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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8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1)
  2. 2007.12.05 너희 마저도.
  3. 2006.09.18 굉장히보고싶어요 (1)

버스 안에서 카프카 소설에 한창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하며 킁킁 신중히 맡아 보았는데 정말 가스냄새였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 가스 냄새가 나는 거지 연료가 새는 건가 버스에 문제가 생겼나
설마, 버스가 폭발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깊어질수록 가스 냄새는 더욱 더 짙어 졌다
답답한 건 주위엔 킁킁 거리지 조차 않으며 버스와 함께 무심히 흔들거리는 무표정한 사람들
어떡하지 가스 냄새 난다고 주위에 말해야 하나 버스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사람들 빨리 대피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소심한 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부여잡을만큼 지금 억울한건 없으니까 그래 괜찮아
그런데 왜 난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소심하게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거지
내 소심함이 죽음보다 중요한 체면인가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왜 이렇게 가스냄새가 심하게 나는 건지 조그만 마음이 높아지는 밀도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찬바람이 얼굴을 확 때린다
앞에 앉은 아줌마가 창문을 열었다 가스냄새가 내 코로 다 숨어 들어간다 시큼하게 눈으로 확 올라온다
고개를 떨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니 변하지도 않았던 내 표정은 그대로 책을 마저 읽어 내려간다

검은 얼굴의 카프카가 말한다

내가 시험굴착을 했을 때, 그가 혹 내 소리를 들었을 수 있었으리도 모른다, 비록 내가 파는 방식이 극히 작은 소음을 내지만, 그러나 그가 내 소리를 들었더라면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조금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도 귀 기울여 듣자면 적어도 작업중에 이따금씩은 멈추어야 했을테니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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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너희 마저도.

일상 2007. 12. 5. 13:17

신발끈이 못나서 맥없이 자꾸 풀린다 하루에도 열번 씩은 풀어지는 신발끈과 묶고 풀리는 지루한 싸움을 한다 리본으로 꽁 동여 매고 잛게 남은 끈을 다시 한번 매듭져도 시간이 지나면 또 끈이 발에 밟힌다 때로 풀린 끈이 물에라도 적셔 질척해지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방치해둬버린다 풀린 끈을 보니 마음이 서글프다

신발에 뒷꿈치가 자꾸 벗겨지는 양말이라든가 두터운 옷에 밀려 자꾸 벗겨지는 가방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요즘 나를 속상하게 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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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보고싶어요

일상 2006. 9. 18. 22:48


오랜만의 편지네요
갑자기 가을바람이 드세졌어요. 덜컹거리는 창문에 내 마음도
덜컹거리는 것 같아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밖을 나섰네요.
어둑한 운동장을 축 처진 어깨로 거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없는 긍정은 그저 민들레 홀씨와 같아서
훅-하고 불면 휙-하고 날아가기 십상이라고,
하지만 수십,수백 번의 회의와 허무를 통해 피어난 긍정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그 뿌리를 통해 시원한 물을
흠뻑 빨아 들이며 알차고 알차게 여물어 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슬픈 눈빛. 그 속에서 저도 살아 가는 힘을 얻거든요.

비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지금쯤 창문에 박히는 빗방울을 하나둘씩 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서점에 들어가 평소처럼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을 골라들고
쇼파에 앉았습니다. 황경신의 책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괜찮아,그 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프로방스 여행기인데
제목에 꽂혔죠. 머리글을 읽으려 하자마자 영업 마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오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교보서점의
마감방송에 흘러 나오는 음악.

우선 아랑곳않고 머릿말을 읽다 참 좋은 글귀를 찾았습니다.
"삶은 표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안한 세계를 떠다니고 있다.."

물었었죠. 힘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일상이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지 말입니다.
이 글귀를 읽어 주면 분명 당신은 그렇게 말하겠죠.
내 의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사는 거겠죠.
계속 살다보면 가로등에 불 켜지듯 모든 게 하나둘씩 선명해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요.

태풍이 온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태풍이 온다는 말의
그 조급하고 불안함이 좋다고 했어요. 당신의 일상도 저의 일상도
조마조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에 대한 기대감에서라면
더 좋겠죠.

굉장히 보고 싶어요.
스산한 가을 바람이 깔깔한 제 가슴을 훝고 지나가며
사정없이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다해도 좋은 가을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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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syrinx17 마르케스 2008.07.07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일처음.포스팅이 보고싶었어요.
    역시.보길잘했네요.
    그 스산했던 가을바람이 다 지나가고 눈발이 날리기전에.
    그를 보았기를.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