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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8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1
  2. 2007.12.07 나는 기억에서 왔다
  3. 2007.12.07 클림트
  4. 2007.12.07 become
  5. 2007.12.06 그림자는 모든 형태의 씨앗들을 품고 있다. 1
  6. 2007.12.05 너희 마저도.
  7. 2007.12.04 to me
  8. 2007.12.03 윤성호 감독의 운동이 좋다. 1
  9. 2007.12.03 . 1
  10. 2007.10.11 “장관님, 우리 얘기 좀 들어 보세요.”

버스 안에서 카프카 소설에 한창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하며 킁킁 신중히 맡아 보았는데 정말 가스냄새였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 가스 냄새가 나는 거지 연료가 새는 건가 버스에 문제가 생겼나
설마, 버스가 폭발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깊어질수록 가스 냄새는 더욱 더 짙어 졌다
답답한 건 주위엔 킁킁 거리지 조차 않으며 버스와 함께 무심히 흔들거리는 무표정한 사람들
어떡하지 가스 냄새 난다고 주위에 말해야 하나 버스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사람들 빨리 대피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소심한 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부여잡을만큼 지금 억울한건 없으니까 그래 괜찮아
그런데 왜 난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소심하게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거지
내 소심함이 죽음보다 중요한 체면인가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왜 이렇게 가스냄새가 심하게 나는 건지 조그만 마음이 높아지는 밀도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찬바람이 얼굴을 확 때린다
앞에 앉은 아줌마가 창문을 열었다 가스냄새가 내 코로 다 숨어 들어간다 시큼하게 눈으로 확 올라온다
고개를 떨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니 변하지도 않았던 내 표정은 그대로 책을 마저 읽어 내려간다

검은 얼굴의 카프카가 말한다

내가 시험굴착을 했을 때, 그가 혹 내 소리를 들었을 수 있었으리도 모른다, 비록 내가 파는 방식이 극히 작은 소음을 내지만, 그러나 그가 내 소리를 들었더라면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조금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도 귀 기울여 듣자면 적어도 작업중에 이따금씩은 멈추어야 했을테니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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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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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영화가아니었다면 2007. 12. 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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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e

영화가아니었다면 2007. 12. 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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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내가 하나 되다, 온통 내 몸이 얼룩지도록 흡수돼 버렸으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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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를 지하 강으로의 여행에 초대한다. 거기서 우리는 다른 세계로부터 돌출하는 형상들을, 그리고 어둠 없이는 보이지 않을 변형된 형상들을 문득 흘끗 볼 뿐이다. 비추어진 형상들은, 그들의 현현은 그림자 속에 거주하는데, 그림자처럼 어슴푸레한 형태들 안에 있다. 그 형태들의 기원은 더욱 어두운 형태들에 있다. 그림자는 모든 형태의 씨앗들을 품고 있다."    
.라울 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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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저도.

일상 2007. 12. 5. 13:17

신발끈이 못나서 맥없이 자꾸 풀린다 하루에도 열번 씩은 풀어지는 신발끈과 묶고 풀리는 지루한 싸움을 한다 리본으로 꽁 동여 매고 잛게 남은 끈을 다시 한번 매듭져도 시간이 지나면 또 끈이 발에 밟힌다 때로 풀린 끈이 물에라도 적셔 질척해지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방치해둬버린다 풀린 끈을 보니 마음이 서글프다

신발에 뒷꿈치가 자꾸 벗겨지는 양말이라든가 두터운 옷에 밀려 자꾸 벗겨지는 가방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요즘 나를 속상하게 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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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e

인용 2007. 12. 4. 21:41

"우리가 우리의 내면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의 접촉을 잃어버렸다. 나 자신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_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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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윤성호 감독의 회고전엘 갔다. 올빼미 영화제라 밤새 이어지는 영화 상영에 눈이 뻑뻑해질뻔도 했지만 영화의 시선과 눈싸움을 하느라 온전한 정신력으로 밤을 샐 수 있었다.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 특히 이전의 단편영화들, 삼천포 가는 길,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산만한 제국,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등 7편의 영화들에서는
은하해방전선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성호 감독의 초기 단편들을 보면서 나는 운동을 생각했다. 영화 중 종종 운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내게 박혀 제 멋대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운동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말을 입밖에 꺼내는 순간 사람들의 오해 섞인 편견에 갇히게 된다. 단어 하나가 사람들 생각의 부화를 중지시키고, 톡 하고 깨면 흘러나오는 그 의미만을 받아 먹게 만드니까. 좀 답답하다 싶어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꾸 운동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 단어를 되뇌일수록 의미를 알기 보다 더 억압받는 기분이다.  감독의 말대로 이름은 지하 납골당 이름은 뇌의 뚜껑.

어쨌든 난 이념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운동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언어의 틀 속에 가둬진 운동을 넘어서는 운동. 운동은 곧 삶이니까. 삶은 운동이고 그건 곧 힘의 작용. 나는 힘들이 촘촘이 맺어진 하나의 무엇.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 까딱,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한데 그래 운동하는 지구, 그리고 너와 나의 수다, 너와 나의 사랑까지. 그래서 삶은 곧 운동이다. 매 순간 새로운 에너지를 흡수하고 내뱉으며 우리는 소통한다.


그의 운동에는 목적이 없어 보인다. 끊임없이 곁가지를 뻗어 나가는. 가령, 좌파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이념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 그 기준으로 영화를 들여다보려 하면 또 그것마저도 넘어서는 것 같은. 어느새 저만큼 달아나 버린다. 그게 앞서 나간다는 이야기라기 보다 무규칙 전방위적인 움직임이랄까.
그의 움직임이 좋다. 그의 운동방식이 좋다. 그의 산만한 운동이. 그 산만함은 자유로워보인다.
아. 나도 저렇게 운동하고 싶다.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이 좀 달라져야 하지는 않을까도 싶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고 좀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윤성호 감독의 단편 영화들을 보면서 '방식'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가치관을 탐내고, 해독하기도 힘든 내용들을 알아보려고 영화 속 대사와 텍스트를 기록하고 곱씹어 본다. 그가 운동하면서 희미하게 드러내는 궤적에서 나와 겹치는 것이 있을 때 불안한 위안을 느낀다. 그 과정 자체가 곧 나를 키우는 운동이니까. 즐거우니까.  


나는 영화가 힘이라고 믿는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힘들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느슨해지고 물러지면서 제멋대로 주물러진다. 영화의 힘이 같이 섞이면서 나는 조금 혹은 아주 다른 사람으로 다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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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ps.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내가 살아갈 힘은 이건데요, 그래서 난 마치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모든 기존의 윤리를 거부하고 내 생각이 비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저항으로 패션을 삼지 말고 패션으로 저항하면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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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2007. 12. 3. 12:07


저는 돈과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삶을 꾸려나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너무 뻔한 삶처럼 느껴지죠.
정말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거든요.

.짐 자무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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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비정규직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그 비정규직법이 문제라던데 때마침 오늘
비정규직법 만든 지 100일을 맞아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토론회가 열린다고 하더라. 어떤 평가를 할까 궁금한 마음에 토론회장을 찾았다.




우리가 비정규직이 될지도 몰라. 대학생인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누구나 믿고 싶어 한다. 나는 비정규직이 되지 않을 거라고. 희망고문일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그렇게 희망을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 비정규직이 뭐 그리 나쁜거냐 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잃으면 또 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갖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건 비정규직이 있다는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든 제도나 시스템이 나쁘다는 사실이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듯이 오늘 비정규직법안 토론회는 말 그대로 엉망이 되었다.

단순히 토론회 현장의 분위기를 건조하게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소감문으로 쓰게 된 건,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정말 그냥 엉망진창이 된 토론회였다 라고만 해버리고 말까 하는 조바심에 이 글을 써본다.
그 동안 노조와 기업 간의 싸움으로만 몰고
뒷짐지고 있던 정부 측은 자신들의 무책임함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졌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한국정치의 소통불능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었다.



토론회가 시작되고 한국노총,민주노총,한국경총 등의 격려사가 이어진 후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나오면서 갑자기 토론회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일찍부터 토론회장에 진을 치고 있던 이랜드,뉴코아,코스콤,기룡전자 조합원들 몇몇이 이상수 장관 가까이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상수 장관이 '노사정이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는 발언이 나오자 노조들은 흥분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어쨌든 토론을 통해 반성하고 새롭게 나아갈 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토론회인데 이런 장(場)마저 망쳐버리나 싶어서 좀 답답했다.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장관은 일단 무시하고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시작단계서부터 반대가 많았듯이 완벽한 법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에 의한 합의다. 그 때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에 어느 것이 옳은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합의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농성이 계속되자 이상수 장관도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비정규직 여러분들의 직무실력이 훌륭한 건 안다. 하지만 지금 앞에 계신 여러분들의 태도는 온당치 않다!’



그리고 자리를 뜨는 장관에게 노조들은 몰려들었고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난장판이 됐다. 곧 장관은 뒤쪽의 장소로 숨었다. 장관이 들어간 방 앞은 곧 그랜드 피아노로 막혔다.

 

회의 시작 30분 만에 장관이 자리를 뜨고 이 때부터 노조원들의 목쉰 한탄이 시작됐다.



“비정규직이 시작되고 3개여 월이 지났다. 부당하게 해고된 우리들은
노동부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러 몇 번이나 갔었다. 하지만 그냥 끌려나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누구 좋으라고 토론회마련해서 우아하게 말하나.
지금 당장 노조들과 면담하자”


“64만원으로 한달 생활한번 해봐라”


“니네가 휴대폰으로 해고통지 받아봐라”


한 마디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노조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얼마나 목말라 있었으면 여기 와서 이렇게 소리 지를까. 노동부 장관이 여기에 참석한다는 한마디에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 우르르 몰려왔을 장면이 떠올랐다.


3년 동안 투쟁하고 있다는 기륭전자노조조합원들은


“너무 만나고 싶었다. 나름대로 잘되고 있는 법이라면서 왜 만나길 거부하는가”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야지. 이게 핵심 아니냐. 우리들 현장의 사정을
들어야 한다
.”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하면 면담날짜라도 잡고 가겠다”


굳이 토론회를 망치면서 이래야겠냐는 주최 측의 설득에도,

“이런 토론회 하는 거 아무 소용없다. 맨날 앉아서 머리만 굴리며 법 만들지 말고 우리처럼 피해보는 사람들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데, 조합원들이 막무가내이긴 했지만 지켜보는 나로서는 대체 이렇게까지 될 때까지 뭐했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고 조합원들이 ‘그렇다면 면담날짜라도 확실히 잡고 가겠다.’ 고 하는데, 경찰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게 웬 불난 집에 부채질인건가. 조합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이 경찰들을 보자 다시 심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노조들은 ‘우리가 장관 잡아먹겠다는 거냐, 얘기 좀 하자는 거다. 지금 아니면 만나주지도 않지 않느냐. 그나마 면담날짜라도 잡겠다는데 왜 이러냐 ’



아니, 정말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반성하고 개정할 생각이 있으면 비정규직들과 면담해보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면담날짜 하나 잡는 게 뭐가 그리 힘들어서 경찰까지 투입되는 걸까.

 




뒤늦게 이상수 장관이 직접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황당했다. 정말 믿을게 경찰 공권력 밖에 없는 거구나.


결국 노조조합원들은 ‘공무집행방해’와 ‘감금죄’로 모두 연행됐다.

그리고 이상수 장관은 경찰들에 둘러싸인 채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실망했다. 이 토론회의 취지에 대해서. 토론회에서 내 얘기 좀 들어달라며 방해했다고 경찰 300명까지 투입해가면서 사람들 다 끌어내는 그들이 모습이.
쪽팔렸다.
한 나라의 정부가 서민들을 이렇게 밖에 못 다루는 게.

사실 감금죄라고 했지만, 노조들을 피한 것은 노동부 장관이었다.
스스로 피해서 숨었고 피아노로 문을 가로 막았다.


노동부 장관의 '당신들의 태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서민들 생존권 위협하는 건 괜찮고, 발언하는데 앞에서 방해했다고 다 잡아 가두는건 마치 주인이 노예에게 ‘무엄하도다’ 와 같은 태도에 다름없어 보였다.


내가 너무 감정적인건가. 하지만 직접 그 현장에 있던 나로서는 이런 감정의 글밖에 쓸 수가 없다. 



토론회 주최자들은 토론회 개최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들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예측 못했더라면 현재 노동자들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이 사회의 정치적 소통불능이다.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시민과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희망이 없다. 비정규직 법안을 잘못만든건 그리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어쨌든 장관 말대로 ‘경험’이 부족했다 치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후의 행동이다. 그것이 법 집행을 위해서 얼마나 성실했느냐를 증명하는게 아닐까.



법이 집행되면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서민들, 법 하나에 웃고 울어야 하는 사람들. 앞으로 어떠한 제도가 내 삶을 관통해가고 억울함에 호소했을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움직여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게 되었다.


정말 이번 토론회가 대충 100일 잔치하고 노동자들 얘기 다 들어줬다며 요식행위하고 말려던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이 법으로 피해를 보고 억울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일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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