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6.08.24 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1
  2. 2016.08.15 시차(시안)
  3. 2016.08.14 기차(란저우)
  4. 2016.06.25 사막(둔황) 1
  5. 2016.06.18 노는 아이들(카슈가르)
  6. 2016.06.08 거리에서(샤허)
  7. 2015.03.25 3210m 2
  8. 2014.08.01 나는 좋아하는구나
  9. 2014.06.15 사진, 기록 4
  10. 2014.02.15 닮았다

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1


-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왔다. 시계를 세 시간 뒤로 돌렸다. 숙소에 따뜻한 물 한동이를 부탁했는데, 받는데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나라로 왔음을 실감한다. 한동이로 몸은 충분히 헹구었으나 머리를 감느라 찬물을 두동이 썼다. 머리를 헹구는데 물을 많이 쓴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국경을 넘어 처음 도착한 소스트(Sost)는 도로 하나를 두고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이 도로가 카라코람 하이웨이(K.K.H). 이 도로를 꼭 달리고 싶었다. 이제 원없이 달릴 것이다. 도로에 서면 보이는 웅장한 설산은 아무리 보아도 영원히 질릴 것 같지 않다. 그 설산을 향해 걸으면, 이 정도는 견디며 다가오는 사람만을 맞이하겠다는 듯 피부를 때리는 세찬 바람이 분다. 걸어도 걸어도 그 설산에 닿지는 못하겠지만. 

-혼자보다는 둘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는 여행이다. 왜 둘이 만나 (꼭 제도로서가 아닌)결혼을 하라고 하는 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둘이 되면 ‘상실감’이라는 게 생기겠지. 나는 상실감이 두렵다. 

-미도리는 늦게까지 책을 읽는다. 먼저 자는 나를 위해 불을 끄고는 휴대폰 전등앱을 희미하게 켜둔다. 자다가 문득 깨어 돌아보면 저만치에서 그녀가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다. 일본의 작은 책이 유난히 귀여워 보인다. 

-흔히 사람들에게 훈자 마을이라고 알려진 카리마바드(Karimabad)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 숙소의 책꽂이에 『여행생활자』가 있었다. ‘
덕분에 십년 후의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난 뒤의 막막함. 여행을 시작한 지 꽤 되었음에도  새로운 장소로 옮길 때마다 매번 이런다. 특히 숙소가 나쁘면 빨리 적응하기가 어렵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파수(Passu)의 서스펜션 다리를 건널 때의 두려움과 집중력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다. 세상에서 건너기 가장 무섭다는 다리였다. 

-아마 평생 고통에 관한 질문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포플라 나무를 쳐다보다가 문득 긍정적인 질문들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서 말이다. 꽤 불행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래 나는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를 ‘생존자’의 관점에서 관찰해보면 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다시 이 숙소를 찾는다면 지금 눈앞의 포플라 나무 때문일 것이다. 이 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모네가 왜 하루종일 포플라 나무를 그렸는지 알 것만 같다. 굵지 않은 줄기로 여느 나무보다 높게 자랐고, 줄기의 대부분이 가지와 잎들에 뒤덮혀 있다. 바람이 불면 줄기까지 함께 흔들린다. 처음에는 보기에 위태로웠는데 익숙해지니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 사이로 빛이 고일 때, 이 나무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잎들. 잎이 반짝거린다는 것은 별 거 아닌 말이지만, 이렇게 그 말이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을 직접 바라보고 감동하고 있으니까 아직 내가 겪지 못한 흔한 말들이 아쉽다. 

-넉넉한 마음, 바라지 않는 마음

-『오래된 미래』를 계속 읽는다. “그것은 깊은 생각과 직접적인 경험의 결합에 의해서만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p.97)

-어제 꿈. 백 루피, 한국 돈으로 천 원 가량의 돈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여자가 있었다. (깨기 전까지는 무척 선명했던 그 얼굴) 나는 가진 돈이 별로 없어 빌려주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고도 자꾸 마음에 걸려서 나는 결국 돈을 빌려주기로 결심하고는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정까지 백루피를 갚아야만 한다고 했었다. 갚지 못하면 위험할 지도 몰랐다. 나는 조급하게 그녀를 찾아 헤맸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어느 건물 안에서 마침내 그녀를 발견했고, 그 순간 내 왼손에 백 루피가 쥐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웬일인지 그녀의 모습은 전과 달리 무척 깨끗했다. 심지어 화려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왼손에 쥔 돈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가 지갑에서 꺼낸 것은 한뭉치의 돈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니 내게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느끼게 하는 동선으로 이동해서 창구 너머로 돈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던 동정과 연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느낌이 주던 기쁨. 기뻤다. 해방감에서 느낀 기쁨. 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고 알 수 없다. 그저 이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앞선 드라마(그것도 내가 만든)가 필요했을 것이다. 

-중국의 동티벳을 다녀온 한 여행자의 말: “티벳 사람들은 부처를 정말 사랑하나봐요.” 사랑이라. 믿음과 사랑은 다른데. 

-어제 한 시간쯤 자면서 짧은 꿈을 꾸고, 잠시 깼다가 다시 잠들어 긴 꿈을 꾸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드라큘라처럼 날카로운 이를 가진 소녀를 보았다. 나는 그 이가 무서웠다. 그래서 있던 곳에서 도망쳤는데 도망친 곳에서 소녀를 또 보았다. 떠나기 위해 돌아섰을 때 그녀가 바로 앞에 서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나는 너의 이가 무섭다고, 날 해치지 않을 거냐고 하니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 미소와 한번의 끄덕임이 나를 편안하게 했고 순식간에 그녀가 좋아졌다. 그녀가 좋아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내 얼굴을 가져갔다. 

-꿈은 현실에서 받은 자극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꿈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감각을 얻기도 한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이 감각의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는다. 

-아주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늘 바라는 꿈. 하지만 매번 충분히 날지 못한다. 날개짓에 힘이 너무 많이 들고 곳곳에 장애물도 많다. 하지만 어제는 처음으로 ‘마음껏’ 날았다. 도시의 밤하늘이었다. 너무 벅찼고 온몸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공기를 가르며 날개짓을 할 때마다 손가락들은 차갑고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내 마음은 깊은 곳까지 시원했다. 그래서 너무 좋은데, 그런데 너무 쓸쓸했다. 나를 끌어내리는 중력도 없고 피해야 하는 높은 건물도 없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왜 이럴까.’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꿈에서 깼는데도 이 느낌이 남아서 오래 누워있었다. 

-저녁 여덟 시부터 숙소의 평상에 앉아 별이 뜨는 걸 본다. 설산이 지워지고 별들이 반짝인다. 

-잠이 솔 들 때 바로 진입하지 않으면 반의식 상태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어제는 모기가 계속 내 얼굴과 팔에 붙어있다는 착각(?) 때문에 얼굴과 팔 여기저기를 긁었다. 누가 보면 그런 내 모습이 어떨까. 

-한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는데,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싶고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터키의 테러 소식에 모험과 호기심은 바보 같은 걸로  돼버리는 것 같다. 마음이 무겁다. 

-유년 시절 내게 특별했던 
주문이 생각났다. 
어떤 상황에서 문득 두려움이 일기 시작하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 상상을 끝까지 한다. 엄마랑 동생과 함께 밤중에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느닷없이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지금부터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상상을 끊은 건 내리자는 엄마의 목소리. 동생의 손을 잡고 걷는데 안도와 동시에 허무함이 찾아왔고, 아마 내가 상상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기에 종종 사용했다. (원하지 않게 좋은 일들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나는 철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상상했던 나쁜 상황들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고, 상상도 못하는 더 끔찍한 일들도 발생한다는 걸 알았다. (좋은 일도? 좋은 일에 관해선 이 주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데, 모를 일이다. 좋은 일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어제는 자신의 몸을 칼로 난도질해 자살한 파키스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의 우울이 더 심각하기도 하다고. 세상의 고통을 피하고 싶어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닌데, 어딜가도 피할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비가 온다. 짜이를 마시며 안개 낀 산들을 
보았다. 

-내가 살던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낯설음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이곳은 파키스탄이라는 것.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해가 지면서 살구빛으로 물든 구름이 설산을 감싸고 있다. 그런 구름에 설산은 자신을 온순하게 내맡기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얼굴을 씻어주는 부모 같다. 오늘의 설산과 구름. 

-꿈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나는 쇼트트랙을 배웠고 재능이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게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을 잘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았다. 다가 올 경기에서 중국인들을 이겨야 했는데, 그들을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도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알아줌. 완전히 알아줌. 

-내가 느끼기. 무언가를 통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 감각으로 느껴보기. 

-숙소 
건물의 난간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보며 현지인과 나눈 이야기.
파키스탄은 핵을 갖고 있지만 전기는 부족하다. 사람들에게는 전기가 더 중요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 긴장을 만드는 것은 정부고 군사다. 사람들은 군대를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빠른 성장은 위험하다. 한국은 너무 빨리 성장했다. 파키스탄은 한국에 비해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주위는 어두워지고 아랫마을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문 소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시차(시안)

여행 2016. 8. 15. 13:33

해가 내 눈높이만큼 내려왔을 때에 시안역으로 들어왔는데 긴 줄의 검색대를 통과하고 돌아보니 그새 주위가 어둑했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라 긴장됐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 기차는 열한 시에 출발한다. 바닥에까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복잡한 대합실에서 운좋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자꾸 앞으로 고꾸라지는 큰 배낭을 두 다리로 힘주어 잡았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읽을 것이다. 글은 한국어인데도 단 몇 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읽었다. 설마 벌써 모국어가 낯선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키득대는 사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떠나고 한 여자가 다가왔다. 나이 든 여자. 하지만 머리칼은 새까맣고 한갈래로 묶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머리끈을 하고 있었다. 약간은 더워보이는 빨간 잠바.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물었다. “쓰 디엔?” 시간을 묻는 거라 짐작됐다. 나는 내 손목 시계를 보이며 아홉 시라고, 고작 몇 단어 아는 중국어로 답했다. 겨우 뱉은 그 말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 책을 내려놓고 손가락 아홉 개를 펼쳐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표시로 입술에 엑스자를 그어 보였다. 여자는 일어서더니 맞은 편에 앉아있는 공안에게로 향했다. 더워보이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오른발에서 왼발로 내딛는 보폭이 짧았다. 두 다리의 거리는 멀어서, 분명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되는데도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공안에게 답을 들었는지 여자는 다시 자리로 왔다. 그리고 내게 자신있는 목소리로 “쓰 디엔!” 이라고 했다. 내 시계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기차 출발 시각을 물었던 걸까. 난 답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자신의 오른쪽에 앉은 여자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을?) 애띤 얼굴의 상대는 짧게 답을 했고 여자는 자신의 표를 보였다. 상대는 귀찮은 듯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못믿겠는 표정을 한 여자는 다시 일어서더니 유모차를 잡고 있는 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다정한 표정으로 표를 들여다 보았고, 여자를 데리고 열차 정보가 있는 전광판으로 갔다. 남자의 아내와 아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따랐다. 정확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남자는 여자에게 꽤 길게 설명해주었다. 부디 그녀가 답을 얻었기를, 그래서 행여 기차를 놓치지 않기를. 그 사이 내 옆자리에는 늙은 남자가 차지했다. 대화를 끝낸 여자는 다시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짐, 잡동사니로 가득찬 노란 봉지를 들어보이며 무어라 말하자 앉아 있던 남자는 말없이 바로 떠났다. 주저앉듯이 자리에 앉은 여자는 노란 봉지에서 물통을 꺼내 몇 방울 되지 않은 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공안에게로 가서 표를 보였고 공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했고 여자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가 이내 일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 먼 곳에 보이는 그녀는 이제 쇠창살로 된 여러 개찰구 중 한 곳에 서서 그곳을 지키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궁금한 걸까. 그런데 왜 아무도 그녀에게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걸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질문이 아닐까. 계속해서 대합실을 헤매는 그녀가 오래도록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 시야에서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다시 책을 읽었다. 출발 삼십분 전이 되자 내가 탈 기차의 탑승이 시작되었다. 쇠창살로 된 개찰구 앞에 짐을 잔뜩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나는 행여 놓칠 새라 사람들 사이에 바짝 붙었다. 쇠창살의 문이 시끄럽게 열리고 이제 기차까지의 긴 행렬이 시작됐다. 행렬을 뒤따르다가 그녀를 보았다. 허리를 오른쪽으로 틀고 앉아 왼쪽 다리에 왼팔을 기대고 있었다. 왼손에 턱을 괸 채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벽 뿐이니 눈을 감고 있지 않다면 분명 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 뒷모습이, 나는 아주 진지하다고 느꼈다. 개찰구를 지나 기차가 있는 플랫폼까지는 꽤 길었고, 터널 같은 길을 군데군데의 희미한 주황색 빛이 비춰주었다. 밝았다가 그림자지기를 반복하는 눈앞의 뒷모습들이 낯설면서도 나를 안심시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기차(란저우)

여행 2016. 8. 14. 21:25

기차의 2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사슴들이 뛰쳐 들어왔다. 자던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뒤쫓으려 했지만 큰 사슴 한마리가 내 가까이 달려드는 걸 느끼고 구석에 가서 웅크렸다. 사슴은 다가와서 나를 핥기 시작했다. 끈적한 침이 귀와 볼에 옷 곳곳에 붙어 끈적거렸다. 나는 싫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또다른 사슴 한마리가 다가와 내 오른쪽 뺨을 핥았다.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내 몸을 더 작게 만드려고 했다. 놀라서 눈을 뜨니 꿈이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창밖으로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완전히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잠에 들었다. 기차는 이제 목적지인 란저우로 진입했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주위가 너무 아름다웠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만물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다닌 여행지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내 옆의 엄마에게 말했다. 기차는 주위의 산 높이 만큼 오르기도 하고 강물처럼 굽이쳐 돌기도 했다. 수면 위에 화려하게 옷을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인도인으로 보였다. 허공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동작과 부드럽게 출렁이는 수면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너무 아름다워서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차는 곧 란저우역에 멈추었고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채식을 시작했다며 가게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루 음식을 샀다. 가게 창밖으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2층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황톳빛의 산과 강이 보였다. 이 풍경 때문에 본래의 빛깔보다 더 검게 보이는 나무와 풀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에서 완전히 깨자 아까 다시 잠에 들기 전에 슬몃 보았던 그 낯설고 황량한 풍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란저우역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시안에서 이곳까지 여덟 시간이 걸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사막(둔황)

여행 2016. 6. 25. 18:19

이곳은 단순한 선들로 이루어진 풍경. 사막을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대부분은 줄을 지어 오르고 따라가던 대열에서 벗어나 걷는 사람도 있다. 아무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으로. 누군가는 점처럼 외따로 가만히 서있기도 하다. 모두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인다.
내가 오를 이 사막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덮히는 것을 보았으나 무릎을 굽혀 일어나 바지를 터는 사이, 그늘은 사라져 버렸다. 땡볕 속을 걷는다.
이곳은 완벽한 사막이 아니다. 고개를 돌리면 내가 돌아갈 곳이  보인다. 손에는 물과 손수건이 있다. 끝을 모르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걷고 또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죽음과도 같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가 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림자까지 지워버리는 완전한 어둠이 두려웠을 먼 옛날의 누군가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인 것 같다. 인간의 아주 오래된 풍경이라는 의미에서도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카슈가르의 올드 시티를 걸으며 집 앞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올드 시티가 자리한 곳에서는 2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흙과 벽돌로 지은 나즈막한 집들이 늘어서 있고 골목은 곳곳에서 갈라져 초행인 사람들은 돌아온 길을 기억하기 쉽지 않다. 바닥은 편편한 돌로 깔끔하게 깔려 있어서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 아이들은 쪼그려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공을 차며 뛰어나니거나 조금 더 큰 애가 작은 아이 손을 잡고 이리 저리 끌고 다니거나 한다. 발걸음을 따라잡느라 뒤뚱거리는 아기들의 뒷모습이 무척 귀엽다. 형의 주위에는 언제나 작은 까까머리 아이들이 따라다닌다. 언니들은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고 무릎 위에 앉히곤 들썩거려 준다. 그 앞을 뛰어다니는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꼬마들은 웃거나 울거나 소리치며 영원히 지치지 않을 것처럼 놀고 있다. (문득 궁금해지는 아이들이 논다는 것) 나는 좀 더 마음에 드는 골목에 멈추어 그늘 밑에 앉았다. 어디든 담벼락에 남기는 아이들의 흔적은 비슷하다. 도형만으로 그린 사람, 산수 풀기, 무엇보다 다양한 스티커를 일렬로 붙여두는 것. 한 아이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한눈에 봐도 심심한 얼굴의 표정이다. 나를 한번 보고 하늘도 한번 보고 노는 친구들도 보더니 손으로 눈을 비빈다. 이미 아침부터 오래 놀았는지 손은 지저분하고 맨발로 다녀 발도 까맣다. 아이는 땅에 떨어진 작은 쇠구슬을 발견했다.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이 방울 같았다. 그걸 집은 아이의 표정은 순간 호기심 가득하게 바뀌더니 작은 손가락들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방울을 유심히 살펴본다. 관찰이 끝났는지 그걸 바닥 위에서 굴리고는 멀리가지 못하게 빠르게 손으로 막는다. 위로도 던져보고(하지만 작아서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조심하는 몸짓으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기를 반복하기도 하였다. 오래 쪼그리고 앉아선 방울과 놀던 아이가 갑자기 콧물를 크게 마셨다. 순간 집중이 풀리며 쳐다보는 나를 느꼈는지 물끄러미 올려다 본다. 맑은 얼굴. 내가 미소지어 보이자 아이는 관심 없는지 다시 구슬이 있는 땅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발견한 낯선 물건에 빠져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렸거나 혹은 희미해진 옛날이 바람처럼 불어오는 것 같았다. 아주 먼 옛날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현기증. 눈 앞에 노는 아이처럼 나 역시 집중해서 이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거리에서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거리에서(샤허)

여행 2016. 6. 8. 00:19

해가 진 샤허의 거리에는 아주 멋진 가로등이 거리를 밝힌다. 거리엔 아직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두 손 가득히 짐을 들고 가는 여자들과 어깨동무를 한 소년들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소녀들이 있다. 여름이라도 해발 3천 미터인 이곳은 해가 지면 춥다. 털이 달린 티벳 전통옷을 입은 남자가 멈춰서더니 어린 아들의 옷을 바짝 여민다. 불편한지 아이는 칭얼거린다. 그는 아들을 번쩍 들어 품에 안고는 다시 걸어간다. 그리고 뒤따르는 아내를 돌아본다. 여자는 더 어린 아이를 안고 있다. 가로등 빛들 아래를 느리게 걸어가는 네 가족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왜 이리 애틋하고, 서글픈지. 나는 다정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들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깨어질까 두려운 느낌. 그래서 좋은 것들을 보면 늘 서글픔을 함께 느낀다. 아마 티벳 원주민들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을 것이다. 이 땅에 이들이 원하는 평화와 평온이 깃들기를. 서로의 옷깃을, 기척을 살피는 따뜻함이, 그런 존재들이 주는 위안이 감히 영원했으면. 모든 집들이 평온하고 따뜻했으면. 그리고 그런 집에 무사히 돌아가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당연해지기를.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3210m

여행 2015. 3. 25. 03:53

   

 

고래빠니에서 푼힐까지 오르는 1시간 여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 산길, 길은 가파르고 얼었다. 말없이 묵묵히 오르는 사람들의 긴 행렬에, 길이 좁아 중간에 이탈해 쉬기가 쉽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엔 도착해야 한다는 욕심도 있다. 푼힐에 들어서는 순간 전날 마주쳤던 어린 여학생이 꺾이듯 바닥에 주저 앉으며 그와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만약 앉지 못했다면 울음만은 끝까지 참았을 동작이었다. (히말라야, 네팔)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나는 좋아하는구나

여행 2014. 8. 1. 03:19

 

며칠째 이 높은 곳에 올라 지평선 아래로 해가 사라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해 질 녘이 되면 마을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이제 막 시계탑의 불이 켜졌다.

독수리의 한쪽 날개가 휘청거리는 순간을 몇 번이나 보았다. 

메헤르가르성은 정말 멋지다. 저렇게 크고 단단한 것을 나는 좋아하는구나.

 

1월의 중순, 2013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사진, 기록

여행 2014. 6. 15. 03:45

 

 


인도 사람들은 해가 뜨기 직전의 강물이 가장 따뜻하다고 믿는단다. 그건 해가 떠오르기 전이라, 그러니까 아직 강이 해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안개에 가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심장이 시릴 정도로 차가울 이른 새벽의 강물 안에서 소처럼 느리게 몸을 적시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지은 사원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기울어지는 중이란다.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동안 갠지스강을 바라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인간들이 내던지는 고통과 슬픔과 바치는 정성과 매달리는 구원의 바람이, 저 강에게 얼마나 짐이 될까. 희미한 가로등이 막 켜지기 전, 해질녘의 하늘은 무척이나 하얬고 아이들이 띄워올린 팽팽한 연들도 그제서야 힘을 풀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몸을 한번 뒤집을, 가장 평온해 보이던 강물.

 

 

어쨌거나 각자의 시선, 각자의 믿음.

해질녘의 그때, 아주 오래 화장터 앞에 있었던 날. 나는 내 느낌대로, 너는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고 말했다. 서로가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다. (인도, 바라나시)

 

 

 

 

 

얼어 죽을 것 같았던 버스 안에서의 열 시간, 어차피 흔했던 성희롱,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장사치들의 소란, 해가 뜨기 전 새벽의 추위, 유령처럼 배회하던 몇몇 사람들, 힘이 다할 때쯤 찾은 숙소. 배에 묶인 가방의 벨트를 푸는 탁하는 소리에 긴장이 풀려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시원하게 오줌을 누며 하루 사이에 벌겋게 튼 손을 바라보았다. 돌아가 침대에서의 길고 긴 잠, 아름답던 꿈. 원숭이들이 지붕을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깼다. 늦은 아침이었다. (쉼라, 인도)  

 

 

 

 

원숭이가 원숭이신(하누만)을 바라보고 있다. 원숭이가 유난히 많은 쉼라. 과자를 먹으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하필 그 거리에 나밖에 없었다, 갑자기 원숭이 두 마리가 숲 사이에서 펄쩍 뛰어 나와 난 기겁을 하며 과자를 급히 주머니에 넣고 씹던 입도 꽉 다물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숨죽이며 가던 길을 걸었다.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을 원숭이의 눈길을 느끼며. 어느 날엔 걷는 나를 한 인도 여자분이 뒤에서 안아 옆으로 비켜서게 했다. 알고 보니 원숭이가 내 뒤에서 카메라 가방을 노리고 있던 거였다. 짧은 순간 땡큐를 다섯 번 이상은 말했을 거다. 그러고 보면 특히 쉼라에서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고, 그건 모두 인도 여자들 덕분이었다. 쉼라가 다른 지역에 비해 여러모로 여유로운 곳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쉼라, 인도)

 

 

 

 

 

(쉼라, 인도)

 

 

 

오가는 길에 눈에 띈 이 전단지가 실종자를 찾는 내용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쩜 수배 전단지였을까) 바라나시에서는 내가 묵던 숙소의 카운터에 실종된 외국인을 찾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그 종이를 꽤 자주 봐서 거길 떠날 때쯤엔 실종자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였는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리쉬께쉬, 인도)

 

 

 

 

네팔 나가르코트로 가던 길. 능숙하게 승객을 태우고 내리고, 헷갈릴 것 같은 데도 사람 한 명 놓치지 않고 요금을 받던 소년. 운전 기사는 소년이 버스를 탕탕치는 소리에 맞춰 차를 멈추고 출발시켰다.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지던 순간의 풍경.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매연은 어찌나 심하던지. 수건으로 막아도 코안은 매웠고, 그 와중에도 좋아하는 인도 과자를 신나게 까먹었다. 어느새 불어난 승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버스를 가득 메우고, 아기 엄마에게 자리를 피할 수도 없어 안고 있는 아기를 친구가 받아 안았다. 꽤 큰 아기였는데도 가볍다고 했다. 점점 지대가 높은 곳으로 이동하고 한 무리의 주민들이 내리고 조금 더 오르자 목적지인 종점에 도착했다. 기미도 없던 체기가 갑자기 오르고 숙소에 도착해선 과자를 토하고 저녁으로 조금 마신 핫초코도 다 토하고.

 

 

 

 

세상의 끝, 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가르코트의 한 게스트 하우스. 산책을 간다는 우리에게 숙소의 주인이 친절히 그려준 주변 지도. 뇌가 두 개니까 알려준 대로 잘 다니겠지? 라고 그가 농담을 했고 우리 셋은 하하하 웃었다. 그런데도 우린 너무 쉽게 길을 헤맸다. 묻고, 또 묻고, 물어도 헤매고 묻지 않으면 더 헤맸고. (네팔, 나가르코트)

 

 

 

 

 

내내 비를 맞고 산속을 걸었다. 해가 거의 저물 무렵에야 몸이 피곤한 걸 느꼈고 찬바람에 땀이 빠르게 마르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오를 땐 눈에 잘 띄던 롯지도 보이지 않았다. 많이 절박해질 즈음에 발견한 허름한 롯지. 어떻게든 하룻밤 재우려는 주인은 발빠르게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그가 저녁으로 만들어준 면요리는 외국인 입맛을 배려하지 않은 지나친 향신료 투입으로 거의 남겨지다시피 했다. 숙소의 벽은 얇은 나무판자로 만들어졌다. 이 헐거운 숙소가 산의 찬바람을 잘 막아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잤다. 잠결에 친구가 챙겨주는 감기약을 먹었다. 우린 깨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정신없이 아침 공기를 마셨다. 신선하고 단 공기가 발끝까지 전해지며 잠에 덜 깨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 세워주던 그 순간의 느낌. (네팔, 히말라야 자락)

 

 

 

 

네팔에서 다시 인도로 넘어가기 전, 고락뿌르 역.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기차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그렇다고 시간이 지겹게 흐르던 건 아니었는데. (네팔, 고락뿌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닮았다

여행 2014. 2. 15. 12:12

 

지금 내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이 내가 알던 한 사람과 여러모로 몹시 닮았다. (그 친구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이런 느낌이 유독 자주 찾아온다. 어느 정도 살았다는 증거일까. 이건 행운이자 불행. 행운인 것은 더 이상 떠올릴 구실이 없는 사람을 새삼 상기시킬 수 있는 거고, 불행은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내가 신선하게 편견 없이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3. 01.16. 수요일)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