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2012.10.17 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9
  2. 2012.10.04 그랬다 2
  3. 2012.09.07 꿈에서 혹 깨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2
  4. 2012.09.02 아무렴 2
  5. 2012.07.30 사랑 보다 사람 2
  6. 2012.07.30 영- 4
  7. 2012.07.15 파리릿
  8. 2012.06.30 유월의똥
  9. 2012.06.05 스물아홉,여름 3
  10. 2012.04.26 글아닌글 1


김민기 : 미대 들어가서 나는 오히려 그림을 포기하게 됐어.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미대라는 교육제도 때문에. 당시엔 어려서부터 그림을 한 것이 아니라 고 3쯤 돼서 '어디 갈까' 하다가 2학기 때부터 미대나 가볼까 그래서 미대 교수 과외를 받고 들어온 애들이 태반이었어. 걔들 기준으로 커리큘럼이 짜지는 거야. 실망을 했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 그런데 교수님 중에 한 분 전성우 씨라고 계셨어. 어느 날 그분이 외국 그림책들을 쓱 보여줘. 난 내 그림은 우주 역사 이래 최초로 만든 나의 작업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책 안에서 누군가 이미 다 한 작업인 거야. 그럴 때의 그 아픔. 그 '쟁이'들의 아픔. 그림 안 그려본 사람들은 모르지.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왔는데.

주철환 : 이상하지 않아.

김민기 : 비슷한 기억이 또 있어. 공장 나오고서 막노동판 다닐 때. 그때 일당이 오천 원인가. 그 일당 받고 죽어라 연립주택 지을 땐데 아무리 열심히 일당 받고 일해도 저 집에서는 내가 살 수가 없더라고. 마르크스적인 명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야. 어디 머슴으로 살더라도, 비록 소유는 내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 입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 아니냐. 그걸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농사를 지으러 간 거야. 가면서 절망인 것이 한쪽 옆에는 항상 공상을 갖고 있다고. 창조, 생산, 이러한 어휘들에 대한 프라이드가 농사일에 있을 것이다, 거기는 뭔가 있을 것이다 하는 그런 공상. 한 3년째인가, 모내기 일을 하고 나면 말이야, 묘한 잠깐의, 긴장을 전제로 하지만, 휴식이 있어요. 모내기에서 김매기까지. 모내기하면 한 달 반 정도 떼로, 집단적으로 노동을 하잖아. 하고 나면 기분 좋은 휴식이 있다고. 마지막까지 하고 나면 그 다음 날은 새벽에 물꼬를 보러 나가거든. 논이라는 게 밤새 물이 찬단 말이야. 물에 다 잠기면 숨 막혀 죽거든. 새벽에 나가 물꼬를 터서 물을 빼준단 말이야. 실상 물꼬라는 게 한 삽 분량밖에 안 돼. 물이 쏴아~. 그건 똥 사는 것보다 시원하지. 배설이지. 근데 그때 퍼뜩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농사라는 게, 내가 그렇게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왔던 이 일, 여기서 한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한 삽의 흙을 옆으로 옮겨놓는 이상은 아니더라고. 물이 가진 완전한 수평은 사람이 불도저로 아무리 흙을 인위적으로 해도 막을 수가 없어. 바람이 불어주고, 벌레들이 왔다 갔다 하고, 햇빛 때문에 광합성하고, 그중에서 농부가 하는 일이란 게 그 흙 한 삽 옮겨주는 것밖에 없더라고. 그걸 갖고 생산이 어떻고 창조가 어떻고 그렇게 믿고 왔던 거야.

주철환 : 큰 깨달음을 얻었네요. 

김민기 : 그런 처참함이라는 것은 차라리 축복이지. 꼭두새벽인데, 너무 창피하고, 너무 죄송하고. 그래서 논두렁에 납작 엎드렸지. 그것이 결국 '쟁이'라거나 그런 것과 직접 통한다는 얘기야. 창작에 대한 컨셉트도 바뀌더라. 전체 매커니즘 중에 내가 같이 참여하면 '그건 내 창작이다'라고 생각이 바뀌더라고.  


김민기 인터뷰 _ <결벽증과 완벽증 사이> 중에서


 

내가 믿는 대부분의 가치들은 경험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겨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여전히,
아침에는 이것에 의지하다 저녁에는 저것에 의지한다. 봄에는 이것을 탓하다, 가을에는 저것을 탓한다. 와중에도 이런 생각은 변함없다. 내가 확신해야만 하는 가치는 반드시 찾아 온다고.

김민기의 마지막 말이 참 인상적이다. 전체 매커니즘 중에 내가 같이 참여하면 '그건 내 창작이다'라는 생각, 태도. 이런 마음가짐이 내 일상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달음을 일상의 태도로 연관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과 성실함, 결국은 진정성. 그게 느껴진다, 힘이 된다, 김민기가 좋다, 쑥스러워 손을 휘휘 젓고 도망칠 사람이라 더욱 좋다. 아마 당신 능력이라고 믿지 않아 쑥스러워할 것이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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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일상 2012. 10. 4. 12:59

새벽에 문득 깨어 시계를 보고 다시 잠에 들었다
깜빡 자는 사이, 환한 주위 온 천지 설원이었다
머리 뒤 하늘에서 아주 커다란 낙엽 하나가 내 앞으로 날아 왔고
좋다고 그 낙엽만 쳐다보고 손을 뻗으며 쫓아 갔다
뒤에서 니가 웃었다 머릿속이 시원했다
이거봐, 하면서 니가 달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달려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았고 바라보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너는 순간 멈추며 쭈욱 미끄러지더니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멀어졌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너처럼 하고 싶어, 마음으로 하는 말이 온 사방에 울렸다
지평선 끝에서 이미 사라지는 너가 보였다
나도 힘껏 달리다 팔을 탁 하고 펼쳤고 기우뚱 거리다 균형을 잡았다
이 미끄러짐이 멈추지 않길 이곳은 꿈속이니까 시원하게 달리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그렇게 가도 가도 너가 사라진 끝은 나타나지 않았다
니가 땅으로 꺼졌나봐, 하는 말이 온 사방에 울렸고 니가 웃었다
바삭한 낙엽을 손에 꼭 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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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 영화제가 무산될지도 모른다. 이런 기사 제목을 보고 잠시 놀랐습니다. 프랑스 문화예술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실업수당 감축에 항의해서 영화제 지원 거부 및 영화제 점거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미 지난 해 유럽 최대 연극 축제인 아비뇽 연극제도 무산시켰습니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 입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요, 

꿈에서 혹 깨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칸 영화제, 조금은 환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요, 하지만, 그 역시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 당연한 사실을 그 뉴스가 다시 깨닫게 해주네요. 영화와 밥, 그리고 우리 영화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004. 04. 24. 정은임의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팟캐스트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이게 아이폰의 가치로움이구나, 감탄하였다. 뒤적이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발견했다. 당시 방송을 할 때에는 들을 생각을 못 했고 후에도 오래도록 알지 못 했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가, 최하동하 감독의 영화 '택시블루스'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는 것. 처음 듣는 순간부터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 그랬다. 슬프게 그려진 서울이란 도시의 이미지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렸다. 서울이 아니라 슬픈 서울의 이미지와. 듣고 싶어졌다. 열 개를 내리 다운을 받아 두고는 잠에 들 때마다 꼭 틀어 두었다. 왠지 따뜻하더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거의 십년 전 만들어진 라디오 방송에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유명인인 그녀가, 그저 유명하기 때문은 아닌데, 그리워졌다. 매끈하지 않은 방송 음질과 제인 버킨을 연상시키는 엷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다. 왜 이 방송이 이토록 오래 회자되는 지 알 것 같았다. 좀 더 깊이 있는 영화 이야기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다. 그리고 좀 더 가치롭고 속정 깊은 이야기들에.

길을 걸으며 듣는데 위의 멘트가 흘러 나왔다. 시그널송과 목소리의 리듬과 그리고 오프닝 멘트. 죽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쉰 후, 안녕하세요 정은임입니다 하고는, "꿈에서 혹 깨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라는 멘트가 이어질 때. 아 눈물을 훅 긷는 말. 영화 이야기도 좋지만 이렇게 마음 쓸어내리는 오프닝 멘트들이 특히 좋다. 내 마음이 무엇을,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해주어서 그래서 쓸어내리게 된다. 이렇게 귀를 쫑긋하고 라디오를 듣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냥 이 모든 것들에서 느껴지는 정은임이라는 사람, 그리고 이 이 방송을 만든 사람들. 내가 느낄 수 있는 그 위치로서의 그들이, 좋다. (이제 사람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조금 전에 또 다른 방송을 들었는데, 게스트가 한참 구로사와 아키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키라의 영화 '란'은 꼭 꼭 스크린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길 하고 거의 마무리 하는 와중 그제서야 게스트인 그가 Film 2.0의 이지훈 편집장이란 걸 알았다. 글만 읽었지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내 인터넷 크롬의 가장 왼 귀퉁이 창엔 살아생전 그가 쓴 글을 엮어 만든 책, '해피-엔드'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읽어야지 했던 거라 까먹을까봐 오래 창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지훈 편집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둘은 코너의 마지막 방송을 아쉬워하며 우리 그동안 한 번도 술을 못 마셨네 하며 대화를 한다. 죽는다는 건 뭘까. 이 세상에 없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얼마나 가까운 걸까, 얼마나 먼 걸까. 닿는 목소리, 닿는 마음, 멀어도 자꾸만 멀어져도 닿아가는 마음들. 어떤 평안.

 

이지훈 편집장의 마지막 멘트. 

이 방송이 나가는 시간이 새벽대고요, 새벽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시간대는 아니죠. 영화가 아무리 이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엔터테인먼트 수단이라 할지언정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일정 부분, 어떤 폐쇄적인 마니아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지금 이 새벽 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되는데. 그런 특별한 사랑, 대중적이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특별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에 바라는 영화의 매력이라는 것은, 평생 영화를 짊어지고 가는 영화인들이나 평생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한번쯤은 갖춰볼 만한 조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랑,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새벽 세시에 가까워 가는구나. 냄비 안 고구마들이 익는다. 새벽 세 시에 삶은 고구마들에, 담긴 특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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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일상 2012. 9. 2. 00:15

아무렇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일일까. 아무렇지 않아 할 만한 일이 아니면 아무렇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까. 아무렇고 아무렇지 않은 일의 기준은 뭘까. 아무렇고 아무렇지 않은 심정이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는 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거 아닐까. 반복해서 그 일을 떠올리지만 몸과 마음이 아프지는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걸까. 이제 그만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내뱉어 볼까. 치유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해 볼까. 그래볼까. 심정이 동해서 속시원히 내뱉을 수 있는 진심이 왜 한줌거리도 없을까. 이게 지겨워 나는 밥을 짓고 걸레를 빨고 헹주를 삶고 화장실 타일의 곰팡이를 닦고 빗에 낀 때를 벗겨낸다. 이불을 몸에 감고 이끝에서 저끝으로 도르르 구른다. 캄캄함에도 진심은 없다. 그러고보니 어릴 적부터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기고 자서 엄마한테 이마를 무지하게 맞았는데 어쩌다 그 버릇이 없어졌을까. 그런데 왜 나는 자꾸 본래의 화두를 흩트릴까. 아무렇지 않아서 일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서 피해버리는 걸까. 아무렇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들의 반복 만으로 말들이 빙글빙글 내 정신도 빙글빙글 헷갈리다가 결국 심정을 알아채는 일은 저 딴 데 로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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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보다 사람

일상 2012. 7. 30. 01:24

내 얼룩덜룩한 정체성을 통째로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그 사람, 그런 사람, 저기 사람, 나는 외로운 사람, 여기 사람, 너는 헷갈리는 사람, 사람아 사람아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아니 사람, 아니 사랑. 사랑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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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일상 2012. 7. 30. 01:08

모든 감정에 익숙해져 어떤 상황에서도 무덤덤해지는 게 꼭 성숙해지는 건 아닐텐데, 나이 헛먹었냐고 나이 먹는 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분에 못 이겨 누군가에게 화를 내본 적도 있는데, 그리되는 것이 꼭 성숙하고 나이 잘 먹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얼핏 들기 시작한 거다. 그럼 그건 매순간 덜 휘둘리고 덜 고통스러워지는 걸텐데 지금보다 더 관조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뭐 그리 더 좋은 태도인가 이젠 헷갈린다. 일년 간 줄곧 품고 있는 성숙,이란 단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옆에 내 나름의 정의를 적어 보는 것이 세월 가는 재미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내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낑낑 대다 결국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에 곰곰해진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애초에 엎어졌다. 어쨌거나 이제 겨우 한 번 쓰고 한 번 그어 버렸다.

어떤 경험 안에서 수시로 '이게 다 성숙해지는 길이야'라 위로했다. 하지만 가끔은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이미 망가져 버렸다고 해버리는 게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미친듯이 펄쩍 뛰며 상대를 사정 없이 몰아세워 보고 싶기도 하다. 벽을 탕탕 치고 땅을 꽝꽝 굴리며, 나는 망가져도 괜찮을 만큼 받은 상처가 많다고 결국은 바닥에 드러누워 펑펑 울어보는 것도 이젠 내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이 (혹시 없을지도 모를) 슬픔, 분노 같은 감정들이 정신과 상담의 현장을 서성이다 발견 혹은 습득한 거라 영 찜찜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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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릿

일상 2012. 7. 15. 22:58

수명 다한 백열등처럼 그림자가 들어왔다 나갔다 깜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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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똥

일상 2012. 6. 30. 02:11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남 추한 꼴 안 보고 나 추한 꼴 안 보이며 살아갈 수 있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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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여름

일상 2012. 6. 5. 12:01

매일 매일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좋아하는 일, 가령 글쓰기나 영상만들기,를 하고 천천히 걷고 오래 느끼며 하루 하루 살고 싶다. 알맞게 벌고 적게 소비하고 나름 저축하여 세계 구비구비 여행도 다니고 싶다.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하고 싶은 만큼 살아야지 하는 의지의 끝에 꼭, 평생 정직하게 사회 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노동(나 역시 누리는)을 하며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묘한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때 꼭 생각나는 이미지는 일본 여행 갔을 때, 도착하고부터 며칠 내내 들던 질문 '대체 이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이건, 세상이 이렇게 매일매일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게 놀랍도록 신기해졌기 때문에, 낯설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일본이란 사회가 주는, 손발 맞춰 성실하게 잘 굴리고 있다는 느낌, 심지어 아우라)
내가 너무 자족하려만 하지 않는가, 견디지 못 하는 것을 왜 견디지 못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가령,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가질 법한 종류의 죄책감인 걸까.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것에 딱히 의식이 있는 것도 의식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보면 난, 제대로 꿈을 꾸고 전략을 세우며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불안함이 또 죄책감을 만든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내가 부비고 위로 받을 사람들과 바운더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방식대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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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닌글

일상 2012. 4. 26. 15:51

극도의 피로 상태에서 쏟아내는 글은 매력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직선을 따라 걸으려는 몸짓처럼 고집스럽고 악착 같은 글짓. 이 안에는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든 쓰고 말겠다는 의지와 어떻게든 빨리 처리해버리고 싶은 귀찮음이 묘하게 엉켜 있다. 무엇보다 풍경 아닌-풍경과 내 마음 아닌-마음과 내 경험 아닌-경험에서 불현듯 튀어 나오는 진실들. 이것은 글이 끌어낸 진실 혹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 아니 그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의 피로가 끌어내는 진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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