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2011.03.24 미지의,
  2. 2011.02.20 아, 그렇구나
  3. 2011.02.18 world's end girlfriend "Les Enfants du Paradis"
  4. 2011.02.12 원망 6
  5. 2011.02.06 족발 3
  6. 2011.02.06 그래,콤퓨타 8
  7. 2011.02.01 찌리 퉁 찍
  8. 2011.01.31 가능성이 더 높다 3
  9. 2011.01.30 2
  10. 2011.01.03 목장갑

미지의,

일상 2011. 3. 24. 00:20

보인다. 성인 한 명은 족히 들어갈 커다란 캐리어. 그 뒤에 가려져 있을 그. 계속 걷는다. 그에게 향하지 않고 스쳐갈 작정으로, 스치면서 볼 작정으로.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이발을 했다. 안경을 벗었다. 외투는 그대로다. 조금 말랐다. 이발을 해서인가. 검은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먹고 있다. 점점 봉지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하여 눈에 띄는 건 그의 눈썹. 머리카락 보다 긴 눈썹이 자라고 있다. 계속 자란다. 그의 몸 어딘가 고장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 어딜갔다 며칠만에 나타난 거지. 스쳐 가면서 본다.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완전히 스친 후 마지막 잔상을 눈 앞에 두고 계속 걷는다. 앞으로 5분 동안은 찬 바닥에 두피가 닿은 것마냥 몹시도 서늘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이 곳을 뜨지 못 하는 이유는 이 사람 때문이 아닐까. 그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 따위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을 거란 짐작, 그렇게 되리란 저주.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계시, 결국 믿게 되고 마는 자기 확신. 
매일 그를 만나 보지만, 결코 만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스쳐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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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일상 2011. 2. 20. 23:53

며칠 내내 머릿속 맴맴 도는 이미지


이정아 : 인물들이 전부 각각 빈자리가 있고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해요. 혜화는 아이도 없고, 개도 없어졌고 아빠도 없고. 아이도, 모든 것이 빈 자리였고. 그런데 그 빈자리가 결국 다 채워지지 않지만. 수의사 아이 같은 경우가 혜화가 자기 아이처럼 돌봤지만 그 아이에게도 결국 자기 자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빈자리가 채워지는 과정을 어떻게 담고 싶으셨나요.

민 : 예전에 ‘병원 24시’란 프로에서 ‘우리 형은 5살’ 이란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17살 남자애가 주인공이고 형은 스무 살인데 둘이 살아요, 부모 없이. 형이 정신연령이 5살이고 가끔 간질 발작을 일으켜요. 동생은 너무 착해서 학교도 가고 싶어 하는데 생계 때문에 자주 못 나가요. 형을 극진히 보살피고. 그런데 형이 뭣 때문에 마당에서 떼를 써요, 그 때 동생이 확 폭발해서 형을 멱살 잡고 벽으로 밀쳐서 때리려는 거에요. 그 순간에 카메라 뒤에서 손이 불쑥 나와요. 그러더니 진짜 다급한 목소리로 그러지마, 그러지마, 형이잖아. 라고 말하는 카메라 뒤의 목소리가 너무 절실했어요. 이 둘을 사랑하고 있구나. 어른으로서 개입해서 말리는 느낌이 아니라 이해하기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거나 그러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상황은 말리고 싶어하는 조심스러움도 느껴지고. 카메라 뒤에서 나온 손이 굉장히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런 부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의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들을 표현할 때 에둘러서 표현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상처를 이용하는 느낌이 들 수 있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혜화 같은 경우도 이러 이러한 상처가 있어, 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고, 화면 안에 있는 사람은 표현하지 않는데 보는 사람이 조금씩 알게 되서 아, 그렇구나 하고 알게 되는 방식. 그래서 서론이 길어지더라도 그래야지 깊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


네오이마쥬, [혜화,동] 민용근 감독과의 근접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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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s end girlfriend "Les Enfants du Par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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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

일상 2011. 2. 12. 23:40

아슬아슬하다. 집이 있는 동네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길 시각,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내달린다. 잘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이 새벽에 떨 순 없다, 택시비로 내 생활비를 갉아 먹을 순 없다, 지상에 발 내딛자마자 조금 더 속력을 내 달려보는데, 저기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버스, 그 앞에 오글오글 모인 사람들, 점점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줄이 짧아지는데, 그 사람들 다 태우지 않고 떠나려는 버스. 동시에 숨을 헐떡이며 버스 앞에 다다랐지만 그냥 닫아 버리는 앞문. 버스 안내 전광판엔 모두 '운행종료.' 다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려 본다. 
"뒷문 좀 열어주세요." 
쳐다보지도 않는 버스 기사. 아직 버스에 오르지 못 한 나를 포함한 너댓의 사람들은, 마지막 버스 주제에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구겨넣어 데려 가지 않는 것이 못내 원망스럽다. 앞문 주위엔 너무 쫑겨 얼굴 구겨진 사람들이 보이고, 남겨진 우리는 서서히 움직이는 버스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데, 보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의 공백, 헐렁한 버스의 뒤편. 분한 마음과 무력한 몸으로 떠나는 버스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부라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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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일상 2011. 2. 6. 02:56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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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콤퓨타

일상 2011. 2. 6. 01:18

요즘 엄마는 컴퓨터 공부 중이다. 아픈 몸으로 책가방 메고 학원 다니며 용케 검정고시를 통과하더니 이젠 컴퓨터에 열심이다. 몸이 아파서 못 하겠다고 투덜대면서도 구청에서 공짜로 가르쳐 주는 컴퓨터 교실에 꾸역꾸역 잘도 가는 모양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컴퓨터 앞에 엄마랑 나란히 앉았다. 인터넷 창을 켜선 검색창에다 커서를 놓곤 엄마 검색하고 싶은 거 쳐보라 했다. 자판 위에서 한참 손가락 둘 자리를 찾더니 야곰야곰 한 자씩 친다. '진각스님'. 검색을 했는데도 엄마가 찾고 싶어하는 그 스님 관련 정보는 하나 없다. "돌아가신지 십 년이나 지나삐서 그런갑다." 섭섭한 목소리. 진각스님,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스님. 십년 전 스님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엄마는 서둘러 절로 뛰어가선 밤을 지샜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절 합창단엘 들었고, 진각스님은 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부를때면 신이 나서 허벅지에 멍이들 정도로 손바닥으로 치며 박자를 맞췄다고 했다. 종교도 없던 엄마가 절로 간 사연, 그리고 만난 진각스님, 많이 의지했던 사람, 이었을 게다. 별로 안 유명한 사람은 안 나온다고 일러주곤 이제 한글 창을 켠다. "여기엔 엄마 쓰고 싶은 거 다 써도 된다" 2011년 2월 5일이라고 썼다. "엄마 일기 써라" 야야 쓸 말이 뭐 있노, 란 답에 나는 얼른, 오늘은 설날의 마지막. 이라고 쓴다. 몇 초 침묵하던 엄마, "설날은 기분 나쁘다" 고 말로 내뱉는다. 그래그래 신이 난 나는 그거 쳐봐라고 부추긴다. 명절만 되면 기분이 나빠져서 못 살겠네, 하던 엄마. 다시 자판 위에 한참 손가락 자리 잡고는 야곰야곰 한 자씩 쓴다. 설날은 기분이 나쁘다. 그러더니, 아빠 이름을 쓰고는 나뿐놈. 이라 쓴다. 써놓곤 엄마랑 나는 깔깔깔 웃는다. 왜왜 기분나쁘노. 그러자 엄만 "몰라, 그냥 그래." 그런다. 그런 엄마 모습이 애 같아서 난 재밌다고 계속 웃었고, 웃었지만 울컥했던 마음. 엄마가 글을 많이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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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 퉁 찍

일상 2011. 2. 1. 21:11



사람이 하는 일, 사물이 시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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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이 더 높다

일상 2011. 1. 31. 00:48



서정은 언제 아름다움에 도달하는가 
인식론적 혹은 윤리학적으로 겸허할 때다
타자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고,
타자와의 만남을 섣불리 도모하지 않는 시가,
그렇지 않은 시보다 아름다움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정시는 가장 왜소할 때 가장 거대하고,
             가장 무력할 때, 가장 위대하다.
                                                       _신형철<몰락의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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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1. 1. 30. 02:19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살긴 살았구나. 내가 적을 두게 된 공간이 바뀌었다는 사실도 이제야 와닿는다. 고생이 많은지 코 안엔 늘 피딱지가 붙어 있다. 코피처럼 쏟아지고 말면 좋을 것을, 간간이 코를 따끔하게 간지럽게 하여 신경쓰이게 한다. 한 호흡의 일을 끝내고 오랜만에 아주 길게 잠을 잤다. 꿈에선, 코꾸멍을 신나게 칫솔질 했다.  

주위는 온통 검푸른 빛이었다. 낡은 집의 좁은 대청 마루 위에서 난 누군가의 무릎에 누워 있었고, 하늘엔 수많은 유령들이 떠돌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뻐근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고 그들이 점차 나를 향해 몰려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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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갑

일상 2011. 1. 3. 22:30


학창시절 등굣길, 꼭 눈에 띄는 게 목장갑이었다. 아마 줄곧 땅을 보고 걸었는지라. 
차에 쓸리고 발에 채여 구겨진 목장갑, 내가 외로워서 그것도 외로워 보였던, 허물 같던 목장갑.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생각 하나 스쳤다. "어제 보았을 땐 분명 손가락 두 개가 접혀 있었는데,,,,!" 손가락 세 개 접혀 있던 목장갑이 그 다음 날엔 네 개가 접혔고 그그 다음 날엔 손가락 다섯 개 몽땅 접혀 있었다. 
목장갑이 스스로 제 몸을 접는 것인지 내가 그리 생각하고부터 내 눈에만 그리 보이게 된 것인지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어도, 눈에 보이는 그 현상이 너무나 놀랍고 신비로웠다. 사는 게 재미 없는데 이런 게 사는 재미를 주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 후론, 내가 목장갑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목장갑을 향한 내 특별한 애정.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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