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3.10.08
  2. 2013.09.15 ?진심
  3. 2013.09.15 +소리
  4. 2013.07.27 수도꼭지의 모양
  5. 2013.07.14 다정한,
  6. 2013.07.01 숨을멈추어 본다
  7. 2013.06.30 거리
  8. 2013.06.16 빗물에 젖은 양말의 무게 1
  9. 2013.05.19 여행
  10. 2013.02.15 물고기 4

여행 2013. 10. 8. 22:30


이곳 거리에는 네 발과 두 발이 공존한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이 두드러진다. 인간은 두 손을 쓰기에 할 수 있는 게 비인간 동물보다 많지만 그만큼 해야만 하는 것도 많다. 네 발 비인간 동물이 곳곳에 싸둔 똥을 치우는 건 인간이다. (물론 이네들은 잘 치우지 않는 편이다.) 이곳 풍경을 가만히 보다보면 인간이 비인간 동물보다 낫다는 생각은 조금씩 사라진다. 인간이 못나서 못할 짓을 해서가 아니라, 바지런히 뭔가 계속 하는 걸 보다보면 고생이 많구나 싶다. 짠하다.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서 얼마나 쾌락을 느낄까 자부심을 느낄까. 자부심도, 쾌락도 보편의 기준이 아니기에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할 뿐. 뭐 더 낫고 못하다 그런 것도 없는 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진심

여행 2013. 9. 15. 03:53

 

왜 이렇게 아쉽고, 슬플까

게속 여행. 지겨움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양 한 마리가 상자 안에 있다.

떠나니까 떠날 수 없을 것 같을 텐데

맺히는 이 아쉬움이란 진심.

삼십 년 만의 진심.

이 마음은 뭘까.

떠나지만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 없을 것 같은데, 떠난다.

 

-------

 

삼십 년 만의 진심, 이라고 썼다. 놀랍게도.

일기장의 이 글만은

어느 시간 어느 자리에서였는지

무슨 풍경을 보다 무슨 생각을 하다 썼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소리

여행 2013. 9. 15. 03:00

 


물소리 바람소리 음악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달라이 라마 여름궁전, 맥그로드 간즈, 인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수도꼭지의 모양

여행 2013. 7. 27. 21:36

집에 있는 수도꼭지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수도꼭지가 분리돼 있었는지 좌우로 돌리면 냉온이 바뀌도록 된 모양이었는지 것도 아닌 다른 어떤 모양이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다정한,

여행 2013. 7. 14. 20:43

 침낭에 묻은 먼지 하나까지 손으로 탁탁 털더니 끝부터 조물조물 말기 시작한다. 그 손길이 어찌나 야물고 정성스러운지 침낭이란 것이 아주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그는 가방 안의 물건들을 전부 빼낸다. 하나하나 수건으로 닦아 팩에 빈틈없이 채워 넣고는 끝을 단단히 밀봉해 가방에 하나씩 차곡차곡 넣는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탁탁 털고는 마주 비빈다. 메마른 소리가 났다. 아마 꽤 오래 여행했을 듯한 차림, 낡은 짐. 검소하고 소박했다. 스스로를 가볍게 하는 것이 여행이겠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낮은 자세는 남달랐다. 버리는 것과 비워내는 것의 차이가 있듯이, 그는 버리는 것이 아닌 비워내는 사람 같았다. 막 물을 비워낸 뒤의 항아리처럼, 그의 몸에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짐을 정리하는, 크고 까맣고 마르고, 거칠어진 손. 거친 게 아니라 거칠어졌을 손. 다양한 바람과 공기가 스며 있을, 변함없이 자신의 짐들에겐 다정한 손.

2012-02-10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숨을멈추어 본다

여행 2013. 7. 1. 00:45

지평선아래로 내려 온 집들 바닥에등을깔고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본다 집이누우니 우리도 잠잠이같이누웠다 눈이부시다 구름이지나간다 눈을깜빡인다 창문이열고닫힌다 새들이지평선에앉아둥지를튼다 알을낳았다 집들은그알들을눈에넣고품는다 그안에서우리는함성을지른다 놀란 집들 몇이 몸을 일으키고 이제는우리가집들의목덜미를잡아 끌어내린다 바닥에서 태어난새들이 땅속에묻혀 자라난다 태양이내려온다 새들은 태양을바라보며 바다를향해 자란다 새들을 적시려 바다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시한번문들이 열고닫힌다 우리는숨을멈추고몸을한번뒤집는다 지평선까지차오른바닷물이 문을 두드린다 뒤집힌 몸들이 하나둘씩떠오르기 시작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거리

여행 2013. 6. 30. 00:30

그녀는 자신의 체험이 남긴 것을 부정했다. 경험을 신뢰하려 하지 않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수없는 가능성을 염려했다. 체험으로 알 수 있는, 절반의 진실이라 할지라도 오직 기댈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을텐데 그녀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사태들 앞에서 매번 새로 겪는 것처럼 굴었고 자주 실수했으며 그것은 인생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낭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 태도를 자랑스러워했고 그리하여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모든 걸 이해하려 하는 자신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럴 수 있는 자신만을 신뢰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이 그녀는 늙었고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태도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어느 정도 사태를 다스리고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뢰받는 자신은 합리화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런 스스로를 느끼며 예전같지 않다는 서글픔 보다 강한 슬픔이 찾아왔다. 스스로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한 번도 염두에 두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이해. 스스로의 경험을 부정했던 것은 그녀가 한번도 온전히 행복하거나 어디에서도 평안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돌연한 이해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2013-01-13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정오가 지나고부터 강바람이 불어왔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지낸 며칠 동안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었고 이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강한 볕은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 덕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갠지스강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어느덧 오후의 중반을 넘어섰고 그제야 나는 일어나 길을 나섰다. 강변에서 멀어져 시장길을 거쳐 시내로 들어서자 거리엔 온통 사람들과 자동차와 사이클 릭샤로 붐볐다. 걸었다. 평소에는 목적지가 있는 걸음이었다. 하지만 여행지에 당도한 후 내딛는 걸음은 대부분의 경우 목적지가 없다. 그저 걸어가 볼 뿐이다. 이 길 끝까지 가보겠다 마음을 먹으면 계속해서 걷는다. 나는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걸어 매연과 경적소리에 익숙해질 즈음 이 익숙함을 깨는 더 큰 소음 덩어리가 귀를 때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차들은 더욱 빠르게 달리고 사람들도 서둘러 걷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차는 한 덩어리로 엉켜 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강바람이 어느새 여기까지 불어오는 걸까. 하지만 강 앞에서도 나질 않던 물 냄새가 나는 듯했고 그 사이 나만 피해 내렸는지 빗방울들이 여기저기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지금이라도 빨리 발길을 돌리면 비를 많이 맞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서 잡아끄는 정신에도 발걸음을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걸음을 따랐다. 어디서든 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비는 그친다. 계속 걸었다. 모래가 날리고 수십 개의 다른 경적소리가 거리의 허공을 찢었다. 이제 막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거리는 비상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비에 익숙했다. 비가 익숙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냥 계속 걸었다. 비가 이 모든 매연과 경적소리를 잠재울 것이다. 침묵이 시작되고 빗소리만이 거리를 메울 것이다. 바라는 사이 일순간 뒤에서 세찬 비가 사람들을 몰았고 달려오는 사람들에 휩쓸려 나 역시 천막 아래로 옮겨졌다. 아무도 우산을 쓰질 않았다. 우산이 없었다. 비바람 속에서 상인들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였고 노점상인들은 비닐로 좌판을 덮었다. 몇몇은 물건을 지키느라 비바람을 그대로 맞고 서 있었다. 행여라도 좌판의 물건이 젖을까 모서리를 비닐로 더욱 여미고는 꼭 붙들고 있었다. 갑자기 이마를 때리는 무언가가 날아왔는데 송방울만 한 우박이었다. 비닐을 붙잡고 선 젊은이의 얼굴에도 우박이 떨어지자 그는 맞고서도 실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우박을 집어 맞은편 상인에게 던졌다. 주위 사람들 모두 웃었다. 이곳엔 우산이 없다. 이 사람들은 비에 익숙하지 않다.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던 나 역시 일순간 비가 낯설어졌다. 낯설어진 비를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한 방향으로 목을 빼고는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결국 비는 그쳤고 생각보다 짧았던 삽십 여분 간의 일이었으며 그 사이 거리는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지하로 빠지지 못 한 물이 거리 곳곳에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빗물이 좁은 골목의 온갖 똥들과 쓰레기와 자그마한 무엇들을 끌어안고 지금 내 눈 앞의 거리 위에 모여 있다. 물을 건너지 못 하고 서 있는 사람들, 신발을 벗는 사람들, 무심히 건너가는 사람들,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둥둥 떠있는 물건들을 쳐다보던 나는 양말과 운동화를 신은 채 마지못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꺼이, 발을 담궜다. 건너지 않을 수는 없었고 맨발로 건너기엔 게을렀다. 사실 유난떨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태연히 이 상황을 처리하고 싶었다. 티 나지 않게, 이방인이라는 걸 들키지 않게. 앞사람의 등만 보고 내디딘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겨우 열 걸음 남짓을 걸었다. 일순간 모험 후의 짧은 환희와 이내 긴 슬픔이 이어졌다. 나는 비가 익숙한 나라에서 왔고 늘 우산을 쓰고 다녔으며 물냄새에 익숙했지만, 더러운 빗물에 푹 젖은 이 축축한 발의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은 않은 감정들 때문에 자꾸만 슬퍼져서 더 걷지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사이 사람들은 태연히 비닐을 젖히고 바닥을 쓸고 갈 길을 갔으며 경적소리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비는 피할 수 있고 결국 비도 그쳤으나 이 거리 위에서 나 혼자만 무거워하고 있는 듯했다. 이내 매연이 보일 만큼 바짝 마를 이 거리 위에서.  
 
 
2013. 01. 19. 바라나시, 인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여행

여행 2013. 5. 19. 02:30

 

여행 후 석 달이 되어가는데도 제대로 펼쳐본 적 없는 그때의 일기장. 손때에 닳는 것보다 오래

들춰지지 않은 종이가 더 빨리 늙는 것 같다. 책상 위에 꺼내두고 그냥 가만히 오래 쳐다보았다. 

 


내가 여행에서 깨달아야 할 것 :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무한한 애도를, 그리고 반드시 나아질 것.

#비행기 

높은 고도 위에서의 이 안정감. 나는 지금의 이 안정감에 행복하지만, 이것이 도피이고 회피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무엇으로부터 도피한 나의 용기와 견딜 수 없는 걸 견디지 않은 나의 약함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영원히 착륙하지 않는 비행기를 상상한다. 계속해서 도착을 미루며 그곳으로부터는 한없이 멀어지고 목적지와는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영원히 닿지는 않는, 무한대 같은 것. 출발지에서 움직였다는 안도감과 도착하길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고 싶은,

긴장이자 태만. 그러는 사이 찾아오는 피로라는 솔직함, 나는 이내 잠이 든다. 그동안 나타나지 못했던 오래된 꿈들의 축제. 높은 고도 위에서의 이 안정감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맨몸으로 문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가장 높은 곳, 이 안락한 세상. (2013.12.28)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물고기

여행 2013. 2. 15. 03:46

쉼라에 갔었어 새벽 컴컴한데 역에 떨어졌고 버스 안에서부터 내내 추위에 떨던 몸은 제어할 수 없이 바들거렸어. 외롭고 서글펐지만 이제 여행의 시작이니까, 견딜 수 있었어. 어쨌거나 견딜 수 있는 이유들은 많으니까. 흥정하며 따라 붙는 인도인들과 신경 싸움 할 힘도 없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갔어.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단 말에 내렸고 다시 인적 없는 곳에서 무거운 배낭 메고 내내 헤맸지. 이 곳은 현재 완전한 비수기였어. 오래 계단을 올라 눈에 익은 이름의 숙소를 찾았고 불이 꺼져 있어 영업 안 하면 어쩌나 하며 들어가선 두리번 거리는데 조그만 그림자의 헬로우 하는 소리에 기겁을 했어. 어쨌거나 얼마나 반갑던지. 시계를 보니 일곱 시 그제야 거짓말처럼 창밖이 환해지더라. 난 겨우 방으로 올라가 침낭을 펴고 바로 잠에 들었지. 그리고 오래 올라왔던 계단길을 다시 내려갔어. 모퉁이를 돌 쯤에 낯선 한국인을 만났는데 같이 내려가자고 하길래 따라가다가 인도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 걸 봤어. 홀린 듯 그리로 갔고 개중에 몸이 작고 얼굴이 아주 예쁜 인도 여자 아이가 있었어. 아이 몸인데 얼굴은 성인의 느낌이라 묘한 분위기를 가진 아이였지 예뻐서 빤히 보는데 한국인일 거란 예감이 들더라. 옆에 동행이 머리카락이 정말 예쁘다고 하자 그 아이는 머리를 우리에게 갖다대며 흔들었어. 그러자 아침 햇살에 비치며 반짝거리는데 우리도 모르게 웃음이 났어. 내가 혹시 혼혈인이냐고 묻자 그 아이는 아니라며 엄마 아빠 둘 다 한국인이라고 말했어. "엄마 아빠가 바닷가 마을의 시장을 걷다가 인도 물고기를 먹었대요. 그리고 제가 태어난 거예요." 잔뜩 집중하는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하곤 고개를 까딱 끄덕여 보였어 우리는 다시 또 웃었어. 주위에서 함께 웃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왔어. 조금 더 허락했다면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또 어딘가로 끌려 이동하고 있었어. 어쨌거나 반짝거리는 머리칼이 정말 예뻤어. 잠을 아주 조금 잔 후에 맞은 이른 아침의 느낌을 알아? 피곤한 감각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쏟을 떄, 성실한 감각들이 가장 힘을 낼 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