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2007

일상 2008. 1. 3. 14:35



추석 연휴 이후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좌석버스를 타고서도 한 시간 가량 달려 왔다. 버스에서 내리면 시골 냄새가 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땅으로 발을 내딛는다 내리자마자 잠시 덤덤하게 정면을 바라 본다

고등학생 때 버스에서 내리면 횡단보도를 기다리다말고는 뒤돌아서선 너른 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지평선이 보였다 생채기 난 마음에 논에 고여 있던 바람이 다가와 마음 고루고루 보듬아 주었다
나이를 먹고 드문드문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이제 이곳도 어중간한 시골이 되어가는구나 했다 논을 끼고 있던 산이 조금씩 깎이는가 싶던데 집엘 가면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 짓는 아파트를 사둔다고 난리라며 빚을 내서라도 살까 고심 중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지하철도 들어온다니 집 값이 뛰는가보구나 그렇군 여전히 이 나라는 집이 모자라는구나 그렇구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 지난 추석까지만 해도 논 위의 산은 반이나 넘게 남아 있었고 아파트가 들어설거라는 불안도 없었는데 참 금방이구나

이제 아파트와 새 건물이 한 가득이다. 팔을 넓게 벌여 그것들을 안아 본다. 그래 너희들도 나쁘지 않아 사람들이 살 집이 많이 부족한가보구나 그랬구나 날은 어두워가는데 불 켜진 집은 거의 없지만 이제 곧 다들 입주하겠지, 많이들 내 집마련해서 다행일지도 몰라. 그런데 저 나머지 집들의 불이 마저 켜지긴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빚을 내 집 한채를 더 마련해두신걸까. 저기 어딘가에 불꺼진 우리집이 있는 걸까. 뒤를 돌아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뒤에 맑고 시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뒤통수를 씻어 주는 바람이 좋았다. 그러면 뒤를 돌아 한참이나 너른 돈을 바라보고 지평선 너머도 상상하며 눈을 씻었다

오늘은 그냥 신호등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덜 깎인 산은 없는지 덜 덮인 논의 흔적은 없는지 노을이 제 모습을 자랑할 틈이 남아있진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무성하게 꽂인 건물들 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들이 삭막하게 서 있다. 그리고 눈 앞의 현수막 게시판엔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이제 막 날아오를 듯이 퍼덕퍼덕 거리며 바람에 휘날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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