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림자가, 하면서 이모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보았던 것입니다. 현관 쪽으로 늘어진 내 그림자의 끝 부분이 종이 귀를 접은 것처럼 바닥에서 솟구친 채로 팔락이고 있던 것을 말입니다.  (p.71)

그래서 내 그림자가 일어섰을 때, 라고 여 씨 아저씨가 말했다.

녹아서 팥물이 되어 버린 빙수를 마지막 한 수저까지 말끔히 먹고, 그간에 손님이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온 앰프 하나를 고쳐서 보낸 시점에 나온 이야기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일어섰나요?
일어섰지, 나도.
여 씨 아저씨가 새삼스럽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나를 보았다.
나도 살면서 이런저런 사정을 겪었는데 그림자 정도, 솟구치지 않을 수가 있나. 우리 집 현관에서 말이야, 구두를 신고 있는데, 반짝 일어서더라고.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 그 친구 생각도 나고, 모골이 송연하다는 말은 이런 것을 목격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면서 보고 있었어, 뭘 해볼 수가 있나, 그림자에다 대고. 이게 일어선 것이라고 마구 잡아당기는데 내가 좀 근성이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말이야.  (p.44)


                                                                                                                                       백의 그림자. 황정은




개기월식을 떠올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일어서면,
그렇게 오롯이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하면 그리고 기어코 지구가 제 그림자를 따라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우주 끝간 데 없이 가기 시작하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또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지구를 말릴 수는 없겠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In Asia

인용 2011. 11. 23. 23:19

영상은 Vincent Urban.
음악은 Yann tierson의 dust lane.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너무 신기하다. 익숙해질만 하면 어느새 또 낯설다. 

그 경계에서 다시금 절실해지는 건,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마을 지하수는 뜨겁다. 
그러나 온천은 아니다. 백구나 야에코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그 물을 감지하고, 사과나무와 같이 끊임없이 빨아들이며 살고 있다. 내 몸에서 여과되고 농축된 물은 야에코 몸으로 옮겨가 그녀의 나날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야에코는 기차 안에서 잠들어 있겠지.
아니면 아기만 자고, 그녀는 창에 비친 자기 얼굴과 창 저편의 어둠과, 어둠 속에 드문드문 반짝이는 인가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종이봉투에서 사과를 꺼내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가슴속에 내 생각 따위는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 가슴속에는 약 천 일 동안 야에코와 보낸 추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백 그루가 넘는 사과나무가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일부터도 나는 그 둘에 매달려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확실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야에코의 인생은 드디어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내 인생은 끝났다.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 中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왔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은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 온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3일, 5일, 6일, 9일……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천사들은 자궁 속의 아기를 방문해 지혜를 가르치고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 모든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쉿, 하고 손가락을 아기의 윗입술과 코 사이에 얹는데, 그로 인해 인중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 시를 볼 때마다 떠올릴, 내 손가락의 두드림과 너의 기다림 그리고 그 십오 분 동안의 침묵.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thiago pethit

인용 2011. 10. 17. 01:38






하릴없이 듣고 또 듣고,
힘을 빼고 부르지만 온갖 감정들이 밀도 높게 농축돼 있는 듯한 음악. 
카메라 돌아가며 몸으로 리듬타는 사람 하나둘 스쳐갈 때, 느낌 정말 좋다.  

하염없이 듣고 또 듣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Bela Tarr - Prologue

인용 2011. 8. 10. 22:31





벨라 타르, <Prologue> 


집으로 오는 길 느닷없이, 이 영화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단 말이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알쏭달쏭한 時
              황인숙

파란 빨강, 빨간 파랑
도라지꽃 만발한 고사리꽃 만발한
담장 너머 숲 속에 새 한 마리
슬프고 어여쁘고 기기묘묘한 소리로
지저귄다 (너, 새 맞지?)
고개가 기울어지다, 기울어지다,
배배 꼬인다
누가 숨겨둔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하고 지나온 듯한
소녀시절.*


*내 수첩에 적혀 있는데, 언젠가 스스로 떠올린 생각인지 아니면 어디서 베낀 건지 모를 구절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이런 감성이 계속 고픈 밤.


영심아


 




여전히, 알고 싶어요.
아, 정말 좋다. 


둘리야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더운 여름날 고길동과 둘리가 선풍기 틀어놓고 낮잠 자다가 잠이 깬 둘리가 일어나 아주 커다랗고 네모난 얼음을 먹자 그게 배에 걸려서 둘리 몸뚱이가 얼음 모양이 된 장면, 그 이미지, 


더불어

하니야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요즘은 정말 그렇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생일이다. 진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질 들뢰즈는 뱅센느 대학의 한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괴로움을 겪지 않는 자, 그건 무슨 뜻일까요
?
그는 자신이 버텨낼지 버텨내지 못할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
정작 필요할 때, 가장 용감한 유형들은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
그 방면에서 형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형들이 경이롭게도 끝까지 버텨냅니다.
...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쉽죠. ‘아 난 결코 그걸 못했을 거야!“
우리는 그러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 옆을 스쳐갑니다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죽고
,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
                                                  그린비 gblog 에서,


걸으면서 읽다 잠시 멈춰섰고, 한참 걷지 못 했다

아 계속 걸어서 뭐하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I'm in Here

인용 2011. 4. 12. 01:22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