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23건

  1. 2007.10.01 우리는 '인적자원'이 아닙니다.
  2. 2007.08.01 경쟁을 부추기는 서바이벌 같은 사회
  3. 2006.09.18 굉장히보고싶어요 1

<이 글은 동갑은 내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저는 고교평준화 세대입니다. 지금은 서울지역의 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진로나 학업에나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미리부터 자신의 진로를 확정짓기도 힘들뿐더러
적성이란 것도 선천적이지만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해지기도 하는 거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그렇다고 음악을 진로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춘기라 신세한탄하기
에도 바빴으니까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은 저로서는 더욱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냥 어영부영하다 운 좋게! 인문계 고등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고교평준화의 혜택을 본 게 아니라 운 좋았던 거긴 하지만, 고교등급제로 인해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혀 고등학교를 갔다면 지금 같은 저의 모습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학업에 대한 개념이 없던 제가 다시 학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때 그나마 열린 기회가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업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물론 평준화 정책이 제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평준화 정책이었다면
실업고, 외고, 과학고 등등 특목고는 일찍이 자신의 길을 찾은 아이들을 위한 특성화고가 되어야 했죠. 하지만 오히려 고교서열을 조장하고 더 좋은 대학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집값 떨어진다고 특정 공고를 폐지하라는 사건을 보아도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지요.

자꾸 교육정책을 바꾸어 보지만, 공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 열풍은 심화되는 것은 결국
대학입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우리들의 목적지는 ‘명문대학’이니까요.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해도 결국은 명문대학이라는 획일적인 목적지가 있으니까
고교평준화도 반쯤만 성공한 정책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중고등학교 교육정책을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가도 정말로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 가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이명박 대선 후보의 삼불정책 폐지로 다시 고교평준화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고교평준화를 폐지하냐 안하냐를 논하는 걸로 가서는 안 될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정책이 나온다면 평준화의 원래 취지인 형평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도록 그 지점에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교육정책을 세운다고 하는데 그 조장의
근본 원인이 뭔지 모르면서 '아니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다 고려하는 정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온전히 그 자체가 누릴 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정책을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일때도 단순히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까 싫어, 공부 못하는 애들이 분위기 흐려서 싫어, 이 정도의 생각에서 머물렀을 뿐이니까요. 이건 먼저 경험하신 분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성적순으로만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비인격적인 것인지를요. 행복은 성적순이라 혜택을 본 사람들만 정치를 해서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것이 부당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보는건 어떨까요. 숫자로는 훨씬 강자일 것이니 말입니다.

지난 2001년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이름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 이름만 보아도 교육철학이 뻔히 보입니다. 지금 국가가 머리 굴리는 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인적자원으로 잘 키울까를 고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본 증식력이 없는 사람은 내다버려도 상관없다는 말과 똑같은 거겠지요.

요새 ‘인적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하지요. 저는 왜 이리도 이 말이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어떻게 하면 내 몸값을 더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열리는 강연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삼불정책에 고교평준화 이야기 등장으로 대선공약의 쟁점은 교육정책이라며 떠들어대는 교육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철학이 없고는 어떤 교육정책이 나오든 학생들은 실험대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공해 속에서 현기증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 땀내 나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섞으며 안정된 위치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문득 시선을 돌린 곳에 보이는 글귀가 내 머리를 더욱 지끈거리게 했다.

'고된 입시, 너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버스에 부착된 입시학원의 광고 문구였다.
모든 수험생들을 철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광고 속의 한 입시학원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불편했다. 광고에 고무되기는커녕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대체 왜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하는 걸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왜 우리는 더욱 지독하고 치열해져가는 입시에 자신을 맞추려 하며 행복은 커녕 자꾸만 불행해져 가는 걸까.

더욱 지독해지는 경쟁사회.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는 서바이벌 사회.

입시를 넘어 대학사회로 들어왔지만 더 이상 대학은 자유와 사색의 장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취업을 위한 자격증에 불과한 시대가 되어 버렸고, 취업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은 고등학교보다 더 심해졌다.

경쟁사회로 변해버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생들이 꿈꿀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력서를 빛나게 할 높은 학점과 평균 이상의 영어점수 그리고 해외연수, 인턴생활과 같은 규정된 경험들 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고된 입시 공부를 하고 고된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한다. 현재의 불행을 삼키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대체 왜 우리는 그 ‘행복’의 구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만 할까?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꿈이 있기 마련인데, 경쟁을 부추기기만 하는 사회속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사회가 정해준 행복을 얻기 위해 획일적으로 경쟁에 몰입하는 것 뿐이다. 오로지 명문대를 향해, 좋은 회사에 내 자리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 100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내고만 있다.

하지만 경쟁속에서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는 없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한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뿐이다. 그리고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경쟁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최근 대학가에 불고 있는 공무원 열풍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분명해진다.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전국의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고시에 목을 매고 있다.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하나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진정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저 안정된 삶에 대한 희망하나로, 남을 밀어내야만 하는 소모적이고 팍팍한 경쟁사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 치열한 경쟁 전차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자꾸만 높아가는 경쟁이 대체 우리에게 무얼 안겨주는 건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희망을 부추기는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부추기는가. 왜 다양한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가. 아니, 왜 우리는 다양한 꿈을 꾸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몸에 붙은 불안의 이물질을 떼어내고 내 시선의 프레임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없다. 우리는 그저 이것이 삶이라고 자위하면서 생활의 의욕만을 펌프질하는 사회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다시 사유해보자.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자꾸만 불행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관망해보자.경쟁에서 승리하는 1명이 되는 것보다, 99명의 패배자들이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굉장히보고싶어요

일상 2006. 9. 18. 22:48


오랜만의 편지네요
갑자기 가을바람이 드세졌어요. 덜컹거리는 창문에 내 마음도
덜컹거리는 것 같아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밖을 나섰네요.
어둑한 운동장을 축 처진 어깨로 거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없는 긍정은 그저 민들레 홀씨와 같아서
훅-하고 불면 휙-하고 날아가기 십상이라고,
하지만 수십,수백 번의 회의와 허무를 통해 피어난 긍정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그 뿌리를 통해 시원한 물을
흠뻑 빨아 들이며 알차고 알차게 여물어 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슬픈 눈빛. 그 속에서 저도 살아 가는 힘을 얻거든요.

비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지금쯤 창문에 박히는 빗방울을 하나둘씩 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서점에 들어가 평소처럼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을 골라들고
쇼파에 앉았습니다. 황경신의 책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괜찮아,그 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프로방스 여행기인데
제목에 꽂혔죠. 머리글을 읽으려 하자마자 영업 마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오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교보서점의
마감방송에 흘러 나오는 음악.

우선 아랑곳않고 머릿말을 읽다 참 좋은 글귀를 찾았습니다.
"삶은 표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안한 세계를 떠다니고 있다.."

물었었죠. 힘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일상이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지 말입니다.
이 글귀를 읽어 주면 분명 당신은 그렇게 말하겠죠.
내 의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사는 거겠죠.
계속 살다보면 가로등에 불 켜지듯 모든 게 하나둘씩 선명해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요.

태풍이 온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태풍이 온다는 말의
그 조급하고 불안함이 좋다고 했어요. 당신의 일상도 저의 일상도
조마조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에 대한 기대감에서라면
더 좋겠죠.

굉장히 보고 싶어요.
스산한 가을 바람이 깔깔한 제 가슴을 훝고 지나가며
사정없이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다해도 좋은 가을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