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질료에 가깝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이 사실이 명백해진다. 뭔가 부피를 가진 것이 눈앞에 놓여 있는 듯하다. 부피를 가진 것 안에서 정신이 작동하고 있다. 정신은 말을 통해서, 그득하게 쌓인 소리의 무더기에 일정한 한계를 만들려 한다. 만약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면 사람은 그 안에서 소리와 정신의 대치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 정도로 완벽하게 소리는 정신 속으로 스며들어버린다. 『인간과 말』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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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와 함께 삽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그녀가 젖 먹던 힘까지 기울여야 할 만큼 힘이 듭니다. 마침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그녀는 원래 그녀의 출신인 ‘저속한’곳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러고는 답을 찾아냅니다.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는 거라는. 그런데 현기증이라는 건 뭐죠? 저는 그 정의를 찾아내서 “쓰러지고 싶은, 막막하면서도 이겨 낼 수 없는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금방 저는 생각을 고쳐서 그 정의를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에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 하며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백주 대로에 쓰러지고 땅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라고 명확히 합니다. 현기증은 테레자를 이해하는 열쇠예요. 당신이나 저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어는 아니죠. 그렇지만 당신이나 저나 적어도 이런 종류의 현기증이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것, 실존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알지요. 저로서는 이런 가능성, 이 현기증을 이해하기 위해서 테레자라는 ‘실험적 자아’를 만들어 내야만 했던 겁니다.


『소설의 기술』p50 , 밀란 쿤데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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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밝히려는 노력조차 부담스러워서 제껴두기만 하던 내 죄책감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차피 알 수도 없거니와,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는 망령때문에 괴로웠던 건, 내가 받은 만큼 베풀지 않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한 시절에 그리고 여전히, 어떤 공간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게 많다. 그리고 그 받은 것들이 정말 소중하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당위들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내가 느끼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피하게 만든다. 해야만 한다고 믿는 걸 하지 않아서 느끼는 죄책감과, 내가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해서 느끼는 죄책감은 다르다. 고통을 고충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마음이 좀 밝아졌던 것만큼이나 괜찮은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마음이 편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어쨌거나 내가 나에게 늘 바라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은 행동하는 것이다.

2.

 

불편한 신발을 바꾸는 것만으로 삶이 훨씬 나아진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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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서 일주일간 침낭을 접지 않았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이 들자마자 서둘러 짐을 쌌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맥간에서 다람샬라로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인 쉼라로 이동하는 버스는 서너 시간 후에야 떠날 예정이었다. 컴컴한 역사에 앉아 있기엔 막막한 마음이 들어 역 밖으로 나가자 장터가 보였다. 주민들로 북적거리는 길 한 귀퉁이에 앉아 거리가 한적해질 때까지 돌아다니지도 않고 꼼짝않고 그렇게 앉아 눈앞의 풍경을 지켜보았다. 오래지 않아 장터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가 한적해지자마자 불빛 역시 사라졌다. 쉴 만한 카페를 찾으려 주위를 한참 걸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맥간에는 그토록 많던 카페, 다람샬라 이곳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후미진 골목 입구에서 작은 매점 하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나마스떼라고 인사하자, 시큰둥한 표정의 주인 그저 묵묵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 비스켓 하나와 짜이 한 잔을 시키고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막 식사를 끝낸 한 무리의 현지인들이 매점을 빠져나가자 주인은 텔레비젼을 끄고 라디오를 켠다. 이제는 익숙해진, 멜로디와 창법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주인은 음악을 흥얼거리며 도마 위의 반죽을 마저 밀기 시작한다.

새삼 요 며칠 내가 머물던 맥간은 여행자를 위해 잘 차려진 곳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닥닥 붙어있는 집들의, 작은 불빛들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이곳 어디에도 불빛을 환하게 켜둔 걸 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이곳 주위에, 나 같은 여행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든다. 순간 나마스떼라는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돌리자 막 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듯한 한 젊은 남자가 들어온다. 음식을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주인과 남자가 대화를 시작한다. 무슨 얘길하는지 간간이 웃는다. 불평을 하는지 남자가 찡그리며 많은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도 한다.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는지 한번씩 나를 본다. 그러는 사이 음식이 완성됐고 남자는 말을 멈추고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불현듯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고 평온해진다. 눈치채지 못하게 이곳에 스밀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아무 염려 없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이 순간의 치기가 잠시나마 나를 자유롭게 한다. 어차피 지속될 수 없는 순간의 감정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껏 낭비하고 싶다. 정작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좇는 자유. 자유보다는 해방. 어디로부터의 해방인지는 모르지만 저기보다 여기가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는 사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그의 눈에서 나의 태만을 읽는다. 아니에요. 나도 지금 꽤 치열하다고요…. 아무렴, 어떻게 오해받든 나는 다시 떠날 여행자인 걸, 오해받는다는 것마저 오해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왜 나는 지금 당신에게 미안할까. 미안해하는 순간 치기스런 꿈을 깬다. 곧 이곳마저 문을 닫으면, 늦은 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매달리는 심정으로, 이 공간에 더욱 친밀해진다. 막 탄생한 풋풋한 향수를 느낀다. (201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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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여행 2013. 11. 25. 00:43

 

다섯시 반이면 해가 질 거야. 그가 일러준 일몰 시간 만은 내내 유념했다. 나름 부지런히 걷는다고 걸었는데 어느새 다섯 시였다. 꽤 오래전에 0.5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고 그때부터 쉬지 않고 올랐으니 곧 대피소에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파른 오르막길, 눈에 발이 깊이 빠지는 길을 계속 올라야 했고, 흩어지지 않고 얼굴 주위를 맴도는 숨소리만 들렸다.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문득 몇 걸음 전에 표지판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내려갔다. 0.2km. 내가 도착해야 할 대피소까지의 거리. 그런데 화살표가 아래 방향이었다. 응? 숨소리가 달아나고 정신이 좀 들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표지판에 쌓인 눈을 장갑으로 슥슥 털어내고는 다시 한번 보았다. 화살표 방향이 아래쪽이었다. 일단 생각했다. 오는 길에 대피소가 있었던가. 없었다. 못 봤다. 힘이 들고 위험해서 땅만 보고 올랐다지만 사람의 기운을 느낄 만한 공간은 없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꺼져 있었다. 왜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반 이상 배터리가 남았던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전원을 다시 켜자 초기 화면이 뜨더니 바로 다시 꺼져버렸다. 날이 차서 그런가싶어 내복에 대고 문질러보았다. 이젠 켜지지도 않았다. 급하게 임시 충전기에 꽂아두고 입구에서 얻은 지도를 꺼내보았지만 이것 역시 조악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잠시 장갑을 뺀 사이 손이 많이 시렸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다가 마음을 정했다. 정해야 했다. 유난 떨지 말고 오르던 길을 마저 오르자. 어쨌거나 어떻게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오분 가까이 걸었다. 그 사이 하얗던 눈이 어둑하게 보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걸음을 멈췄다. 이 길이 대피소가 아닌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토끼 발을 하고서 높은 곳을 올려다봐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두울수록 선명해지는 시커먼 산의 형상이 점점 더 커지며 눈을 예민하게 했다. 나를 가장 조급하게 했던 사실은, 랜턴이 없다는 것. 곧 해가 진다. 길을 잘못 들었다간 초행인 이 산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보았다. 다시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선택해야 한다. 평소 자주 고민하던 선택의 문제, 가 아니라 이건 그냥 선택이다. 내려가자. 대피소는 아래에 있을 것이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눈의 깊이를 가늠해볼 스틱을 쓸 여유도 없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낭떠러지로만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또다시, 멈추었다. 내 선택을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못 믿는다. 여전히 휴대폰은 켜지지 않았다. 가방 더 깊숙한 따뜻한 곳에 집어넣었다. 의지할 건 이 폰 뿐이라 해도 영영 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기대하지 말자. 그러고 얼마 동안 꼼짝도 않고 눈 앞의 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의 외곽선을 따라 그릴 수 없었다. 선이 공기에 뭉개질 만큼 이미 어두워졌다. 해가 졌다. 두 어 번 소리를 질러보았다. 저기요. 저기요. 스스로도 성의 없는 외침이었다. 성의가 생기지 않았다. 뭐 하나도 결단있게 할 수가 없었다. 시야도 잘 보이지가 않으니 이대로 하산한다면 눈에 푹푹 빠져 지치거나 길을 잘못 들어 오래 헤매거나 지쳐 앉아서 잠들거나, 그러다가 얼어 죽거나 운 좋으면 따뜻하게 아침 햇살을 맞거나 그럴 것이다. 그런 가능성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살고 싶다 혹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지금 와 보니 신기한 것 같다. 그럴 정신이 없었거나, 절박하지 않았거나, 나 말고 믿는 구석이 있었거나) 전방 몇 킬로미터 안에서 대피소 외에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산하는 몇 명만 보았을 뿐 이 등산로로 오르는 사람은 내내 나뿐이었다. 이곳에 폭설이 왔다는 기사가 전날 떴었다는 걸 후에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올랐다. 정말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부터 그냥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계속 걸었다. 괜찮아. 오르다가 보았던 커다란 돌을 빨리 발견하자. 그 아래는 공간이 있었는데 거긴 따뜻해서 괜찮을 거야. 반달곰만 만나지 말자. 이것도 경험이지. 그래. 그러는 사이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꺼졌던 휴대폰의 전원이 다시 켜지면서 나는 진동음이었다. 멈춰, 섰다. 그때부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장갑을 벗고 몸에 고정시킨 가방의 벨트를 풀고 바닥에 내렸다.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냈다.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냈다. 지도에 적힌 대피소 전화번호가 잘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불빛을 가까이 갖다대도 잘 안보였다. 정말 애를 써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휴대폰에 번호를 하나씩 찍는데 손이 떨렸다. 번호를 누르기 힘들 정도로 떨렸다. 보이지 않는 숫자 하나는 종이에 눈을 거의 갖다 붙이다시피 해서 대충의 예감으로 번호를 찍었다. 폰아 제발 꺼지지 말아줘. 신호가 갔다. 대피소입니다. 제가요 산을 오르다가 영점이키로미터 남은 표지판을 봤는데 아래쪽으로 내려가라고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르던 길을 다시 내려왔는데 이게 맞나요. 대피소가 어디 있나요. 상대방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지 몇 번 되묻다가 옆 사람에게 바꿔주었다. 제가 오르다가 이백미터 남았다고 봤는데 그게 반대방향인 거예요. 제가 잘못 가고 있나요. 아니 거기서부터 대피소로 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왔던 길로 그냥 와요. 많이 내려갔나요. 그러니까 그냥 계속 올라야 했던 거였다.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데 발이 너무 무거웠다. 왜 이렇게 많이 내려왔을까, 속이 상했다. 열 걸음도 못 걸어서 지쳐 쉬고 조금 걷고 또 쉬며 올랐다. 다시 얼굴 주위에서 숨소리가 돌았다. 생에 내 발이 가장 무겁게 느껴진 때였다. 한참 오르는데 가파르게 높은 저 위에서 불빛이 흔들렸다. 걷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일렁이는 불빛이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내가 있는 곳까지 밝아졌다. 아니 아이젠도 없이 왔어요? 국립공원 직원인 그는 자신의 아이젠 하나를 벗어주었다. 그걸 신고 오르는데 오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불빛과 아이젠만 있었어도, 아니 불빛만 있었어도 내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순간 이런 사치스런 생각을 했다. 혹시나 해서 내려왔다고 했다. 데리러 와달라는 말도 안했었다. 이젠 한 발자욱 떼는 것도 힘들만큼 다리가 무거워서 다섯 걸음도 못가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불빛을 비춰주며 뒤따라오는 분에게, 죄송합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빨리 못 가겠어요 하니까, 아니에요 여기선 남는 게 시간이니까 천천히 올라가세요. 남는 게 시간이라니, 그래 내가 무사하지 않았다면 이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 그렇게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사무실 사람이 준 믹스커피를 마시는 순간 얼굴에 열기가 뱅그르 돌았다. 내가 기운이 좀 생기는 것 같자 한 직원은 그때부터 혼을 냈다. 일 년 동안 여기 오르는 이만 명 등산객 중에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18년 동안 일하면서 나처럼 표지판 잘못봐서 헤맨 사람은 처음이다. 챙겨야 할 등산용품, 알고 있어야 할 수칙들도 일러주었는데, 그래도 가장 따끔하게 이른 말이 이것이었다. 산에 오를 때는 특히나 이런 험한 산에 오를 때는 절대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오르지 말라고. 그런 마음으로 주의나 대책 없이 살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는데 나는 그걸 또 잊고 지냈다. 쏟아지는 별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눈이 와서 못 볼 거라고 했다. 믿지 않고 새벽 세시에 깨어 나가보았는데 역시나 못 봤다. 눈 때문에 꼭대기도 오르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다음날 기어코 꼭대기에 올랐다. 안 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설산이 정말 좋았다. 시야가 온통 하얬지만 눈 쌓인 산이 그냥 그대로 정말 좋았다. 운이 좋았다. 어쨌거나 운이 좋았다. 이제 이렇게 운에는 의지하지 않겠다고, 의연하게 반성했다. (201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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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나와서

여행 2013. 11. 25. 00:12
몇 시간 내내 비를 맞으며 숲 속을 걸었다. 

나무가 모두 달라 
걷는 몇 시간 동안 저기와 여기의 나무 모양은 완전히 달라
멋진 나무들
자연스러운 게 왜 좋은지
자연스럽게 그대로 쑥쑥 자란 것들 그냥 보아도 좋은 것들
나무 모양 

좋다고 하는 걸 좋아했고 좋다면 하면 더 좋아졌고 보지도 않고 좋아했다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만큼 느끼고 충분히 우러나와 좋아했다 절로 춤이 나왔다 

 

(히말라야,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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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행 2013. 11. 25. 00:03

밤새 많이 아팠다 방의 한기에 떨면서도 온몸에 열이 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들지도 못한 상태에서 꿈이 찾아와 어지러운 밤을 보냈다. 침낭 안에 온몸을 잔뜩 웅크리곤 밤새 끙끙 대다 새벽을 맞았다. 여행에서의 첫 앓이. 여행 한 달 만이었다. 실컷 아프고나자 비로소 새 땅에 적응한 기분이 들었고 제자리에서 틀어졌던 것들이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한껏 열을 낸 몸이 아프기 전보다 평온해졌다. 어제보다 맑은 아침이었고 어제보다 히말라야 능선이 더욱 잘 보였다. 눈에 띄게 큰 날개를 가진 독수리가 설산 가까이로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다. (나가르코트, 네팔, 20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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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여행 2013. 11. 25. 00:00

여행 온 이후로 무언가에 엄청 집중하는 꿈을 자주 꾼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가 인도에서 아디다스가 세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이틀 뒤 꿈에 나왔다. 그런데 꿈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행 중 요긴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해 내가 엄청 집중을 하던 기억 아니 그 집중력 자체가 꿈을 깬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그저께는 꿈에서 방송구성안을 하나 맡았는데 그걸 써내기 위해 어찌나 집중했는지 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흔히 꿈에서 겪는, 뭔가 -걷는 일이나 뭘 찾는 일이나- 잘 되지 않아서 계속하게 되는 헛발질 같은 것이 아니다. 집중을 할 때마다 잘 되지 않아 내내 시달리는 꿈이 아니라 집중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 만으로 깸 이후가 개운하다. 꿈에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힘을 느낀다 힘 그 자체를. (바라나시, 인도,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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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빛

일상 2013. 11.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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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시가 넘어 일어나서-아 이곳은 얼마나 따뜻한가-영화 한 편을 다 보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시나몬과 라씨와 짜이를 마시고 락시만 줄라를 따라 한참 걸어나갔다가 버터과자를 먹으며 되돌아왔고 갑자기 기운이 떨어져서 방으로 돌아와 늦은 오후에 잠을 잤다. 생각보다 꽤 걸었나보다. 저녁 여섯시에 다시 일어나 리틀 부다 카페에 와서 양이 엄청 많은 계란 볶음밥을 먹었다. 오래 머물고 싶어 밥을 조금 남겨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끝까지 다 읽었다. 그 사이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내가 평안하게 잘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평안하다. 읽을 책이 다 떨어질 만큼 여행이 길어지면 무척 심심할 것 같지만 그때쯤이면 책 없이도 잘 지낼 만큼 여기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정말 좋다. 책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슬퍼서 책을 덮고 엎드려 조금 울었다. 이곳에서 한글로 된 그의 다른 책을 구하고 싶다. 갠지스 강에서는 물냄새가 나지 않는다. 리쉬께쉬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물 안개 때문이겠지. 별이 안 보일 만큼 더러운 곳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201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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