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0.03.15 소리 2
  2. 2010.03.08 팥알이 익는다 2
  3. 2010.03.07
  4. 2010.03.01 꺼끌거림 2
  5. 2010.02.24 의미의 떨림
  6. 2010.02.21 미쓰홍당무
  7. 2010.01.09 용산 참사 노제
  8. 2010.01.05 아마, 그럴거야.
  9. 2009.11.19 팥이 익는다 1
  10. 2009.11.14 닭뼈 1

소리

일상 2010. 3. 15. 00:51


 건물에서 막 빠져나가 골목길로 접어 들어서였다. 따뜻하고 혼탁한 실내에서 차갑고 맑은 실외로, 그러니까 비가 온 뒤 그 깨끗한 바깥,으로 막 나섰기 때문이었다. 미리 피하거나 서둘러 도망갈 수 없었던 이유 말이다. 온 구멍으로 공기는 마셔야겠고 마음은 발을 따라가느라 아직 사물을 인식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던 그 때, 어둑한 골목길을 빠르게 내려가던 나는, 순간 내 오른쪽 바짓단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눈이 찰나에 본 것은 둥글게 말린 검은 물건, 그래 물건이라고 하겠다 알기 전에 그것은 물건, 그것이 내지른 소리가 내 바지에 부딪쳐 만든 그 파동을, 그 파동이 옷을 뚫고 내 몸에 닿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던 내 종아리. 그 소스라침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차가운 바람에 살트듯 쩍쩍 감각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은 더 이상 걷지 않았고, 발이 멈추고서야 바로 뒤 저기에서 고양이가 오래 울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야 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니다, 울음소리라고 하진 않겠다. 그래 어떤 소리. 그 고양이에게서 나는 소리. 내 뒤편에서 나던 그 소리는, 허공 여기저기를 부딪쳤다 튕겨 나가고 긁기도 하며 찢어냈으며.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삼켜먹을 듯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고밖에 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래 듣고 있다간 입이 돌아가고 눈이 뒤집히고 손가락과발가락이 굽을 것 같은 요상한 소리.
하지만 나는 지금 돌아보지도 않고 내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그 검은 물건을 고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마 그 둥근 물건은 곧, 도르르 몸을 풀어 어느 구석으로 잽싸게 뛰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그것은분명고양이었을텐데. 나는 여전히 그것을 고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그저 그대로 소리일 뿐일지도.
머리털 구멍까지 숨닫고 있던 짧은 순간, 겨우 숨통 열리자 몸을 뒤로 틀지만 보이지 않는다. 반응한 심장 여전히 쿵쿵 거리고 겨우 뗀 발 몇 걸음 나아가자, 얼마 되지 않은 앞에 시커먼 그림자로서의 사람 서 있다. 나와 같은 소리를 들었겠지. 그 사람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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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알이 익는다

일상 2010. 3. 8. 13:32


그러다가 느닷없이,

너는 좋은 사람이다,
말해주는 그가 좋다.
사람이야, 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다, 라고 한다.
팥알만해지는 내속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다, 라고 해줘서
고맙다
좋은 사람 되라는 꾸중처럼 들리는
팥알같은 내속이 또 우스워,
그게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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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0. 3. 7. 14:58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내가 오늘 무슨 양말을 신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말을 신던 순간은 떠오르지가 않았고 가령 잠바를 입거나 가방에 뭘 챙겼는지는 떠오르는데, 아마 잠바를 입고 가방을 메기 전에 했을 것 같은 양말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질 않았다. 지금 내 발의 감촉으로 봐선 분명히 양말을 신긴 신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신었던 기억은 없다. 무슨 양말을 신었는지 그 궁금증에 대한 집착은 커지는데 그렇다고 지금 멈춰서서 바지를 걷고 양말을 들여다보기는 싫었고 왜 싫은진 모르겠다만 싫다는 감정만은 뚜렷해서 도저히 손을 신발에 댈 엄두가 나질 않았으며, 또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잠시 멈추었다가는 뒷사람에게 내 엉덩이를 떠밀릴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기에, 그러니까 걸으며 나는 계속 내 양말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이 나질 않았고 아니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결국 기억 속으로는 들어가질 못 한채 어떤 언저리만을 계속 맴돌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기억나지 않는 건 양말 뿐만 아니라 속옷을 입긴 했는지 세수는 한 것 같은데 이를 닦았는지와 같은 것들이 줄줄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떠오르긴 할 것인가 의심하며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다만 여전히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 떠올릴 순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다보니 걷고 있던 나를 잊었고 사람들에 떠밀리듯 게이트까지 이른 내 몸을 발견한다.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서 계속 이 생각을 하든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해, 띡, 교통카드를 기계에 대는 순간, 그러니까 기계음의 명징한 소리가 들리고 가로막힌 봉을 배의 힘으로 밀고는 한발 내딛는 순간, 묵직한 육체감이 그것이 가슴인지 배인지 모를 살덩어리가 내 엉덩이에 닿았다. 분명 카드를 찍고 난 후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게이트에서 난 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살덩어리를 느껴야 하는건지 의아했고, 놀라 뒤돌아볼새도 없이 봉과 봉 사이에 끼인채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밖으로 퉁 튕겨져 나갔다. 바로 뒤에서 키 조그만 아줌마가, 아무래도 이랬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내 엉덩이에 바싹 붙어서는 게이트를 무임통과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아까 내가 느낀 그 가슴인지 배인지 모를 육체는 무엇이던가 나밖에 통과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말이다. 여자는 잽싸게 아니 분명 잽싼 행동이었음에도 유유해 보이는 요상한 발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쓴다. 쓰지만 순식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쓰고 있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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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끌거림

일상 2010. 3. 1. 04:51


#경계도시2 단상 

대한민국 레드콤플렉스 문제는 그렇다치고,

계속해서 송두율 교수를 지칭하고자 하는 그 '경계인'이라는 단어 말이다. 다큐 속에서 보여준 그 사건을 보다보니 그 경계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싶었다. 경계인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경계인 그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다. 경계에서 피는 꽃,을 상상하긴 한다만 경계가 있긴 있는 걸까 싶은. 아니면, 경계라는 것의 순수성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문제인 걸까. 아니, 그렇다면 경계는 없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물론 이런 고민을 한다고 해도, 경계는 있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다고 믿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도 싶다. 또 강박적으로 순수한 경계가 아니라 얼룩지고 희미한 것이 경계이지 않은가를 생각해 보아야겠지.  
 


이 다큐 이후에 본 의형제.

<경계도시> 다큐와 <의형제>를 본 이후, 계속 남아있는 꺼끌거림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해지지는 않다. 또 다른 사건들을 만나봐야만 잘 정리될 것 같다.

어쨌든.
의형제가 이념의 대립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남북문제를 다룬 영화라는 호평이 자자하다. 여러모로 영화가 좋았지만 그럼에도 자꾸 켕기는 아쉬움이 있었다.
극 중 간첩인 서지원, "나는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구도 배신하지 않으려 했을 뿐 그저 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다고 말하는 이 인물이", 난 오히려 되게 뻔하고 (대안이라기보다) 안일한 설정 같았다. 그리고 어떠한 강박증이 불편하게 다가왔는데, 그건 '나는 무슨 주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 가족과의 행복이 더 중요한 평범한 개인일 뿐' / 이 '뿐' 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왜굳이강조?', 손사래치며 한발자국 물러나는 이미지.

이념을 넘어서, 라는 말은 좋은데 그 이념을 넘어선 자리를 이미 꿰차고 있는 건 뭘까. 이념 없는 것이 제일 강한 이념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개인들이 희생을 당했다,는 식의 문장이 나는 꺼림칙하다.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습관처럼 되게 쉽게 쓰는 말이지 않은가. 그게 하나의 진실이라는 걸 알지만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치 '죄없음'을 '인정'해주는 듯한 뉘앙스로 보여서다. 아 이념좀있으면뭐어때 무슨주의있으면어때 그렇게 말하고 싶다. 개인 앞에 저러한 수식어를 꼭 왜 적어야만 하는걸까. 일상에서도 느끼는 문젠데, 가끔 대화 자리에서 "아 제가 무슨 주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고요" 라는 말을 꼭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이런 말을 가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말의 끝자락에 밟히는 미묘한 수치심이 있다. 변명 혹은 방어처럼 이런 말을 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이 아니라 강박적인 방어가 되는 듯한 기분이 싫다. 그러니까 그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결국은 송두율 교수 사건의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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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떨림

일상 2010. 2. 24. 01:44

의미의 떨림 Le frisson du sens

그의 일 전부가 기호의 도덕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도덕성'은 '도덕'과 다르다). 도덕성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테마인 의미의 떨림은 두 종류의 위치에 나타난다. 제1의 상태는 '자연스러움'이 동요하기 시작하여 의미 작용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이다(재차 상대적, 역사적, 관용어적으로 변해 버린다).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이라고 하는 (불유쾌한) 착각의 표피가 벗거져 떨어지고 삐걱거리며. 여러 가지 언어 활동의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해, '자연'이 그 속에 농축되어 잠자고 있던 모든 사회성에 의하여 흔들려 떤다. 나는 문장들의 '자연스러움' 앞에서 놀란다. 마치 헤겔Hegel의 고대 그리스인이 자연을 눈앞에 두고 놀라며 의미의 떨림을 거기서 청취하는 것같이. 이 의미론적 독서의 최초 상태에서는 사물들이 '참'의 의미(역사의 의미)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만, 다른 장소에서 그리고 거의 모순되게 또다른 어떤 가치가 이 상태에 대응한다. 즉, 의미가 비-의미화 속에서 소멸되기 전에 또 떨림을 보이는 것이다. '의미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잡을 수 있지' 않다. 굳지 않고 유체인 채로 가벼운 거품이 일어나 계속 떨린다.
사회성의 이상적 상태는 다음과 같이 선언된다
: 거대하고 지속적인 시끄러움이 무수한 의미에 생기를 부여한다. 그 의미들은 시니피에로 서글프게 무거워진 기호의 결정적 형태를 결코 취하지 않고 다만 작열하고, 불꽃튀는 소리를 내며, 섬광을 내뿜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동시에 불가능한 테마이다. 왜냐하면 이상적으로 떨고 있는 이 의미는 고체화한 어떤 의미(독사의 의미)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의미(해방을 외치는 신비주의자들의 의미)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회수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떨림을 나타내는 형식들 : 텍스트, 의미 산출signiiance, 그리고 아마도 중성neutre.) 


새벽 잠들기 전, 책꽂이의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를 꺼내 읽는다. 어느 페이지든 펼쳐 읽으면 되는 짤막한 텍스트들의 엮임이다. 139페이지 중간에서 140페이지의 반을 조금 넘어 차지하는 글을 읽는다. 읽히는 것들만 읽는 것은 그저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한번 읽어본다. 두 번 세 번 네 번 ... 예닐곱번쯤 읽었는데, 텍스트를 이해한건지아닌건진 알 도리 없지만 뭔가 화아 밝아지는 기분에 뿌듯한 마음으로 바로 책 덮고는 잠에 들었다. 난 가끔 더 깊게 생각하기 위해 잠을 택한다.
<아, 의미의 떨림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경계도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경계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던 한 지식인의 바람은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아주잘근 뭉개진다. 그의 진의를 따져보고말고를 떠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단순소박절실한 질문으로 건너뛴다. 어떤 사건에 동참하여야 할 때,
나는 '무딘 양자택일자'가 되고 싶지도 '얄미운 관찰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모든 내 말과 행동이 '실수'라 한다면, 그래도 사건 하나를 겪을 때마다 반발자국만이라도 '성숙'해지고 싶다. 좀 더 괜찮은 태도와 시선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뭔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한 느낌' 만은 분명 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 있으니까 좀 더 괜찮은 태도와 시선을 기다린다.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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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홍당무

일상 2010. 2. 21. 00:24


생홍당무는왜그리맛있어
하지만 먹다보면 씹어먹다보면
이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될거야 
입주위에 홍물이 들도록 하나 다 씹어먹다보면 알게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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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노제

일상 2010. 1. 9. 23:29

오늘 용산 참사 노제가 열렸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08085810&section=03



▫  칼라 티비 이명선 리포터를 인터뷰했었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때 보았던, 그 당시 현장에서 말이다, 건물 위에서의 그 불꽃. 그 불에 사람이 타 죽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후에야 너무 크게 다가와서 그러다 결국 몸이 아파져 몇 달 누워 있었다고. 그러면서 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나도 같이 슬펐고, 속상하고, 또 조금 질투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꾸 내 속을 쟤고 어정쩡하게 (행동을 굼뜨게 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저렇게 온 몸마음 다해 슬퍼하는 게 부럽더라. 나는 요새 자꾸 내 생각을 감정을 쟤고 따진다. 이게 결코 나쁜 것도 아니고 현재의 나를 잘 보여주는 증상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하는’ 것들은 많이 부럽고 .... 좋다.  

  요새 도시의 불빛을 수집한답시고 늘 캠코더를 끼고 다니며 촬영을 하는데, 환승한다고 신용산역에 내린 적이 있다. 눈 앞에 촛불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길 건너에 용산참사 현장. 영정사진 앞에 조롬히 늘어서 있는 촛불의 빛, 도시의 불빛 중 하나.   

▫  무기력함에 빠지는 마음아픔. (그래 마음아픔) 이런 감정 너무 겪기 싫은데, 난 여전히 제대로 생각하지 못 하는 것인지, 이건 나 스스로에게도, 세상도, 좀 먹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런다.

 

기도해야겠다. 좋은 데 잘 가시라고.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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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럴거야.

일상 2010. 1. 5. 21:33

 

밤 열두 시가 다 돼 가는 시간, 친구와 나는 롯데리아에 앉아서 졸업생 인터뷰를 한답시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의 지난 대학생활을 회고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냐 등등 그런 질문과 답변을 나누며, 졸업을 앞두고 또 어느 정도 많이 변한 모습도 느끼며.  

누가 들어오는지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돌아보자 상투머리를 한 조그만 여자애가 빠르르 들어오고 뒤따라 추울까 꽁꽁 싸맨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여자가 보였다. 여자애가 어찌나 귀엽던지 친구와 나는 지나가는 애기를 붙잡고 몇 살, 몇 살?. 애기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더니 손가락 하나, 두 개를 접는다. 손가락 세 개를 흔들면서 웃는다. 낯가림도 없지, 아 예뻐라.

따라 들어오는 엄마를 보니 기껏해야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다. 애기와 꼭 닮은 얼굴. 엄마는 애기 손을 끄느라 몸을 낮추어 계산대로 걸어 간다. 다른 손에 안은 갓난아이가 불안하다. 이것저것 주문하고 돌아서 나가는 엄마와 두 애기를 넋 놓고 바라봤다. 저 뒷동네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이 늦은 시간에 누가 햄버거를 먹고 싶었던 걸까, 이 추운 날 애기 둘을 꽁꽁 싸매 번화가까지 걸어 나오느라 힘들었겠다, 이런저런 생각. 그러다 문득.

  “근데... 저 사람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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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이 익는다

일상 2009. 11. 19. 17:35


내가 팥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는
기분좋음을 팥팥. 이라고 표현해줬다.
좋아, 팥팥 ㅎ
이렇게.

팥팥.
팥팥팥.
팥.을 계속 보다보면 읽다보면, 꼽꼽한 땅을 꾹꾹 눌러담는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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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

일상 2009. 11. 14. 01:52


어젯밤 없었던
닭뼈 하나가 방문 앞에
발리어진 채 덩그러니.

아마 내 신발 위에 앉아,
물고 왔을 고양이 한마리
밤새 뜯어먹었을 것이다


닭다리 발견했을 것이고 추웠을 것이고
어슬렁거렸을 것이고 다가왔을 것이고
닫힌 방문 앞에 앉아
신발 뒷꿈치를 구기고 앉아

그러게
불길하게
갑자기 불길이 되어버린 닭뼈
니가 품고온 불길함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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