런데 내 재판정에 우리 가족이 들어오지 못했다. 들어오려는 부인을 방패로 찍어 저지해서 생니가 뽑히고 부러졌다. 경찰은 법에 의거해 시민들의 질서유지를 시켜야한다. 그런데 경찰이 되레 법을 지키지 않았다. 정당한 집회는 존중받고 법을 어긴다면 경찰력이 동원돼야하는데 그 전에 나서서 미리 막는다. 그 예로 얼마 전 서울 광장 폐쇄가 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대한민국은 정권과 경찰의 소유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공권력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찰은 무기, 권력 등을 갖고 있다. 시민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요즘 경찰진압은 토끼몰이 식이다. 산에서 토끼를 잡을 때 총도 없고 할 때 많은 사람이 호루라기로 토끼를 가운데로 모으는 것이 토끼몰이다. 나갈 구멍 없으면 작은 토끼도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인데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시민이 저항하는 것을 ‘공권력에 대해 대들었다, 공무집행 방해’라고 한다. 힘을 가진 자로서 경찰의 참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은 먼저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경찰 권력이 싸움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폭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찰은 스스로가 권력자가 아니고 국민의 심부름, 아픔을 치유하는 자임을 깨닫고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경찰의 눈이 맑아져야한다. 지금 경찰 다수의 눈은 의심의 눈초리다. 살인자의 눈이다. 변하지 않으면 국민이 경찰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눈동자를 바꾸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경찰을 하며 국민을 위해 자손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경찰이 되어야할 것이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진정한 경찰로 거듭나길 바란다.
 

인권오름 제 161 호
[입력] 2009년 07월 14일 23:20:47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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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내딛기가 두려웠다. 온통 진흙탕이었다.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었지. 그래서였나. 다른 학살현장에서는 애써 상상을 해야 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평범한 장소에서 그 참혹한 사건을 애써 떠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구랑실재에 들어서는 순간, 비의 비릿내마저 피비릿내로 느껴질 만큼 오싹했다. 그 공간은 모습 자체로 참혹한 역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진흙의 그 말갛던 공간이 왜 그렇게도 황량했을까. 그래 그래 비까지 왔었기 때문이리라.

 집단 학살.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자주 접하는 말이라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단어다. 그런데 갑자기 이 단어가 낯설어진다. 집단 학살이라. 감히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전에 그 누구는 이 일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실행에 옮겼던 걸까.

50년 7월 순천 경찰서에 수감된 자들이 트럭에 콩나물처럼 실려서는 이 장소로 왔다. 당시 수감된 자들은 여순사건 이후 국가의 좌익 색출 작업 과정에서 잡히거나 고발당한 사람들이었다. 증언을 해주신 허귀구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이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들이 자꾸 남하하자 좌익이라고 잡힌 수감자들이 혹시 합류하지 않을까 해서 이들을 학살했을 것이라 했다. 트럭에 실려 도착한 곳엔 이미 그들을 위한 무덤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아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는 이미 상상하고 있다. 충분히 상상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가. 세 구덩이에다 사람들을 몰아넣고 총알을 퍼붓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해진 인간. 아무런 성찰도 몸부림도 허용되지 않은 채 짧은 공포와 함께 사라졌을 사람들. 집단 학살이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회의 모습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지. '사회 속에서 인간은 동물과 같다'고.

 해방정국은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나의 권력이라는 의자를 둔 채 서로 다른 이념들이 피 튀기는 게임을 벌였다. 그쯤 권력이야 누가 가진들 상관없다. 그저 그들만의 게임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희생돼야 했다. 권력은 진정 민중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그 사실이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민중을 존중하고 위하는 길보다 억눌러 봉쇄하는 쪽으로 가기 쉽다. 말 그대로 그게 더 쉬우니까. 악을 규정하면 된다. 그 악은 공포정치로 가능하다. 악을 믿고 동조하면 죽는다는 것을 본 자들은 알아서 각자 선악분리장치를 가동시킨다. 하지만 복종으로 끝나지 않는다. 광기였다. 살고자 하는 욕구를 넘어 적극적으로 죽음을 이용하기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때 당시에 자기가 살려고 허위로 상대방을 밀고해서,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야.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친구 사이에 좀 싸웠다고 서로 밀고하기로 했단 말이여, 요새는 그럴 일 없겠지만. 친구가 친구 잡아먹는단 말도 있었어. 그래갖고 저 사람이 반란군한테 길 가르쳐 줬다, 저분이 반란군한테 신발 한개 줬다 해서 그 죄목으로 잽혀들어간 거여. 그러도 않았는디. 이북계에 동조했다고 해서 그렇게 잡혀 들어가거든. 그러고 또 경찰은 동조했다고 하니 죄로 취급해야 했거든. 그렇게 해갖고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여. 뭐 아까 보도연맹이나 이런 지식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뭘 알고 한 경우도 있었지만, 반은 억울하게 들어갔다는 말이여."

  여순사건을 둘러싼 학살에 대한 공동증언 중 하나가 (우리가 쉽게 규정하는) ‘무고한’ 피해자들 내부의 또 다른 가해자들이었다. 시대가 만든 광기 속에서 국가에 죽고 이념에 죽고 또 친구에게까지 죽어 하는 이 상황이 광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것이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일까. 아니 이것이 이성의 결과물인가. 여기서 내가 조심스러운 건 이념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고 말하는 것이다. 안이한 생각이다. ‘무고하다’는 말 자체가 여전히 누군가 설치해준 선악분리장치를 가동시키며 ‘나는 죄 없다’라고 하는 인정 욕망을 넘어설 수 없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념을 가진 것이 죄인가. 살면서 내가 갖게 된 믿음으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죄가 되는가. 문제적인 것은 이념을 주장하는 것이 폭력이 되고 전쟁이 되는 사회의 분위기다. 대체 왜 그렇게 죽이고 죽어야 했는가. 어쩔 수 없는 인간사일까. 그렇다면 나는 역사 없는 인간이 되겠다.

  다행인 것은 구랑실재의 학살이 발견되었다는 것. 몇 십년간 묻혀 있던 유골들이 도로공사를 하던 중 포크레인에 무더기로 실려 나왔다. 나무뿌리와 뒤섞여 수십 구의 뼈들이 허옇게 드러났다. 당시 가족을 잃었던 자들이 유해 발굴 소식을 듣고 몰려 들었다. 하지만 찾아 가지 않은 시체, 아직도 많단다. 그날을 기억하는 그 숨 막히는 흙 속에서 빠져 나왔으니 그대들 이제 마음 좀 나아졌을까. 이제 마음 편안히 쉴 수 있는 다른 곳에서 다시 잠들어야 할텐데. 죽은 그 당사자들을 위해서 해줄 건 그것밖에 없는데 산 자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 자연은 여전히 다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들은 너무 귀하다. 자금이 부족해서 유해 발굴을 못한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유골들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을 잃은 자들마저 생을 다하기 전에 말이다. 

 
구랑실재에서 내려와 신발에 잔뜩 낀 진흙을 털어내느라 풀에다 시멘트에다 정신없이 발바닥을 비볐다. 하지만 아무리 털어도 짓눌러 꽉 배인 진흙들은 빠질 생각을 않고 진흙물마저 배인 신발은 얼룩덜룩 해졌다. 그 신발 모습이 싫진 않다. 신발의 얼룩처럼 역사의 현장에 제 발로 찾아간 우리들에게 이날 보고 들은 것들은 날 것 그대로 혹은 다른 것들과 접속하여 불쑥 불쑥 나타나겠지. 정말이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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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씨에 감기조심 밥은 꼭 먹고. 늙어가는 애비”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몸과 마음이 살얼음처럼 위태로운데 문득 날아온 아빠의 문자에 찬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 마음이 아릿하다.

답 문자를 보내본다.

“아부지도 추운날씬데 몸조심하세요. 아부진 술안마시면 젊어집니다. 같이 늙어가는 딸내미가”
“근데 아부지 이제 안 늙도록 딸내미가 빨리 자리 잡아야 할 텐데...”



이제 25살 대학 휴학생인 나는 올해 시작부터 유난히도 흔들렸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 현재의 가치관, 미래에 대한 고민 그런 것들은 내 머리를 흐르고 흐르다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로 수렴된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라디오 뉴스는 나를 더욱 방황하게 한다.

“2008학년도 주요 대학들의 1년 평균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주요 국립대와 사립대들은 올해 등록금을 최저 5%에서 최대 30%까지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벌써 네 번의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매달 말 통장에선 몇 번씩 대출이자가 잔액을 깎아 내린다. 한두 번 받던 대출에도 나중에 갚으면 되지 했는데 이젠 불안하다. 예전처럼 졸업 후 다 갚으면 돼 하는 자신감은 사라진다. 졸업의 문턱에 취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이 당연시 되고 있는 때에 그 기간마저 계획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나 하나쯤 먹고 살 걱정은 안 된다 해도 등록금 빚을 갚기엔 부족할 것이고, 노후대책을 늘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줄 자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출을 갚기 위해 40년 동안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까봐 서글퍼지기도 하다.

등록금은 오르는데 그만큼 나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 학비에 부모님들은 늘 걱정 또 미안해하시며 더 늙어 가신다. 그렇다 해도 난 대학을 포기할 순 없다. 초등학교 졸업만큼 당연한 배경이 되어버린 대학을 포기할 만큼 난 뛰어나지도, 용기가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지구를 떠받치고 우주를 품고 싶었던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의 힘보다 약해지며 자꾸만 키가 줄어들고 결국은 바스스 흩어져 버리는 것만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대학등록금 1000만원시대] 이자 내기도 버거운 취업난 ‘88만원 세대’
“가장 무서운 게 등록금 고지서”


그런데 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데도 자꾸만 외롭다. 이건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그저 옆 사람의 말에 끄덕거리고 토닥거려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린 지독한 생존 문제에서 벗어난 세대지만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나아졌고 또 그만큼 나빠졌다.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이 정해준 기준에 따라가기엔 여전히 숨차다. 그래서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어’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견고히 쌓인 모형 같지만 어딘가 구조가 틀어진 건 아닐까 하고. 그 사이에 끼어 우리가 신음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제 목소리를 내게 하고 공동체를 다시금 활성화 시켜보자고 친구들과 고민하고 기사를 썼다.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본질을 파고들지 않고 기계적 중립성만을 보이거나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희망을 고문하는 대학 잡지들이 싫었다. 딛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빨리 버리고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발버둥 쳐야하는 우리네 모습이 서글펐다.

하지만 이젠 내가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말을 많이 할수록 나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이제 나는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보수화되지 않기를,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칭얼거렸던 내 모습이 철없다 느껴지기도 하다. 차라리 철들지 말아야지 했던 내 바람도 수면의 경계를 넘나들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새해에 내려간 고향에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세상 탓 하지마라.’
그 한마디에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던 내 나침반을 도둑당한 기분. 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도 명절이 다가오면 친척들 만나기가 괴로운 사회지 않은가. 다시금 나는 거리를 방황하다 중력에 충실한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 땅에 붙을 만큼 자꾸 작아진다.

아아. 당분간 나는 많이 앓을 것 같다.

 


-인권연대 목에가시 게재 25살 휴학생,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을 되뇌이는 날들 – 장윤미/ 국민대 학생 – h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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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비정규직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그 비정규직법이 문제라던데 때마침 오늘
비정규직법 만든 지 100일을 맞아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토론회가 열린다고 하더라. 어떤 평가를 할까 궁금한 마음에 토론회장을 찾았다.




우리가 비정규직이 될지도 몰라. 대학생인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누구나 믿고 싶어 한다. 나는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거라고. 희망고문일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그렇게 희망을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 비정규직이 뭐 그리 나쁜거냐 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잃으면 또 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갖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건 비정규직이 있다는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든 제도나 시스템이 나쁘다는 사실이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듯이 오늘 비정규직법안 토론회는 말 그대로 엉망이 되었다.

단순히 토론회 현장의 분위기를 건조하게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소감문으로 쓰게 된 건,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정말 그냥 엉망진창이 된 토론회였다 라고만 해버리고 말까 하는 조바심에 이 글을 써본다.
그 동안 노조와 기업 간의 싸움으로만 몰고
뒷짐지고 있던 정부 측은 자신들의 무책임함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졌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한국정치의 소통불능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토론회가 시작되고 한국노총,민주노총,한국경총 등의 격려사가 이어진 후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나오면서 갑자기 토론회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일찍부터 토론회장에 진을 치고 있던 이랜드,뉴코아,코스콤,기룡전자 조합원들 몇몇이 이상수 장관 가까이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상수 장관이 '노사정이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는 발언이 나오자 노조들은 흥분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어쨌든 토론을 통해 반성하고 새롭게 나아갈 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토론회인데 이런 장(場)마저 망쳐버리나 싶어서 좀 답답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장관은 일단 무시하고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시작단계서부터 반대가 많았듯이 완벽한 법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에 의한 합의다. 그 때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에 어느 것이 옳은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합의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농성이 계속되자 이상수 장관도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비정규직 여러분들의 직무실력이 훌륭한 건 안다. 하지만 지금 앞에 계신 여러분들의 태도는 온당치 않다!’



그리고 자리를 뜨는 장관에게 노조들은 몰려들었고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난장판이 됐다. 곧 장관은 뒤쪽의 장소로 숨었다. 장관이 들어간 방 앞은 곧 그랜드 피아노로 막혔다.

 

회의 시작 30분 만에 장관이 자리를 뜨고 이 때부터 노조원들의 목쉰 한탄이 시작됐다.



“비정규직이 시작되고 3개여 월이 지났다. 부당하게 해고된 우리들은
노동부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러 몇 번이나 갔었다. 하지만 그냥 끌려나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누구 좋으라고 토론회마련해서 우아하게 말하나.
지금 당장 노조들과 면담하자”


“64만원으로 한달 생활한번 해봐라”


“니네가 휴대폰으로 해고통지 받아봐라”


한 마디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노조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얼마나 목말라 있었으면 여기 와서 이렇게 소리 지를까. 노동부 장관이 여기에 참석한다는 한마디에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 우르르 몰려왔을 장면이 떠올랐다.


3년 동안 투쟁하고 있다는 기륭전자노조조합원들은


“너무 만나고 싶었다. 나름대로 잘되고 있는 법이라면서 왜 만나길 거부하는가”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야지. 이게 핵심 아니냐. 우리들 현장의 사정을
들어야 한다
.”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하면 면담날짜라도 잡고 가겠다”


굳이 토론회를 망치면서 이래야겠냐는 주최 측의 설득에도,

“이런 토론회 하는 거 아무 소용없다. 맨날 앉아서 머리만 굴리며 법 만들지 말고 우리처럼 피해보는 사람들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데, 조합원들이 막무가내이긴 했지만 지켜보는 나로서는 대체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 뭐했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고 조합원들이 ‘그렇다면 면담날짜라도 확실히 잡고 가겠다.’ 고 하는데, 경찰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게 웬 불난 집에 부채질인건가. 조합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이 경찰들을 보자 다시 심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노조들은 ‘우리가 장관 잡아먹겠다는 거냐, 얘기 좀 하자는 거다. 지금 아니면 만나주지도 않지 않느냐. 그나마 면담날짜라도 잡겠다는데 왜 이러냐 ’



아니, 정말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반성하고 개정할 생각이 있으면 비정규직들과 면담해보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면담날짜 하나 잡는 게 뭐가 그리 힘들어서 경찰까지 투입되는 걸까.

 




뒤늦게 이상수 장관이 직접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황당했다. 정말 믿을게 경찰 공권력 밖에 없는 거구나.


결국 노조조합원들은 ‘공무집행방해’와 ‘감금죄’로 모두 연행됐다.

그리고 이상수 장관은 경찰들에 둘러싸인 채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실망했다. 이 토론회의 취지에 대해서. 토론회에서 내 얘기 좀 들어달라며 방해했다고 경찰 300명까지 투입해가면서 사람들 다 끌어내는 그들이 모습이.
쪽팔렸다.
한 나라의 정부가 서민들을 이렇게 밖에 못 다루는 게.

사실 감금죄라고 했지만, 노조들을 피한 것은 노동부 장관이었다.
스스로 피해서 숨었고 피아노로 문을 가로 막았다.


노동부 장관의 '당신들의 태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서민들 생존권 위협하는 건 괜찮고, 발언하는데 앞에서 방해했다고 다 잡아 가두는건 마치 주인이 노예에게 ‘무엄하도다’ 와 같은 태도에 다름없어 보였다.


내가 너무 감정적인건가. 하지만 직접 그 현장에 있던 나로서는 이런 감정의 글밖에 쓸 수가 없다. 



토론회 주최자들은 토론회 개최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들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예측 못했더라면 현재 노동자들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이 사회의 정치적 소통불능이다.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시민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다. 비정규직 법안을 잘못만든건 그리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어쨌든 장관 말대로 ‘경험’이 부족했다 치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후의 행동이다. 그것이 법 집행을 위해서 얼마나 성실했느냐를 증명하는게 아닐까.



법이 집행되면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서민들, 법 하나에 웃고 울어야 하는 사람들. 앞으로 어떠한 제도가 내 삶을 관통해가고 억울함에 호소했을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움직여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게 되었다.


정말 이번 토론회가 대충 100일 잔치하고 노동자들 얘기 다 들어줬다며 요식행위하고 말려던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이 법으로 피해를 보고 억울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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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갑은 내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저는 고교평준화 세대입니다. 지금은 서울지역의 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진로나 학업에나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미리부터 자신의 진로를 확정짓기도 힘들뿐더러
적성이란 것도 선천적이지만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해지기도 하는 거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그렇다고 음악을 진로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춘기라 신세한탄하기
에도 바빴으니까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은 저로서는 더욱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냥 어영부영하다 운 좋게! 인문계 고등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고교평준화의 혜택을 본 게 아니라 운 좋았던 거긴 하지만, 고교등급제로 인해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혀 고등학교를 갔다면 지금 같은 저의 모습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학업에 대한 개념이 없던 제가 다시 학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때 그나마 열린 기회가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업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물론 평준화 정책이 제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평준화 정책이었다면
실업고, 외고, 과학고 등등 특목고는 일찍이 자신의 길을 찾은 아이들을 위한 특성화고가 되어야 했죠. 하지만 오히려 고교서열을 조장하고 더 좋은 대학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집값 떨어진다고 특정 공고를 폐지하라는 사건을 보아도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지요.

자꾸 교육정책을 바꾸어 보지만, 공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 열풍은 심화되는 것은 결국
대학입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우리들의 목적지는 ‘명문대학’이니까요.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해도 결국은 명문대학이라는 획일적인 목적지가 있으니까
고교평준화도 반쯤만 성공한 정책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중고등학교 교육정책을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가도 정말로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 가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이명박 대선 후보의 삼불정책 폐지로 다시 고교평준화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고교평준화를 폐지하냐 안하냐를 논하는 걸로 가서는 안 될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정책이 나온다면 평준화의 원래 취지인 형평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도록 그 지점에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교육정책을 세운다고 하는데 그 조장의
근본 원인이 뭔지 모르면서 '아니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다 고려하는 정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온전히 그 자체가 누릴 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정책을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일때도 단순히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까 싫어, 공부 못하는 애들이 분위기 흐려서 싫어, 이 정도의 생각에서 머물렀을 뿐이니까요. 이건 먼저 경험하신 분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성적순으로만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비인격적인 것인지를요. 행복은 성적순이라 혜택을 본 사람들만 정치를 해서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것이 부당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보는건 어떨까요. 숫자로는 훨씬 강자일 것이니 말입니다.

지난 2001년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이름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 이름만 보아도 교육철학이 뻔히 보입니다. 지금 국가가 머리 굴리는 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인적자원으로 잘 키울까를 고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본 증식력이 없는 사람은 내다버려도 상관없다는 말과 똑같은 거겠지요.

요새 ‘인적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하지요. 저는 왜 이리도 이 말이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어떻게 하면 내 몸값을 더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열리는 강연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삼불정책에 고교평준화 이야기 등장으로 대선공약의 쟁점은 교육정책이라며 떠들어대는 교육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철학이 없고는 어떤 교육정책이 나오든 학생들은 실험대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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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속에서 현기증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 땀내 나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섞으며 안정된 위치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문득 시선을 돌린 곳에 보이는 글귀가 내 머리를 더욱 지끈거리게 했다.

'고된 입시, 너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버스에 부착된 입시학원의 광고 문구였다.
모든 수험생들을 철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광고 속의 한 입시학원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불편했다. 광고에 고무되기는커녕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대체 왜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하는 걸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왜 우리는 더욱 지독하고 치열해져가는 입시에 자신을 맞추려 하며 행복은 커녕 자꾸만 불행해져 가는 걸까.

더욱 지독해지는 경쟁사회.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는 서바이벌 사회.

입시를 넘어 대학사회로 들어왔지만 더 이상 대학은 자유와 사색의 장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취업을 위한 자격증에 불과한 시대가 되어 버렸고, 취업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은 고등학교보다 더 심해졌다.

경쟁사회로 변해버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생들이 꿈꿀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력서를 빛나게 할 높은 학점과 평균 이상의 영어점수 그리고 해외연수, 인턴생활과 같은 규정된 경험들 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고된 입시 공부를 하고 고된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한다. 현재의 불행을 삼키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대체 왜 우리는 그 ‘행복’의 구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만 할까?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꿈이 있기 마련인데, 경쟁을 부추기기만 하는 사회속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사회가 정해준 행복을 얻기 위해 획일적으로 경쟁에 몰입하는 것 뿐이다. 오로지 명문대를 향해, 좋은 회사에 내 자리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 100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내고만 있다.

하지만 경쟁속에서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는 없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한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뿐이다. 그리고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경쟁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최근 대학가에 불고 있는 공무원 열풍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분명해진다.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전국의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고시에 목을 매고 있다.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하나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진정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저 안정된 삶에 대한 희망하나로, 남을 밀어내야만 하는 소모적이고 팍팍한 경쟁사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 치열한 경쟁 전차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자꾸만 높아가는 경쟁이 대체 우리에게 무얼 안겨주는 건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희망을 부추기는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부추기는가. 왜 다양한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가. 아니, 왜 우리는 다양한 꿈을 꾸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몸에 붙은 불안의 이물질을 떼어내고 내 시선의 프레임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없다. 우리는 그저 이것이 삶이라고 자위하면서 생활의 의욕만을 펌프질하는 사회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다시 사유해보자.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자꾸만 불행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관망해보자.경쟁에서 승리하는 1명이 되는 것보다, 99명의 패배자들이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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