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보! 꺠어가는 두뇌 속으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이 지식의 빛들!
그것이 저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그것을 과대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그랬고, 오늘날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 지상에서 되풀이된 적이 없는 그런 노력으로 저는 유럽인의 평균 교양이 도달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를 우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고, 이 특별한 탈출구를, 인간 탈출구를 제게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물론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슬그머니 달아나라'라는 멋진 독일어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햇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
자유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언제나 전제한다면, 저에게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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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황인숙

인용 2008. 1. 20. 19:42

눈을 꼭 감고
"난 몰라. 이게 뭐예요!"
울려는 듯 비죽거리는
입을 뾰로통히 꼭 다물고
앞뒤 양다리를 뻣뻣이 모으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새벽이면 쓰레기봉투들 거둬가는 곳 근처에서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던 어린 고양이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음으로
여름이 가버린 걸 알 수 있듯
아, 그렇게
죽음이 시체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도 속에서 질겨시는 시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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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행이란 건.

일상 2008. 1. 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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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행이란 건 기억을 길어올리는 작업과도 같다. 일상과 뚝 떨어진 그 곳에서 나는 더 이상 삶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내 지난 과거의 우물에서 난 한 조각 한 조각 기억들을 길어 올린다. 의도하지 않았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은 여행 중에 문득문득 내게 다가온다. 그것들을 마치 남의 이야기였던 듯 지긋이 관망해 본다. 그러다보면 가끔 마음 깊숙이 안아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건 용서일까 화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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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후쿠시마

일상 2008. 1. 14. 11:30


 후쿠시마 공항이다. 역시 일본은 검색이 집요하다. 1년 전부터 시작된 지문과 얼굴인식검사. 혹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는 검사다. 말로만 듣던 생체여권이구나. 테러막겠다고 사람들을 다 죄인취급하냐느니 범죄를 막을 좋은 방법은 생각안하고 허구한날 감시만 심해진다느니 한참을 투덜거리니 친구는 옆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핀잔을 준다. 정부도 구실이 필요할테고 우리도 협조해줘서 나쁠건 없지 않냐고 한다. 머쓱해졌지만 영 찜찜하다. 그렇다고 저는 이런거 거부합니다 했다가는 따로 별실로 가서 집요하게 상담받고 추방된다는데 뭐 어쩌랴.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 20분 넘게 기다렸는데 검지로 기계를 꾹 누르고 모니터 한번 쳐다보고 사진찍으면 끝난다. 투덜투덜. 어쩐지 내 삶이 자꾸 억압당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후지산도 식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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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은 디딘 후쿠시마에서 한 첫 일본식 식사
양이 적고 깔끔하다. 야끼니꾸 벤또 라고 일본식 구운고기라는데 몇 인분씩 시켜서 한가운데 불판놓고 지글지글 구워먹는 한국과 달리 1인당 고기 양을 정해주고 구워 먹는다. 소식하는거 나쁘지 않다 싶다. 하지만 막 퍼주는 김치와 밑반찬도 돈을 지불하고 추가할 수 있다니 인심야박하네 하지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 여튼 음식물 낭비는 적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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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에 사과 나무에 통통한 사과들이 종종 매달려 있었다. 이 곳이 사과로 유명한 곳이랜다.
과일가게의 간판이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뚝딱만드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개성있어 보여 좋다. 사과의 맛은 어떠냐하면, 사과 가운데 꿀이 껄쩍하게 가득차 있어서 베어물면 시원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정말 맛있었다.

그게 바로 이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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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칠이 벗겨져 낡은 품위를 드러내는 벤치 위에 홍시 두개가 정숙하게 바구니에 담겨 있더라.
아- 정갈하다.
그리고 어딜가든 느끼는 이 정갈함은 일본에서 느낀 기분좋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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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080107

일상 2008. 1.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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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간의 일본 여행. 비행기 타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아주 일찍 아침을 시작해서 그런지 따뜻한 비행기 안의 공기에 잠시 졸았다. 그 꿈에서 선명한 글자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졸음에서 깨고선 한참이나 그 글귀들을 찾아 다녔다. 분명 뇌리 속에 박혀 있을 말들이지만 이미 희미해진 것들을 막연하고 서글프게 길어 올리는 일. 딱히 목적도 없이 난 늘 그런 것들을 좇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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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저 비행기에 난 창문 하나가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브라운관에서 본 끝이 예쁘게 둥근 조그마한 저 창문 하나가 주는 설레임과 해방감을 난 늘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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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 어느 덧 일본이 하늘 아래 펼쳐 지기 시작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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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2007

일상 2008. 1. 3. 14:35



추석 연휴 이후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좌석버스를 타고서도 한 시간 가량 달려 왔다. 버스에서 내리면 시골 냄새가 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땅으로 발을 내딛는다 내리자마자 잠시 덤덤하게 정면을 바라 본다

고등학생 때 버스에서 내리면 횡단보도를 기다리다말고는 뒤돌아서선 너른 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지평선이 보였다 생채기 난 마음에 논에 고여 있던 바람이 다가와 마음 고루고루 보듬아 주었다
나이를 먹고 드문드문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이제 이곳도 어중간한 시골이 되어가는구나 했다 논을 끼고 있던 산이 조금씩 깎이는가 싶던데 집엘 가면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 짓는 아파트를 사둔다고 난리라며 빚을 내서라도 살까 고심 중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지하철도 들어온다니 집 값이 뛰는가보구나 그렇군 여전히 이 나라는 집이 모자라는구나 그렇구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 지난 추석까지만 해도 논 위의 산은 반이나 넘게 남아 있었고 아파트가 들어설거라는 불안도 없었는데 참 금방이구나

이제 아파트와 새 건물이 한 가득이다. 팔을 넓게 벌여 그것들을 안아 본다. 그래 너희들도 나쁘지 않아 사람들이 살 집이 많이 부족한가보구나 그랬구나 날은 어두워가는데 불 켜진 집은 거의 없지만 이제 곧 다들 입주하겠지, 많이들 내 집마련해서 다행일지도 몰라. 그런데 저 나머지 집들의 불이 마저 켜지긴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빚을 내 집 한채를 더 마련해두신걸까. 저기 어딘가에 불꺼진 우리집이 있는 걸까. 뒤를 돌아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뒤에 맑고 시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뒤통수를 씻어 주는 바람이 좋았다. 그러면 뒤를 돌아 한참이나 너른 돈을 바라보고 지평선 너머도 상상하며 눈을 씻었다

오늘은 그냥 신호등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덜 깎인 산은 없는지 덜 덮인 논의 흔적은 없는지 노을이 제 모습을 자랑할 틈이 남아있진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무성하게 꽂인 건물들 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들이 삭막하게 서 있다. 그리고 눈 앞의 현수막 게시판엔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이제 막 날아오를 듯이 퍼덕퍼덕 거리며 바람에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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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상 2007. 12. 28. 16:59


맑고 단 해물누룽지탕을 입 안에 가득 문다. 단 기운이 온 몸에 퍼져 주위가 온통 말갛다
누군가는 맥주를 얼굴 가득 빨아들이고는 벌겋다. 또 누구는 사이다를 연신 마시며 2020년에
지구의 위기가 다가올거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종말이 온다는 말은 서글픈 체념의 소리가 아니다. 아직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 호통이 되어주길 바라고 짧은 생에 주어진 운명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 이 곳은 그런 욕심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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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동하 감독은 택시운전사가 벌써 15번째 직업이라고 한다. 영화를 찍기 위해 늘 돈이 되는 직업과 병행해 왔던 그, 이번엔 어떻게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됐을까.

2003년에 또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 될 시간이 왔었어요. 고민을 하던 중에 주위에 택시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는 사람을 듣게 됐죠. 택시기사는 이직률이 굉장히 높거든요. 열 명중 한 두명만 두세 달 이상가고 결국 택시기사가 됩니다. 그래서 항상 기사 모집한다고 택시회사밖에 현수막이 붙어 있어요. 전 굉장히 천진난만한 접근으로 ,자격증을 한번 따놓으면 돈이 궁할 때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물론 다시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웃음)


택시기사를 하면서 촬영을 했다면 정말 많은 분량을 찍었을텐데, 편집하면서 힘드셨을 것 같아요.

한 시간짜리 테잎을 200개 정도를 찍었어요, 솔직히많이 찍은 건 아닌데, 욕심껏 찍었으면 400개 정도 됐을 거예요. 하지만 항상 카메라를 설치할 수 없었고 3일 중 하루만 설치했어요. 그런데 꼭 카메라를 설치 못한 날에는 기가 막히는 손님이 타서 마음이 아팠어요.

취사선택했던 기준은 승객들 입으로 승객들 모습 자체로 서울을 대변할 수 있는 장면, 또  내가 느꼈던 서울을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는 장면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했죠. 또 그 장면들 중에서도 좀 세게 보이는 장면이 선택됐어요. 날 것의 느낌이 나는 적나라한 장면들이랄까..  포스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런 모습들이 제겐 되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였어요.


서울을 날 것으로 드러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전 그걸 표현하는 형식이 되게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다큐로 알고 갔는데도 정작 영화를 보면서는 진짜 다큐인가 아닌가 생각하느라 좀 혼란스러웠거든요. 미리 형식을 다 짜놓고 하신건가요.

 

꽉 짜여진 건 아니고요. 처음엔 한 3장 정도를 짰어요. 후에 펀드를 위해서는 그보다 길게 10장 넘게 시나리오를 썼지만요. 그 정도 안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치긴 했지만,  처음 컨셉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진 않아요. 제가 많이 들어가고 안가고의 차이는 분량의 차이는 있어도 처음과 끝은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비슷하게 나왔어요. 기본적인 생각만 갖고 나머지 벌어진 일들은 어떠한 다양한 소스들이 나한테 올지 모르니까, 열어 놓고 있으면 훨씬 더 영화가 풍성해지고 영화를 찍는 재미도 나요. 저는 영화 작업할 때 그렇게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그 작업이 저한테 맞아요.


보통은 장르를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그 장르대로 만들어야 되잖아요. 장르영화를 제대로 해본적도 없지만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아요. 또 제가 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형식을 고민하다보면, 그게 또 결국은 그냥 독자적인 나만의 형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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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를 봤을 땐 영화가 굉장히 희망적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본 영화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도 충격이었어요,  지옥의 묵시록처럼 포스터가 나올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마 택시 블루스를 너무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으면 관객들을 아예 극장엘 못오게 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데 또 많이 고민을 해보니까 이 영화도 되게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슬픈 도시 얘기를 했기 때문에 말이죠.


영화 찍으면서 희망을 의도하신 면은 없었나요. 리얼리즘이란게 삶의 진실을 보면서 오히려 살아 갈 희망을 얻도록 하잖아요.

사람들은 항상 희망을 얘기하려고 해요. 어떤 작품에 희망이라는 문구가 없으면 어떻게든지 그런게 있지 않을까 찾으려하고 작가에게 강요하고.
희망이라고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가 있어요, 습관적으로 계속 같은 걸 반복하는 친구. 자기는 괴로워해요. 근데 그게 바뀌지가 않아, 희한하게도. 근데 스스로는 바뀔거라 생각하죠. 그리고 자기는 그게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일은 난 지각을 안할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 분명히 내일도 지각을 하거든요. 평생 그러는거 같아요. 평생 아침마다 희망적으로 일어나길 바라는.. 그래서 자살하지 않고, 서울에서 하루에 딱 한명만 한강에서 투신을 하는 정도로만 자살율이 유지되겠죠. 희망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작품 속에서 희망을 안보여주고 싶었어요 식상하니까. 또 사람들이 희망에 대해서 강요하니까. 차라리 희망이란 걸 쏙 빼고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했어요.
택시블루스에서는 그걸 제대로 해볼까 했는데, 근데 또 결국에 희망적이 된 것 같아요.
찍고 보니 마지막의 강아지 시선이  희망적이지 않은가 싶더라고요.
어쨌든 그래도 전 희망 희망 하는게 식상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걸 피해 다니려고 하는 입장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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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는데, 나레이션으로 나오잖아요. 택시운전하실 때 왜 마늘을 안드세요.

전 택시운전하면서 마늘이 상징적으로 느껴졌어요.
외국인친구한테 그런 얘길 들었거든요, 한국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그 한국 냄새의 대부분이 마늘냄새가 섞인거거든요. 그 냄새가 그렇게 심할거라는 걸 택시하기 전엔 몰랐어요. 굉장히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랑 같이 있잖아요. 밤에는 특히 사람들이 뭘 먹고 타는데 그 음식의 대부분 마늘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계속 그 냄새에 대한 시달림이 상당했어요. 그래서 기사식당 가면 생마늘이 꼭 나오는데, 그게 맛있다는 걸 알면서도 못먹겠는거예요.


마늘의 그 약간 알싸하지만 계속 고통스럽게 오는 자극이, 택시 안에서도 그렇고 서울 안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들의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마늘을 안 먹는 실제 이 상황과 영화 속에서 마늘 안먹는 장면이 좀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첫 콘티에 넣고 마늘냄새 오바이트냄새 톱밥냄새 이렇게 다시 언급하고. 그 냄새를 영화 속에서 맡아줬으면 했어요.
근데 톱밥냄새 같은거도 내가 다 맡은 거예요, 왜 이사람한테는 톱밥냄새가 날까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마지막에 죽은 고양이를 회전앵글로 촬영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시내를 운전하다보면, 굉장히 많은 죽은 동물들을 보게 돼요.
그게 남의 모습 같지 않았어요. 애매하게 죽는 거잖아요 길 지나가다가. 사람이 사람을 칠 수도 있는데 그것도 특별히 인과관계가 있어서기보다도 애매하게 벌어지는 것 같아요.
다들 좀 애매하게 죽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애매하게 고통을 주는.. 그런 게 서울의 척박함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부분에 죽은 고양이를 보고 차를 타면서 빙빙 돌다가 제가 사라지게 되는데,
그걸 처음 갖고 와서 스텝에게 보여줬을 때 그 도는 게 마치 고양이를 제례를 지낸다고 하나 사리를 태울 때 중들이 빙빙빙 돌면서 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 느낌이 괜찮다고. 그걸 생각했던 건 아닌데 고양이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해요.



감독님이 문득 물었다. ‘고양이 치어보셨어요?’

제가 실제로 고양이를 쳐봤고 칠 때의 그 느낌을 오래 갖고 있는데, 또 치이고도 쉽게 죽지 않는 고양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고양이를 타 넘는 느낌이 굉장히 물컹하고 섬짓해요. 작은 생물체지만 그 고양이를 타고 넘는 느낌이 너무 강해요.
또 그게 만약 잘못된 길을 가다가 고양이를 친 거라면, 돌아 나오면서 그 고양이를 또 봐야된다면, 그 기억은 더 오래 가더라고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잘못된 길이라서 돌아 나오는데
그 고양이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어떻게 치워 줄수도 없고 다시 밟아서 고통을 끊어 줄 수도 없고 그냥 도망치듯이 나왔어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승객들의 고통과 눈물을 많이 봤어요. 특히 뒷자리에서 우는 여자들 상당히 많거든요. 안울어 보셨어요?  전 아주 승객의 극단적인 슬픔, 분노를 목격해도 그냥 그렇게 도망치는 입장인 거예요. 고양이를 피해서 도망치듯이 그런 느낌..전 그런 택시 기사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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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님이시잖아요. 우리 나라에서 독립영화라는게 관객과 소통이 많기가 힘듭니다. 관객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기대를 많이 하시는지.

송환이 인기가 좋았죠,그게 3만이었고. 우리학교가 9만,우리 독립영화 중에서는 최고기록이죠.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인디스토리 대표랑 술을 마시다가 그 분이 갑자기 고등어회를 진짜 잘하는 집을 안다면서 고등어회쏘기 내기를 하자는 거예요. 관객수 가장 가깝게 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그러면서 자기는 먼저 얘기를 못한데요 감독들이 상처받으니까.
그래서 제가 좀 세게 3500명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대표가 그러니 내가 그러니까 얘길 못한다면서 750명 얘기했어요, (웃음)
그 얘기를 들을 때 딱 현실감각이 돌아왔어요. 아 그랬었지 내가 잠시 착각했구나. 개봉이라고 해봤자 맞아 이게 독립영화로 광고가 되는 거지 또 단관이고, 마케팅한다고 하지만 힘이 약하고..

지금 독립영화에 대해서 물어보신거잖아요
750명, 그게 독립영화예요.



독립영화는 낯설다,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택시블루스 같은 경우도 낯설 수도 있을 거예요. 막상 보면 불편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내용으로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을 위해 고민을 하시나요.

사실, 택시 블루스도 되게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형식이고, 낯선 방식은 아니예요. 최근까지도 유명한 대감독들도 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정패턴으로만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려고 해왔고 소비하다보니까 내겐 식상하고 재시도하는것 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거를 마치 어디서 뚝떨어진 낯선 것처럼 생각하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서 내 영화를 볼 수 있게끔 하는 방법은 대충은 알죠. 그런데도 그렇게 만들지 않는 건 제가 투표를 안하는거와 마찬가지예요, 제가 소신을 갖고 투표를 안하는 이유는 다수결이라는 투표나, 상대를 설득해서 스텝바이스텝하는 역사를 통해서는 차선책으로 가서는 제가 원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믿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으로 제가 원하는 세상을 혼자서 구연해 나가면서 사는 방법을 택한거고요.

영화도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면 좋아하겠다 저렇게 얘길 하면 좋아하겠다는걸 대충 알긴 하지만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은 건, 그렇게 안전하게 사람들의 희망을 모시면 그것 역시 내가 원하는 세상이나 영화에 종국적으로 이르지 못한다는 거죠.

관객들이 아무리 내 영화를 많이 봐줘도, 750명만 봐주는 영화를 만들어도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세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안에서 자극적으로 익숙한 형식들을 피해가는 거예요.
저는 형식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형식이 바뀌지 않으면 그 내용가지고는 아무런 뭔가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거죠. 그게 영화를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형식부터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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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인용 2007. 12. 20. 22:05


1. 어쨌든 나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남들 하는 공식을 따르지 않고 조금 특별한 삶의
행로를 통해 이 길에 들어섰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잘못 들어선 길이 지도를 만드는 법이니까.

.김지운



2. 내가 나일 수 있다는 보장은?

그 보장은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모은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집착은 너를 계속 제약한다.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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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도 복잡하고 그래서 몹시나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서울.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꿈틀거리는 서울을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선망과 감탄의 마음과는 다르게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풍경이 그 풍경이라는 생각.  

그러고 보면 내 시각의 프레임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는 것들은 감탄만을 자아내고자 했던 시선일 뿐이었으며, 그러나 서울은 그렇게 즐거운 곳이지만은 아닌 것임을.. 영화 택시 블루스를 보면서 서울에게서 보지 못했던 것들, 하지만 보아야 하는 것들을 나는 느낀다. 또 그 곳에서 시간의 흐름에 구겨졌던 내 삶의 단면들도 본다.

그리고 그 슬픈 서울과 함께 블루스를 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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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1년 동안 직접 택시 기사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놓았다. 영화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일관성 없는 장르에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장면을 붙여 놓은 몽타주는 내용이 아닌 저 장면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엉뚱한 고민으로 흐르게 한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매력 있다. 그냥 그게 서울의 풍경이다. 순간의 장면에서 순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살면서도 뭐라 뚜렷하게 말할 수 없는 감정들.


택시 기사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하루 20시간 가까운 시간을 운행하면서도 사납금과 때로 벌금까지 내버리면 남는 것은 없다. 더 많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고양이의 눈처럼 그들은 사람들을 응시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보지 않아도 될, 하지만 그것이 인간 군상의 어두운 진실이기도 한 모습들을 본다.
여자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남자, 만취해 개가 되는 인간의 모습, 남편 때문에 아이를 안고 우는 여자,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

택시는 밀실처럼 인간의 고독과 슬픔 절망 폭력을 담아내는 장소와도 같다. 꼭 그렇지만도 아닐 공간이지만 어쨌든 이것이 인간이 애써 피해서는 안될 삶의 진실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는 그런 인간의 슬픈 운명에 가장 밀접한 목격자이면서 똑같이 고단한 인간의 운명이다.

묵묵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던 택시기사인 감독의 내면엔 불만과 스트레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택시기사의 고단한 운명을 몸소 느끼면서 그의 고통은 더 켜져만 가는 것 같다. 영화엔 사회 부적응에 불만과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있다는 진단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불만은 영화에서 감독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에게 욕을 하고 예의 없이 구는 사람들에게 감독은 여지없이 폭력을 날린다. 하지만 감독의 그 폭력이 왠지 슬프다.
구석방에 몸을 구부려 잠이 드는 택시기사인 감독은 마치 삶의 절망감 곧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고단한 인간의 절망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결국 온전히 고단한 인간이 되고 절망이 되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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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승객이 택시를 탄다. 그는 불평하기 시작한다. 택시 기사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그리곤 감독인 택시기사에게 자기가 아는 길을 강요하고서는 더 나온 택시비를 보고는 오히려 화를 내며, 지폐를 집어 던지곤 나간다. 그러자 거친 숨소리가 들리면서 카메라는 유유히 그 승객을 뒤따른다. 감독인 택시 기사는 말한다.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그는 승객에게 주먹을 날린다.

마음이 메인다. 그건 절망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주먹과도 같이 느꼈기 때문이리라. 한번도 좋은 기억이 없다고 불평하는 승객은 알고 보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사를 탓하며 기어코 그를 향해 돈을 집어 던진다. 그게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역시 사람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은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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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회전하는 앵글이 자주 나온다. 첫 장면에 택시기사가 식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회전하며 상승하는 앵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죽은 고양이를 택시 기사가 주위를 유유히 회전하는 장면.
그건 절대자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신 안에 있는 인간의 운명 같은. 내가 카메라의 시선이 된다 치면, 이건 마치 유체이탈하여 나를 보는 것과도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절망스럽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렇다고 희망을 자극하는 영화 같지도 않다. 희망을 얻고 싶지도 않다. 공통적인 삶의 풍경이라 할 순 없지만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 분명히 존재할 그림자. 그 운명 때문에 택시 운전사는 고단해 하고 감독은 고단해하고 또 우리네 삶은 고단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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