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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토요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행사 '여성영화 30년을 되돌아보다'
독일 페미니스트 여성감독 헬마 잔더스-브람스(작품: 독일, 창백한 어머니)와 함께.

"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엄마를 상대로 싸웠다.(여기서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여성감독으로서 끝까지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건 싸워 나가라고 가르쳐 준 내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 세대는 전쟁에서 살아남으신 분들이다."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비즈니스에서 난 벌써 내 가슴을 물어 뜯겼다. 이제 그들은 내 배까지 물어 뜯어려 하고 있다." "여성감독들은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

"남성들이 깨닫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

"내가 영화를 만들고 여러분이 영화를 보는 건,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그려나가면 된다. "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는 행복한 사람' 이라고 했다.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더 높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길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야 한다."

"감독을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여성감독으로선 더더욱.. 그렇게 기복을 겪으면서도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30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관객이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한다. 소통하고 싶은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

"영화라는 영향력이 강한 예술을 권력으로 남용해선 안된다."

"지구에 대한 책임, 사람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여성 정치인들이 등장한다면 우리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페미니스트적인 정치이다.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responsibility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책임감. 감독으로서, 여성감독로서 그녀가 가진 책임감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름진 한 줌의 흙이 되리란 걸.
워크샵 후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내가 상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자기반성을 해야할까” 라고 질문하는 내 옆의 이성친구에게 난 더욱 감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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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폐막작으로 본 '모두들 안녕하십니까'를 보다 든 단상.
 

배경은 홍콩. 한 소녀는 말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걸 굉장히 치욕스럽게 생각하셨다고. 또 한 노인은 공무원들이 보조금 때문에 찾아왔을 때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가난했지만 자기 스스로 벌어 먹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잘 돼도 않는 복지에 기대를 걸긴 하지만 한편 여전히 복지가 껄끄러운 건 사실이다. 복지도 결국은 권력 관계다. 노숙인 무료급식 같은 거. 그건 주는 사람이 주지 않으면 급식은 중단되고 배고픈 사람은 굶게 되는 거다. 그래서 요즘 인권운동에서 주말농장을 열어 자급할 수 있는 운동을 생산하고 있는 거고.

처음엔 보조금 받는 걸 생각도 못했다며, 이젠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다행이라 웃는 영화 속 사람들에게서 나는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돈이 없어 죽은 아들의 시체를 못가져온 노인의 지난 과거에 대한 아픔. 그런 만행을 저지른 주체는 누구였던가. 더 많은 것을 뺏기고 요만큼 얻어 오는 것에 만족하는 것. 만족하게 만드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복지의 중요성을 떠들다가도 복지병을 이야기하면서 생산성없는 사람들을 쓸모없이 여겼다. 지나친 복지는 시장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의료수급권자들에 대한 '도덕적 해이' 발언도 마찬가지 아닌가. 복지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국가 입맛에 안맞으면 언제든지 뺏길 수 있는 거다. 시혜적 차원의 것들은 늘 불안을 준다. 인간의 잠재성도 억누릴 뿐더러. (내 세금 내는데 복지혜택 준다고 하는 언어도 웃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불안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자유는 시장에서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 보호 안에서도 실현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흠..아무리 생각해도 난 소설 <남쪽으로 튀어> 의 아버지처럼 세금내기를 거부하고 남쪽 섬으로 가서 집 짓고 살거나  '시민 불복종' 의 소로우를 따르거나. 그런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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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것 하나 더. 한 노인이 젊었을 적 한 남자의 첩으로 들어 갔었는데 남편이 굉장히 부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주의 정권 등장으로 부자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시 재산 뺏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자살했다고 말했다.  '평등'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내세운 것이 등장하면서 희생시킨 목숨들.. 전복은 위험하다. 특히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를 바로 갈아 엎어야 한다는 발상이나 방법은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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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영화가아니었다면 2008. 4. 12. 14:32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7)/나카시마 테츠야


보는 내내 넘칠 듯 말 듯 슬픔이 드나들었다. 마츠코의 불행한 일생을 연타로 날리면서도 차마 울지 못하게 하는 코믹에 뮤지컬이란 장르의 영화. 흐르는 음악 속에서 마츠코 움직임이 곧 춤이 되어 스크린 위에서 운동할 때 그 발랄함에 겨우겨우 안도하며 슬픔을 억눌렀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마츠코가 죽고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이 이 생에서 끝나는 순간, 카메라는 돌연 길을 따라 강물을 따라 마츠코의 일생을 거슬러 회귀한다. 시간을 여행하듯 부드럽게 유영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그 알 수 없는 해방감에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만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 궁지에만 몰리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했던 마츠코, 늘 타인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본인은 배신당하고 지옥의 나락까지 떨어져야 했던 마츠코. 그녀를 보며 영화 보는 내내 울지도 못한 채 차곡차곡 쌓아왔던 억눌림을 마지막에서야 터뜨린다. 온 몸이 풀린 채 카메라를 타고 스크린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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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두드리는 낮은 실로폰 소리와 강물 흐르듯 부드러운 음악, 카메라가 훑는 곳엔 불행했다고만 생각했던 마츠코가 간간이 웃고 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부르는 노래는 나를 채우고 우리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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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정말 대단하다. 풍부한 색감은 화려하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주는 느낌이 있다. 헐리우드 몽타쥬로 마츠코의 일생을 짧게 압축하여 감각적으로 만든 뮤직 비디오들에 넋을 놓는다. 관객의 마음을 조종하는 힘이 있다.


혼자가 되기 싫다는 그것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매달려서 제 모든 걸 주면서까지 불행했던 그녀는 어쩌면 사람이 사랑을 사랑하는 것, 사람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하느님인지 모른다. 마츠코의 일생은 혐오스러웠지만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는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가치는 말야.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로 정해지는 게 아냐. 다른 사람에게 뭘 줬는지로 정해지는 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버린 영화 속 '쇼'의 여자친구가 한 말에서, 나는 계속 살아갈 희망을 조금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건 감각을 경계선 끝까지 밀어 붙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설명할 수 없이 모호하다. 영화는 그런 모호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를 보고 알 수 없는 무엇에 사로잡혀 그 무엇을 명확하게 하고 싶어 난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언어가 엉킨 감정을 풀어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사실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언어로 설명되지 않아도 좋다. 내 마음 해독하지 못해도 좋다. 그게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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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사랑해서 평생 외로움에 사로 잡혀 살아간 마츠코, 인생의 마지막에 쓰레기 창고 같은 좁은 방에 혼자 들어서며 조그맣게 중얼 거린다.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그녀가 듣고 싶던 말 한마디는 그저 '오까이리'.. '어서와' 그 한마디였을 뿐인지 모른다.
죽은 마츠코와 마츠코의 여동생이 천국에서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오까이리' 여동생의 그 한마디에 희미하게 울 듯 '다다이마'라고 말하는 마츠코.
하루종일 떠다니는 그 이미지와 대사 때문에, 나는 영화를. 그리고 이 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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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녕 유에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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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

소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_김애란


안녕- 안녕- 이 기분 좋은 인사말, 마치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로 인간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 같다. 오늘도 우린 얼마나 ‘안녕’이라는 말을 많이 흘리고 다녔을까. 그 한마디엔 반가움, 걱정, 아쉬움 같은 풍부한 감정들이 담백하게 압축돼 있다.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모두 담겨 있는 아이러니한 말, 안녕. 무언가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그 폐쇄성. 내겐 너무 매력적인 말이다.

아아. 날씨 좋은 봄날. 안녕. 이라고 했을 때의 상냥함과 애틋함을 마음껏 흘리며 다니고 싶다.
대신 난 안녕이라는 말로 나를 잡아 끄는 영화들을 뒤적거려 본다. 영화
들 역시나 상냥하고 애틋하다.


 "안녕 쿠로" (2007) 감독/마츠오카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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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는 아키즈라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개의 이름이다. 영화는  1960년대 나가노현에 실존했었던 일을 소재로 했다. 실제 쿠로는 10여년을 넘게 학생들과 생활했고 직원명부에도 들었다. 쿠로의 장례식 때는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단다.

영화는 료스케, 코지, 유키코라는 세 친구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학창시절 곁에서 쿠로는 또 한명의 친구로 함께 했다. 학교 사람들은 쿠로를 통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또 누군가의 곁에서 외로움을 함께 이겨내는 법을 배운다.
쿠로가 있어 아키즈 고등학교를 거쳐간 사람들은 참 따스했고 따스함을 배웠다. 영화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아기자기하게 연결하면서 그런 것들이 맞물리며 풍기는 향기로운 감동이 있다.  


쿠로의 장례식이 끝나고 유키코는 료스케에 말한다.
"쿠로는 후회없는 삶을 살았겠지?"
"응. 쿠로는 최선을 다해 살았어."
"쿠로는 행복했겠지? "
"응"
"나도 행복하고 싶어"

"너에게 많은 걸 배웠어. 고마워. 안녕..쿠로"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All's Right with the World 2007) 감독/킹 와이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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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홍콩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다. 영화는 스틸사진처럼 잔잔하게 흔들리는 장면들과 여러 명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사람들 역시 잔잔하게 웃으며 잔잔하게 울먹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어떻게 가난하게 됐는지를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의 느꼈던 심정들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경제 발전국 홍콩사회가 놓치고 가는 것들이 담겨 있다. 그저 공공임대주택과 몇 푼의 보조금으로 이들은 행복할까. 과연 세상은 나아진걸까. 그들은 많이 공허해 보이고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여러 명의 인터뷰로 구성된 영화는 한 사람이 인터뷰하는 목소리가 깔리면서 다른 사람의 일상생활 모습이 중첩되는 효과를 썼다. 그렇게 톱니바퀴 물리듯이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씩 연결돼 있다. 그리고 난 돈이 많은 사람들 역시 내면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외화면에서 간간이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물음에 결국은 마음이 콱 메인다.

'외로우신가요?'
'네..아..아니요' 중년의 여인은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복도를 걸어 가는 세월에 많이 닳은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할머니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아른거린다.
 

 
 "안녕 유에프오" (2004) 감독 / 김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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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에서 일을 하는 시각 장애인 경우와 버스운전기사이자 전파사 직원이자 자칭 라디오 DJ인 상현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구파발이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소박하고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진에 찍힌 유에프오가 동네 사람들을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에프오를 볼 수 있는 날을 조마조마 기다리기 시작한다. 착한 사람들의 풍경은 정겹고 경우를 향한 상현의 순수한 사랑과 경우의 밝고 용기있는 모습에 마음이 맑아진다. 영화는 일기장을 써내려가듯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들의 이야기들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냈다.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유에프오의 실체는 누군가 밤마다 흔든 야광 훌라우프 였다는 걸로 밝혀진다. 하지만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 이라는 말처럼 진짜 기적은 야광 훌라우프를 신나게 돌리는 일상 속에서 오는 게 아닐까. 열심히 살고 사랑하며 진심은 통한다는 관계의 힘을 믿는 것, 그런 것들이 우리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렇게 차근차근 삶의 기적을 만들어 나간다. 영화는 구석구석에서 자꾸 생각할 거리들이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참 탄탄한 영화다.

아직도 경우의 맑은 미소와 시원한 오이같은 목소리가 생생하다.

뛰뛰빵빵 DJ 상현의 멘트.
"아프지 말고 밥 잘먹고 또 감기 조심하세요,여름이지만. 안녕 "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말한다. " 분명, 사랑은 그곳에 있다 조금씩 마주 보는 것..., 서로에게 상냥해지는 것..." 안녕이라며 따뜻하게 말을 걸어오는 영화들 속에서 난 생각한다. 세상 속 모두들 안녕할 수 있도록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안녕' 이라 말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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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혹은 현재와 과거, 현실태와 잠재태의 식별불가능성 은 결코 머리 속에서 정신 속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중적인, 실존하는 이미지들의 객관적 성격이다."

"기억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존재-기억 속으로, 세계-기억 속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다."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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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망을 치는 수공업으로 이 장면에서 이런 멋진 효과를 냈다고 한다. 느낌 좋다아.

"사람들은 항상 독특한 장면이 있으면 별도로 그 장면을 컴퓨터로 만들고 조합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사건이나 효과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컴퓨터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하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갑자기 밤이 되거나 전날이 되든지 머리 속에서도 시각적 면에서도 모두 실제여야 한다." (미셸 공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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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우는 것이 그녀가 여름에 경험한 일에 대한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젊고 어리니까 그때 그걸 경험했고 알게 된 거죠. 그리고 그런 걸 알게 되었다는 게 슬프다고나 할까.'

                                                                                     이누도 잇신 감독/메종 드 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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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벌어야 한다. 카드빚은 늘어만 간다. 고깃집에서 숯불을 피우는 일을 하곤 있지만 형이 대출한 돈마저 고스란히 내 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언젠가 카메라로 멋진 작품을 찍고 싶다. 하지만 빚을 내서 장만한 카메라를 카드빚 때문에 다시 팔아야만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사채업 일자리를 얻었지만 우울해 보이는 사람 싫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그만두게 됐다. 새로 얻은 일자리는 피라미드 회사였고 또 카드빚을 지게 됐다. 빚을 갚으러 결국 카드깡을 하게 됐다. "

나도 모르겠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 지. 그건 기대가 아니라 막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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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거친 질감의 회색풍경으로 연인사이인 병석과 재경의 일상을 긴 호흡으로 응시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질타하는 장면이 간간이 나온다.

‘차 없이 살 수 있어? 걷는 게 제일 싫어하는 놈이.’
‘영어 잘하면 다른 데 소개해줄까 했는데’
‘이 십새끼야 넌 고생 좀 해봐야 돼’
그리고 '배 배 배' 를 외치며 저절로 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병석과 재경이 그냥 되돌아 가버리는 뒷모습에서 배 하나가 툭 떨어지는 장면.  

고민했다. 이 시대 젊은이라 불리는 나는 찔려해야 하는 것일까.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고 참을성도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문제인걸까. 돈에 저당잡히게 하는 사회가 문제일까. 오히려 이분법으로 나누어 어느 한 곳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답답한 감정이 든다.  

꿈을 위해 빚내서 카메라를 샀지만 먹고 살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팔아 빚을 갚아야 한다. 빚을 갚기 위해서 일하는 곳은 사채 회사다.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 악순환을 끊고 도망갈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이 사회의 견고함.
병석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이라도 있지만 재경에게선 꿈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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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 두 인물이 빚을 갚기 위해 병석은 카메라를 팔고, 재경은 카드깡을 한다. 이 장면을 집요하게 보여주는 교차편집에서 뭔가에 홀린 듯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존재의 무기력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이 하루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그제서야 무덤덤한 얼굴을 걷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재경은 카메라를 갖다 대며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보라는 병석에게 말한다.

‘카메라 끄면 말할게’

모른 척 하지만 그들은 카메라를 통해 애써 자기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감정을 모두 드러내기엔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자괴감들이 크다.

카메라는 꺼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곳에 존재하고 계속 살아가고 있다. 카메라가 켜지고 꺼지는 건 그저 눈이 깜박거리는 것일 뿐. 다시 눈을 뜨니 영화는 현실이다.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되기 이전에 나는 원래 그들이었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영화는 희망을 주지 않는다. 현실과의 괴리를 느낄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주고 싶진 않으니까. 그래서 대신  ‘재혼한 아빠도 싫고 이혼당한 엄마도 싫어요. 형은.. 버림받아본 적 있어요? 사람 말고 돈한테. 저는 되게 많거든요.’ 라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들려 준다. 멀찍이서 롱테이크로 응시하며 세상에 드러내는 매개가 되어준다. 카메라는 니 탓이야라는 메마른 시선들 사이에서 빼꼼이 고개를 들고선 너희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삼키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무기력해진 내 얼굴이 질문한다.  ‘대체 너는 왜 살고 있니’ ‘너를 살게 하는 건 뭐지?’  ‘대체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이 나를’
이들도 궁금할 것이다. 왜 우리 이렇게까지 돈에 쫓겨야 하는지 표정이 왜 자꾸 우울해져가는지.

영화가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삶이 개개인과는 다를 지 몰라도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를 이끄는 작동법은 같다.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제너레이트(generate) 하지 못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풍경이고 
고통이 우리의 짐이 아니라 각자의 짐으로 남겨진 고단함을 보여 준다.

뭐든 상관 없어요. 우리 이야기 해봐요.

그래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이런 세상에 살지 않았으면 피워낼 수 있었던 가능성들을 찾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병석이 카메라로 촬영하는 세상의 풍경만큼은 칼라다. 카메라 속 칼라의 세상을 흑백의 현실과 교체하기 위해 우리는 카메라에 켜지는 빨간 불을 끝까지 응시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 영화 '정오의 낯선 물체' 에서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이야기든 해보세요. 진짜 이야기든 가짜 이야기든 상관 없어요' 우리 세대의 이야기는 자꾸 생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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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든 것을 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지 않았다."
"You've look at it all, but you didin't see it all."


                                               _브라이언 드 팔마/팜므 파탈


훔쳐보기(바라보기)의 쾌락을 한껏 충족시켜주는 영화 팜므 파탈
하지만 그 시선이 끊임없이 오도되는 것을 보여주며 시선의 권력학을 뒤집는다.
우리가 보고 있다고 해서 곧 아는 것인가?
아니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다.
앞에 있지만 보지 못하거나 봐도 잘못 알게 된다.
오히려 봤기 때문에! 오인하기도 한다.

영화 카메라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라고 고다르는 말했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영화 카메라는 1초에 24번 거짓말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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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착한 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마음 이해하지? 응?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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