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0.05.13 EE
  2. 2010.05.13 vampire weekend
  3. 2010.05.12 망할 조선일보 1
  4. 2010.05.11 잘린 상처
  5. 2010.05.10 믿고 싶은데 모르겠다 3
  6. 2010.05.10 허트 로커
  7. 2010.05.07 사실은 별거 아닌 인간적인 가치 평가
  8. 2010.04.29
  9. 2010.04.29 허영(이동진)
  10. 2010.04.28 어흥

EE

일상 2010. 5. 13. 01:59

지난 주말 월디페가서 완전 열광했던 밴드 EE. 삐삐밴드 이윤정이 멤버라네.




Curiosity kills



기억 속의 하이칼라





EYES,NOSE,MOUTH,EARS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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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pire weekend

일상 2010. 5. 13. 00:43


A-Punk/vampire weekend

귀여워.
두드려라. 두드려야. 꽝꽝꽝.



M79 at United Palace Theater from Dan Thilman on Vimeo.

M79/vampire weekend
이 노래는 정말 좋구나.
다양한 약기들이 섞여, 흥이 나고 짜릿하고.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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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조선일보

일상 2010. 5. 12. 02:12



http://www.chosun.com/special/issue/candle/index.html

조선일보의 촛불집회 특집 기사들 역겹다.
역겹다는 말도 감정 소비다.
그래서 무시하려해도,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구독율 제일 높다는 신문인데
속이 상한다.
제발좀.

이것도 또 하나의 진실이라고 봐둘까? 그래야 하나. 그게 올바른 윤리적 태도인가?
네버, 절대.
그저, 너희들의 태도가 잘못됐어. 그게 확실해. 라고만 말하고 싶다. 
행여 이게 진실이라고 큰소리는 못 내고 조그만 목소리로 또 하나의 진실이라고 지껄인다면
꼬투리 잡지 말라고 쥐어박고 싶다. 
꼬투리가 전부잖아. 정말, 혹여, 행여, 훗날 이런 기사들이 역사 교과서에 마치 정사인 양 쓰일까?
정말 그럴지도.
아, 그렇게 되고 마는 건가.
오, 나는 인간이고 싶지 않다.  




아, 하지만 나는 그제 전화를 받았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빨갱이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냐. 시위나가고 그러지 말아라.
천안함도 북한놈들이 했다지 않냐. 여기서는 이명박이 정치 잘 한다고 난리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북한에 다 퍼댜줘서 그 돈으로 그놈들이 무기산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 짐작했지만, 또 생각한 것과 너무 똑같은 말들을 하셨을 때의
시시함과, 더불어 섬짓함. 

이명박의 지지율은 어쨌든, 여론조사라는 것에 의하면, 올라가고 있단다. 


나는 상식적인 인간이라서 조선일보와 이명박을 싫어하는 건가
내가 상식적이라고 믿어도 되는 건가. (뭐 나는 여전히 내 경험을 믿지 못 하고 있군)
운 좋게 몇 권의 책을 더 보고 다른 영화라는 것들을 보고 여러 신문을 읽게 돼 이런 시선을 갖게 된 건가
엄마가 몰라서 그런 거야,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 말도 좀 들어줘..
돌아오는 말은,
그래, 니 잘 났다.
나는 더 잘 나서 이러는 건가. 그런 건가.  

(칭얼대는 게 아니라, 이 새벽 정말 궁금해하고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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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상처

일상 2010. 5. 11. 02:21

 응급처치에 대해 강의하는 걸 찍어주러 갔었다, 지난 주에.
뭘 먹다가 목에 막혔을 때나 화상 입었을 때, 뼈가 부러졌을 때 등등 상황 하나하나를 친절히 설명해주더라. 거의 마지막 항목에 '잘린 상처'가 나왔다. 스크린에 크게 적힌 잘린 상처 응급 처치법. 그 순간 강의 내용은 하나도 안 들리고 불현듯 영상 하나가 눈 앞에 탁 하니 켜졌다.
지난 촛불집회 때 떠돌아다니던 영상. 진짜 너무 서럽게 울던 한 소년. 전경들 방패에 아버지 손가락이 잘렸다고, 쳐다도 안 보고 막아서고 있는 전경들에게 제발 좀 비켜달라고 그 안에서 빨리 아버지 손가락 찾아서 병원에 가져가야 한다고, 울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소년의 모습. 그래도 무심하던 전경들의 얼굴. 온 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계속됐다.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의 연상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때 촛불집회 당시 보았던 폭력적인 상황들. 피 묻은 손으로 신발을 들고 있던 양복입은 아저씨, 물대포에 맞아 새하얗게 질린 한 학생의 얼굴, 돌을 들고 달려들던 아저씨, 바닥에 방패찍는 소리, 우르르 달려오던 전경. 위협적인 방패소리들이 달리는 운동화 소리로 바뀌는 그 찰나의 소스라치게 만드는 기운. 곤봉을 팔꿈치에 맞았을 때 그 쟁-하게 쟈글거리면서 아픈 느낌.  
왜 끔찍한 것들만 떠오르는지. 싫지만은 않은 사건이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그것도 폭력적인 이미지들만 나타나서는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가. 악, 하는 분노도 아니고 미적지근하게 자꾸 쿡쿡 쑤신다.  지난 일주일동안 내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던 잘린 상처, 촛불집회, 잘린 상처, 촛불집회. 나쁜 추억만.

좀 쓰면 덜 생각날까 싶어서, 사실 여지껏 계속 맴도는 그 단어와 이미지를 조금 걷어내고 싶어져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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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없다. 내 경험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내가 본 걸 믿고 싶은데 내가 뭘 봤는지도 모르겠다.
이 바람에 휘청 저 바람에 휘청한다.
그러니까 나는 바람을 탔다고 하지 않고 휘청거린다고 표현한다.
가끔은 이렇게 이상하고 싫다는 감정이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믿지 못 하고는
다 부여잡고 역지사지 하려는 강박적인 윤리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다.
감히 어리석다. 
 
니 말도 맞고 그대 말도 맞다
맞지 않은 말 어디 있으랴
그러니 내 말도 맞게 하라
누가
내가
내가 그리 하여야 한다



스물 일곱은 스물 일곱을 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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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일상 2010. 5. 10. 02:00

영화에 이런 씬이 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저항군의 공격을 받는, 주인공 제임스와 그의 동료들.  
그 '적의 공격'에 맞서 모래 위에 엎드려, 대체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대치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들은 땀범벅에 모래들이 엉겨붙고 열기에 눈 앞은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순간 순간을 연출자는 꽤 긴 시간동안 디테일하게 연출한다. 디테일, 그게 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밀도 있게 쭉 밀고 나가면서 그 사이에 녹아있는 말랑한 디테일들. 그런 디테일 때문에 캐릭터가 정말 사람 같아지는 거니까.  
이 씬 역시 마찬가지다. 인물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는 그들이 '적'을 잘 쏴서 맞추기를 바라며 함께 마음을 졸이게 된다. 주인공이 쥬스에 빨대를 꽂아 동료에게 넘겨주는 따뜻한 장면에선 어느새 난 그들의 동지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감정들의 마찰을 느낀다. 그 긴장을 밀어내는 것은, 내가 이 전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겪는 죄책감이다. 그들이 총을 쏴 맞춰 죽이는 적들에 대한 연민이다. 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저렇게 행동하는건데, 왜 저럴 수밖에 없는 건데 하는 생각들. (폭탄을 제거하는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고 결국 그걸 성공하면 할수록, 폭탄을 설치한 저항군들에 대한 적대감은 높아진다) 그래서 난 이 씬에서의 디테일한 연출이 좀 무서웠다.

디테일이 풍부할수록 영화는 좋아지지만, 내가 영화에 빠져 적들을 빨리 쏴 죽이길 바랄수록 그러해지는 내 감정이 싫어진다. 아, 이 아이러니. 인물에 애정을 느끼게 됐으면서도 애정을 느끼기 싫은 이 마음. 누군가를 이해했을 때, 아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미 알만큼 아는)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라 더욱 그렇다.

<사실 어떤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접근했을 때 놓치는 것이 더욱 많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마음에 남아 있는 건 꼭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 씬에서 하나 의문이 있다. 간간이 저항군들이 숨어든 건물 안에서의 화면이 들어간다. 주인공들이 쏜 총알이 상대편으로 날아드는 컷, 즉 적들이라고 하는 자들에서의 시선이 중간중간 삽입됐다. 이 컷을 넣고 안 넣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맥락상 별 효과를 느끼지는 못 한다만, 그래서 의문이 생기는 거다. 대체 이 컷들은 왜 넣었을까. 적군들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일까. 그저 다양한 컷을 위한 걸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걸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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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저는 죽음을 두고 내가 얼마나 가까웠나, 내가 죽게 될 때 뭘 얘기할 건가, 내가 죽으면 웃을 수 있나, 어떤 죽음을 원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제가 남의 장례식장에 가서 잘 울어요. 물론 상주나 상을 당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우는 거겠지만, 왜 갑자기 울어대는지 모를 정도로 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죽음이라는 게 꼭 참고 힘겹게 쇼하고 노력하고 지탱하며 살다가 모든 게 끝나는 순간이잖아요. 모든 가식과 인위적인 노력과 사실은 별거 아닌 인간적인 가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잖아요. 이상하게 그걸 생각하면 슬프면서도 통쾌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볼 때는 꼭 아기처럼 돼버리더라고요.

씨네21, 홍상수-정성실 대담 중에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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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0. 4. 29. 03:09


맛있는 걸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래서 입 안에 침이 퐁퐁 샘솟고 있는데
그 순간. 그러니까 한창 침이 고이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맛있는 게 느닷없이 입 안에 불쑥 들어오면 어떨까
그 음식을 탐하던 침이 그 음식을 받아 들여 뒤섞이면, 맛있을까 그럴수있을까,

혓바닥 주위에 그득 고인 침들은 예상치도 못한, 그래 탐했지만 탐했을뿐 그저탐하고싶었을뿐
목구멍으로 채 도망가지 못 한 놀란 침들이 입밖으로 달아난다. 침이 흐른다.




이새벽에허공을부여잡고엉덩이를울먹거리며이노래를부릅니다
아마도이자람밴드가 부르는 백만송이장미





먼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을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람 나를 안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되어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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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이동진)

일상 2010. 4. 29. 02:36

“대중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고 전문가들은 점점 고리타분해지고 있는 상황이죠. 근데 똑똑해지고 있는 대중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영화기자가 된지 얼마 안 된 1995년과 비교해보면 불과 10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어요. 1995년이 딱 영화 100주년이었는데, 그때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같은 작품을 극장에 보러가서 러닝타임 내내 졸고 나오면서도,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어쨌건 그 영화를 봤다는 게 중요했죠. 사실 허영이죠. 그런데 저는 문화에서는 허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요즘 대중은 허영이 없어요. 아니 내가 졸려 죽겠는데 이 영화를 왜 참고 봐야 해? 한다는 거죠. 우연히 낚여서 <희생> 같은 영화를 보면 욕하고 나와요. 감독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쓰레기 영화다, 라는 말을 거침없이 날리죠. 말하자면 지금 관객이 훨씬 더 주체적이고 허영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주 훌륭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허영이 없으면 문화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가 없어요. 허영이 있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고, 허영이 없으면 스스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뭔가 다른 걸 자기 마음으로 초대할 만한 구석이 없어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밌는데 왜 내가 타르코프스키를 보며 괴로워야 돼?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문화적 시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에 대해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1990년대 중반의 관객은 오늘은 짐 자무쉬 영화를 보러 가서 자고, 다음날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잤더라도, 졸지 않고 본 5분씩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도약의 순간을 경험해요. 훈련이 되니까요.”  

_이동진, <문화 서울>


  단어의 의미를 비틀었을 때 나오는 새로운 얘깃거리. 허영이라. "허영이 있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한다는 거잖아요."  !

무엇보다,
"....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이 말에 왜 이리 울림이 있는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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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흥

일상 2010. 4. 28. 00:23

          
    샘나구로. 내 빠마보다 잘 됐네여




trouble everyday/ 끌레르 드니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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