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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1 할머니
  2. 2016.05.25 암묵적인 것(이정빈)
  3. 2016.05.25
  4. 2016.02.17 모든 소란을 고요를 기를 수 있다.(박연준)
  5. 2016.02.05 존재의 투명성(김우창)
  6. 2016.01.24 메모
  7. 2016.01.16 놀이터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8. 2015.12.08 2011년의 사소한 이야기들
  9. 2015.12.02 사진과 순간들
  10. 2015.11.30 사진들 기억들

할머니

일상 2016. 6. 1. 00:07


그냥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갈 참이었다. 촬영을 해야겠다는 작정을 하지 않고 온 터라 마음이 편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208호 할머니댁에도 들려볼까 싶었지만 이건 근처에 가서 충동적으로 결정해야지 싶었다.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를 돌고 있는데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동 앞에서 할머니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밀며 올라오시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고 할머니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나인 것을 알아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신기하고 막상 뵈니 참으로 반가워서 나도 웃었다. 그러잖아도 마침 어제 이 아가씨 언제 오는가 싶었단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뒤따랐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요구르트를 내오셨다. 지난 번에는 나 혼자만 마셨는데 이번에는 같이 마셨다. 대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잘 들어왔다. 좀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하니 딸네서 주는 것 잘 먹고 병원을 다녀 그런가보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라 산책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더니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단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니, 나 같은 늙은이야 가까운 곳만 살살 다니지만 자네같이 젊은 사람들은 천지 겁없이 다니다가 사고가 훨씬 많이 난다고 조심하라 하셨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갑자기 박수를 한번 딱 치면서 그러잖아도 어제 꿈에 내가 나왔다고 했다. 바쁠 텐데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이 입밖으로 정말 튀어나와서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서 깨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5월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게 생각이 나셨단다. 나는 얼마 전 묵주를 선물받았는데 오는 길에 보이는 성당에 들러 축성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거기 사람들을 잘 아니까 도와주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하셨다. 성당엘 다니는 할머니는 일요일 대부분의 시간은 그곳에서 보낸다. 교회도 가고 절에도 다녀봤지만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성당이 좋다고 했다. 저도 성당의 그런 점이 좋다고 하니까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 예, 예 답했다. 매번 해주시는 이야기들, 국가와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과 성당과 교육과 결혼에 대해 말하셨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는 눈이 자꾸 감기고 겨우 하품을 숨기고 저린 발을 꼼지락 거렸다. 듣기 좋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좋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볼라치면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사를 드리며 8월에 또 놀러오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주방으로 가더니 유기농 차와 말린 귤 껍질을 꺼내오셨다. 선물을 담아 크게 부푼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아파트 마당에서 다른 집 할머니가 놀자고 부르셨다. 누가 부른다고 말씀드리니 이제 기도시간이 되어서 나는 안 놀겠다고 하셨다. 그럼 그동안 건강하시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 있던 꽃나무들은 현관 앞에서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할머니께 질문을 드리면서 대화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에 작은 선물이라도 사와야겠다. 이렇게 할머니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할머니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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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인 것(이정빈)

인용 2016. 5. 25. 17:04

물론 이 글은, 이제까지 사례로 든 디자인 리서치나 아티스틱 리서치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미래의 예술 형태를 섣부르게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디자인 리서치나 아티스틱 리서치의 사례에서 파악할 수 있었던 긴요한 점은 프리프로덕션의 일부로 취급되어 온 기존의 리서치 개념보다 확장된 대문자 R로서 리서치(Research)이다. 이러한 리서치가 연구 수행 과정 즉, 하나의 예술 작품에 직접 관련하며 몸을 통해 얻어진 감각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이에 관한 비평 역시 감각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대문자 R로서의 리서치가 가진 인식론적 의미는 암묵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암묵적 지식 논의를 토대로 인간의 몸속에 있는 지식, 명제화되어 있지 않은 지식과 창의성의 발현을 논한 바 있다. 암묵적 지식이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외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현상의 요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암묵적 지식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몸 안에 잠복한 감각을 통해 외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이며 또한 상상력과 창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구자나 예술가들이 지닌 몸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영상ㅡ미술작가의 영상 작품, 영화, 다큐멘터리 등 모든 장르를 포함한ㅡ을 암묵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발언하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가 아니라, 등장하는 세계 내 인간과 자연의 마찰, 다시 말해, 내용을 떠받치는 과정 자체가 암묵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나 영화에 선 그어진 매체 특정적 분류는 영상에 의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의 각 영토나 장르에 대한 명시적 접근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감각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감각은 암묵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그것을 비평하고 전달하기 위해 언어와 비언어적 표상의 종합과 배열을 확장하는 실험에서 비롯할 것이다. 암묵적 지식은 문제는 해결하는 데 발휘할 수 있는 감각적 능력이다. 아직까지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를 파악함으로써 종국에 발견될 인식의 범위는 더욱 확장될 수 있다. 미술작가들과 영화감독들의 리서치에서 카메라에 담긴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설령 우발적으로 포착된 것이든 간에 살아 있는 사람의 암묵지와 현상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풍경이다.

소문자 r로서의 리서치(research)가 아닌, 대문자 R로서의 리서치(Research)는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보다 더 넓은 의미로서, 현상에 관한 여러 가지 감각들을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조사하고 배치해 내는 방식이다. 도래할 영화가 전해 줄 활력은 한 화면 안에 다양한 미디어의 요소들이 자유롭게 놓일 때 발생할 것이다. “과학 그 자체는 이론이 아닌, 과학자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경험”이라는 폴라니의 말에서 과학을 예술로 바꾸어 다시 적는다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불확정적이고 암묵적인 인간의 감각과 현실 인식에 관한 R로서의 리서치(Research)이다. 


이정빈, 대문자 R로서의 Research <OKULO 0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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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6. 5. 25. 09:55


눈을 뜨자마자 낯선 기운에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가끔 촬영을 위해 들리는 아파트, 그것도 208호 집 안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집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곤 했었지. 난 대체 언제부터 여기서 잠을 잤던 걸까. 몸이 몹시 무거웠다. 너무 피곤해서 내일 출근할 일이 걱정되었다.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행여 아침잠 없는 옆집 할머니가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본다면? 침입자로 생각해 그 무뚝뚝한 얼굴로 호되게 소리를 지를 게 뻔했다. 그런데 왜 208호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걸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딸이 사는 곳에 몇 일 가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어지나 보다. 아니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이 집으로 몰래 들어온 걸까? 하지만 이 생각마저 압도하는 것은 할머니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방은 할머니의 손을 타 몹시 깔끔했고 곰팡이 자국이 흘러내리는 한쪽 벽에 꽃나무들도 싱싱한 그대로였다. 다음 날 나는 여전히 무거운 몸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 사람들은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대표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많이 만들어왔다. 사람들은 식탁을 만들고 식기와 음식을 날랐다. 같이 작업하는 디자인팀들도 와서 작은 사무실이 복닥거렸다. 음식이 다 차려지고 배가 고픈 나는 서둘러 의자에 앉으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어선 채 그대로였다. 그때 벽 한쪽에 걸려 있던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그쪽으로 시선이 향해 있었다. 화면에서는 아프리카 부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다. 지금껏 본 부족민들의 춤은 질서는 있되 각자의 움직임이 자유로웠는데 화면 속에서는 똑같이 각을 잡고 움직이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사람들이 서서히 부족민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따라 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따라하는 게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는 새 안무를 익혀 능숙하게 추고 있었다. 자꾸 늘어지던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춤에 취한 그때 회사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전해줄 게 있다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무언가를 툭 던졌다. 그러고는 가엾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의 등뒤에는 작은 사내 아이가 있었다. 아들이라고 했다. 여자는 밥을 좀 먹고 가면 안되겠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더욱 가엾은 표정을 짓는데 아이는 여전히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작은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대표는 한발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음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 여자는 갑자기 표정이 사납게 변하더니 사무실 주위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듯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자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몸짓을 멈추고는 아이의 팔을 낚아채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내가 몸을 날려 아이의 팔을 잡았다.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다면서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음식을 삼켰다. 그런 나를 여자는 흘겨보았다. 그리고 더 힘을 주어 아이를 잡아 데려갔다. 하지만 아이의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여자는 신발의 행방을 추궁하며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듯 일정한 간격으로 주먹이 아이의 작은 머리를 쳤다. 그 행동이 반복될수록 모자가 서있는 자리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땅밑으로 멀어져가는 그들을 향해 이것은 다 내 잘못이니 때리지 말라고 울며 애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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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는 봄의 등뒤에 대고 지껄이던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가볍고 투명한 '소란들'을 반쯤 접힌 귀로 무심히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소란은 누군가의 등뒤에서 잔잔해지기도, 어여뻐지기도 합니다. 


앞은 부끄럽습니다. 

등을 보고 있을 때가 좋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는데, 하루살이가 음식에 날아들었습니다. 케이크 주변을 맴돌아서 손을 휘저어 쫓아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약이 올라 포크를 휘두르며 좀더 공격적으로 대처했습니다. 하루살이는 포크를 피해 케이크와 접시 위에 번갈아 앉으며 수비에 열을 올렸습니다. 안 되겠어서 휴지로 잡아보려고(죽여보려고), 적극적으로 손을 움직였습니다. 

급기야 하루살이가 접시 아래로 숨어버렸고, 휴지를 움켜쥔 저는 접시를 번쩍 들어올렸는데! 접시 위에 있던 포크 두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이 광경이 무척 우습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하루살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살이는 얼이 빠진 제 표정을 바라보더니,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미소를 흘리며' 사라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일화에 '가벼운 소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혼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생각할 것입니다. 작은 것과 싸울 때조차 포크를 휘두르던 제 모습이 떠올라 멋쩍게 웃을 것입니다. 


이 일이 '오늘 겪은 가장 큰일'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모든 소란은 결국 뭐라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하루살이의 미소 같은 것.


괜찮아요.

우리가 겪은 모든 소란騷亂은

우리의 소란巢卵이 될 테니까요. 


-『소란』 중에서,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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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팔다리가 쉽게 움직이는 것은 그 움직임이 공간과 물질세계에 투명하게 맞아들어가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윤리적 태도는 사회적 행위의 효율을 높이고 사회관계를 보장하는 궁극의 필수조건이다. 법이 필요해지는 것은 이것이 반드시 쉽게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희망은 윤리적 투명성을 잃지 않는 사회 질서 속에 사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사람이 존재의 투명성에 접하기를 원하는 것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윤리에 관련하여 칸트는 하늘에는 별들이 있고 마음에는 도덕률이 있다고 했거니와, 여기에서 도덕률과 별들의 병치는 도덕규범의 엄존(儼存)을 비유로 말하려 한 것이기도 하지만, 둘을 이어주고 있는 존재론적 바탕 ㅡ 그 투명한 바탕에 대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말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김우창, 『성찰: 시대의 흐름에 서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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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인용 2016. 1. 24. 23:00

 

1,

아득한 현실에 대한 비난과 미래에 대한 냉소

-조성주, “오늘도 우리의 역사가 된다”, 경향신문

 

2.

일찍이 게으르크 루카치는 “하나의 독자적이고 완전한 삶에 대해 독자적이고 완벽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에세이는 예술과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에세이란 삶을 전달하기 위해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추구하려는 예술적 열망의 사물인 것이다. _이도훈, “김응수의 에세이 영화들에 대한 단상” 중에서, 『비평전문지 독립영화』 45호

 

3.

80년대에 태어나 88올림픽을 지켜보며 자랐던 우리는 <88만 원 세대>라는 낙인 아래, 어떠한 시대적 기억을 공유하며 공동체를 열망하는 ‘발성법’을 획득할 수 있을까." <88작업노트 中)

 

3-1.

나치의 집권이 임박할 무렵, 발터 벤야민은 베를린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글의 서문에서 벤야민은 “강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이미지들-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을 의도적으로 불러내되 그 노스탤지어적 이미지들이 가져올 “동경의 감정”을 "억제하려 애썼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그는 “지나간 과거를 개인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우연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통찰해내고자 했으며, 이렇게 불려 나온 이미지들이 "미래의 역사적 경험을 미리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전시 “88”에서 <논픽션 다이어리>로 이어지는 한국의 90년대에 대한 정윤석의 기획 역시 벤야민의 그것과 닮아있다. 얼핏 <논픽션 다이어리>에서 그가 택한 지존파 사건→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사회학적 조사나 보고서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픽션 다이어리>가 획득하고 있는 역사성과 시의적절성은, 감독 스스로의 청소년이기도 한 90년대에 대한 탐색의 과정(전시 “88”에서의 시도)이 없었다면 얻기 힘든 성과였을 것이다. _권은혜, “<논픽션 다이어리> 작품론”, 『비평전문지 독립영화』 44호

4.
과거에 대한 기억이 현실의 전부인 사람들을 사진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정말 막막하지요. 험한 산을 들었다 놨던 기운을 보여 주고 싶은데, 얼굴이 드러나면 남루하거나 너무 목가적으로 비춰질까봐 그건 싫고 뭘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_한금선

 

4-1.

타자에게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굳이 마음 속 온도와 작업의 온도가 같을 필요가 있을까.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분들에 대한 찬사와 존경은 필요하지만, 까뮈의 산문 『안과 겉』처럼 안과 겉이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게임을 벌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안은 무엇이며, 밖은 또 무엇인가, 그 둘은 어떻게 교통하는가. _노순택


4-2.

예전에는 현장에서의 내 마음을 최대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나 가감 없이 보여 준다는 게 사실은 불가능하잖아요. 그 불가능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내 마음의 온도는 알겠으나 작품의 온도는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하나 고민을 하는 거죠. 말하려는 방식이 바뀌니까 찍는 방식도 바뀐 것 같아요. _노순택


4-3.

사진은 이미 수단을 다 깔고 있잖아요. 특히 사람을 찍을 때 장면이나 상황을 수단으로 삼는 게 전제가 되는 거지요. 직업 속에 적게 혹은 많게 드러나느냐의 차이일 뿐. 그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가 대상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는 속물임을 인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속물임을 부인하면 발언의 수위, 행동의 반경이 너무 협소해지는 거잖아요. _노순택


4-4.

존 버거를 좋아해요. 그의 글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온도도 감탄스럽고. 따뜻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너무나도 냉정하게 찌르잖아요. 보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는 얘기도 의미 있고. 말하기와 보는 것에 방법이 있다면 보여 주는 것에도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고민을 던져 주죠. 사실 보여 주기의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도대체 그 방법이 무언지를 터득하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아무리 주제가 좋다고 해도 보여 주는 게 너무 단순하고, 인식의 확장이나 시각의 확장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은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_노순택


4-5.

노순택의 관심사는 이렇듯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국가와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천태만상의 행동 양상을 띠는가에 맞닿아 있다. _송수정

 

_송수정, 『우리가 사랑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14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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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에 들렀다.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부터 살아서 6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떠났으니까, 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4층짜리 건물이 세 개 동 있는 작은 단지였다. 외삼촌 명의로 된 집에 우리 가족이 월세를 내며 살던 곳,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너희집은 스무 평도 안 되냐’라고 말해서 상처받았던 열일곱 평의 집, 다들 좌변기를 들일 때 아직은 화변식 변기라 오래 똥을 누고 있으면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던, 한동안은 우리 네식구에 막내 이모까지 같이 살았던 그런 집이었다.
아직은 볕이 뜨거운 낮이었다. 그날 나는 캠코더를 들고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찍었다. 놀이터에 쭈그리고 앉아 숨죽여 고양이를 찍고 있는 나를 두고 엄마와 남동생은 ‘쟤는 왜 저렇게 쓸데없는 고생을 하나’라고 한마디씩 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자꾸 탄식이 나서 어느 곳이든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엄마가 소리칠 때까지 뛰놀았던 놀이터는 반으로 나뉘어 한쪽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나머지 반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쓰지 않았을지 모를 시소에는 버린 의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네의 줄들은 모두 끊어졌다. 이것들 사이를 고양이들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재개발추진사무소가 있었고 그래서 이곳 자체의 발전은 더이상 도모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살 적에 부모님이 종이 한 장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이곳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이십 년이 더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제 이곳에는 주민들이 모일 만한 곳이 없다. 하물며 쉬고 떠들만한 벤치가 없다. 건물은 참 많이도 낡았다. 외벽의 낡은 아파트 이름에 새칠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듯이 페인트칠은 조금씩 낡아가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파트 이름이 얄궂게 보였다. 불현듯 찾아와 이렇게 낡고 황량해진 모습을 보니 당연한 건데도 탄식이 자꾸 났다. 당연한 건가. 하나의 공동체이기도 했던 아파트 단지들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걸까. 콘크리트의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고 마는 걸까. 그럼 여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을이면 무성하게 대추를 맺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아직 있었다. 어릴 적엔 참 크게 느껴지던 그 나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내가 자랐기 때문이겠지. 책으로만 보던 이런 뻔한 이야기를 직접 겪으니 생명과 시간에 대한 경이는 두 배가 되는 기분. 대추나무에 대추는 여전히 많이 열리고 있었다. 아파트 계단에 놓여 있던 작고 깨끗한 자전거와 더불어 가장 생기를 느낀 장면이었다. 

내 또래 중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마음의 고향인 사람이 많지 않을까. 아버지가 어릴 적에 집 앞 실개천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했다던 이야를 해주었듯이, 나는 2층 창문에서 아파트 단지가 울리게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모래 날리는 놀이터에서 공을 차던 나와 친구들 모습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세입자인데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돈을 꽤 벌어 도시의 끝 외곽에 집을 샀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다. 집을 사겠다는 부모의 악착같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소유하던 사람들은 딱히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재개발이 된다고도 했기에 그 기대도 컸을 것이다. 내가 알던 주민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릉의 낡은 아파트를 방문했다. 무너지기 직전의 이 아파트에 아직 사는 사람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한때 재개발에 대한 기대로 버티다가 이제는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의 집값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사정과 많이 닮아있었다. 아파트의 수명과 수명을 다해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한때의 욕망과 지금의 사정들에 대한 관심이 머리 한쪽을 채우고 있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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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필이 지저분하게 꽂힌 상자 사이를 뒤져 커피 믹스를 하나 꺼낸다. 바닥에 흩어진 슬리퍼를 발로 찾아 신고는 엉덩이로 의자를 밀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른손에 커피믹스를 쥐고, 왼손으로는 아까의 상자에서 가위를 꺼내 봉지 끝을 자른다. 바닥에 떨어지는 봉지를 슬쩍 보고는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인 종이컵을 집어 정수기로 향한다. 사무실에 일렬로 늘어선 책상들 끝에 놓인 정수기를 향해, 오직 그것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걸어 간다. 정수기 앞에 도착하자 오른손에 쥔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한번에 털어 넣고는 지저분한 휴지통으로 빈봉지를 구겨넣는다. 종이컵을 온수가 나오는 꼭지 아래 두고 오른손으로 온수 버튼을 누른다. 커피믹스가 갓 잠길 만큼만 담은 후 종이컵을 오른손으로 옮겨쥔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옆으로 두 발 정도 물러난다. 우선 허리를 살짝 구부린 후 팔꿈치를 수평으로 유지하고는 컵을 둥글게 그리고 빠르게 돌린다. 다섯 번 정도 돌린 후 컵을 좌우로 기울여 앙금이 없는지 확인한 후 처음 받은 온수의 양만큼 물을 더 받는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후 만족스런 표정으로 슬리퍼를 끌며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엉덩이에 힘을 줘 의자를 당겨 책상에 배를 바짝 붙인 후 발에서 슬리퍼를 털어 낸다. 이제 집중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2.  

35도는 된다는 일본 소주를 쥐고 있던 컵에 3분의 1쯤 받아든다. 한모금을 들이키는데 목이 바로 삼키는 걸 거부해서 일단 입 안에 머금는다. 5초쯤 그러고 있다 한번에 삼킨다.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한 손으로 화닥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이마에 주름을 짠뜩 잡는다. 얼굴에 혈액이 돌고 광대뼈가 위치한 피부는 불그스룸해지며 입은 자꾸만 처진다. 중력에 끌려 내려가는 입술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마치 화가난 듯한 표정이다. 사람들이 말을 걸지만 그저 눈동자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할 뿐이다. 타이밍에 맞지 않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내 입꼬리를 늘어 뜨린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허공에 자욱을 남길 정도로 느리고 묵직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위아래로 주억거린다.


 

3.

화면에는 전역을 출발한 지하철이 이번 역을 향해 떠듬 떠듬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다. 발을 쭉쭉 뻗어 환승통로를 걷는다. 빽빽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틈을 찾아 운전하듯 차선을 갈아탄다. 오른쪽 어깨를 비틀어 빠르게 지나치기도 하고 속도를 냈다 줄였다 하며 최대한 타인의 몸에 닿지 않으며 걷는다. 왼쪽으로 코너를 돌자 계단이 보이고 무릎과 허벅지는 고정시킨 채 오직 발 만을 이용하여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다. 오른발이 계단 한 칸을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왼발이 받쳐주듯이 뒤따르는 식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왼발이 받쳐주어야 몸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때 손은 주머니를 뒤지며 동전의 수를 헤아린다. 계단을 내려서면 지하철을 타는 곳, 눈 앞에는 매점이 보이고 나는 그 매점의 냉장고로 직행해 층층이 쌓인 우유들 사이에서 커피우유를 골라낸다. 주인에게 동전 아홉 개를 건넨다. 빨대는 사양한다. 이미 지하철은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내리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들이 뒤엉킨 승강장에서 나는 우유를 뜯으며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비집고 들어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우유를 들이키기 시작한다.

 

 

4.

하루 내내 뭐에 눌린 듯 갑갑했던 명치가 저녁이 되자 일정한 박자로 꾹꾹 눌리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이내 온 몸으로 퍼져 나가고 살갗이 아플 정도로 추워졌다. 팔과 다리는 무력하게 자꾸 아래로 늘어진다. 주변의 소음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생각들은 사라지고 몸의 고통에만 예민해진 뇌는 빠르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 화장실로 뛰게 한다.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 검지를 그대로 목구멍에 넣는다. 시커먼 덩어리들이 툭툭 떨어진다. 재빠르게 왼손으로 물을 내리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더 깊숙히 넣는다. 몸을 거슬러 꾸덕꾸덕 올라 오는 음식물들. 남은 음식물들이 다 나오자 누런 색의 물들이 쏟아진다. 신맛 나는 이것들이 내 목을 태운다. 변기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눈 앞이 흐려지고 눈을 감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코 끝에는 콧물이 매달려 있다. 왜 몸 안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것들은 다 더러워지는가. 입 안에 고인 침을 뱉고는 물을 내렸다. 물을 타고 두어 번 휘감으며 사라지는 음식물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5.
병원에 일렬로 늘어 선 의자들 가운데에 늙은 남자가 앉아있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꼭 쥐고 있고 연신 떨어대는 왼손은 옆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 한에서 공중에 띄워 두고 있다. 혹은 방치하고 있다. 온 몸의 힘이 실린 지팡이가 순간 균형을 잃고 미끄려져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진다.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상반신을 한번 숙이고 그다음 조금 더 숙이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숙여서 지팡이를 손에 쥔다. 지팡이를 집고는 삼 초 정도 가만히 있더니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만에 상반신을 세운다. 이마가 간지러운지 덜덜 떨리는 왼손을 팔꿈치의 힘으로 이마를 향해 들어 올리다가 거의 닿았을쯤 다시 팔을 떨어트린다. 못마땅한 얼굴을 지어보이더니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꽉 쥐고는 엉덩이에 힘을 주어 의자에서 들어올린 후 오른발을 한걸음 앞으로 옮긴다. 그리고 왼발을 끌어 오른발과 나란하게 이동시킨다. 지팡이가 대리석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꾹 눌러찧으며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6.
내시경 앞에 앉아 있는 그의 뒷통수는 미세하게 계속해서 떨리고 있다. 이 떨림은 불규칙이고 무규칙적인 방향으로 정수리를 중심으로 반경 일이센치 이내에서 지속된다. 앞으로 굽은 어깨에 쭉 빠진 목. 그의 시선은 내시경 렌즈에 갇혀 있고 이 렌즈는 수술대 위의 뇌를 향해 있다. 그의 커다란 손은 1,2mm의 수술기구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뇌의 깊숙한 곳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고요한 수술실에서 가장 분주한 것은 수술 모자를 쓴 그의 머리통. 그의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머리는 점점 더 빠르게 떨리고 너무 빨라서 그것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7.  
손바닥이 크고 손가락이 길다. 늙은 남자는 그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젖히며 웃는다. 소리 내 웃는다. 울림이 좋은 성대로 아하하하하하하 웃는다. 문자 그대로 아하하하하하하. 말하는 상대를 만족시키는 시원한 웃음. 손가락들 사이로 임플란트를 한 새하얀 이들이 빛나고 있다. 이내 손을 치우고 입을 벌린 채 마저 하하하하 웃는다. 파문이 인듯 볼과 눈에 주름이 퍼진다. 점점 웃음소리가 잦아 들고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웃음을 마무리한다. 


 

8. 
지하철에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다. 남자는 오른손 검지에 붙여 놓은 밴드를 연신 만지작거린다. 살짝 떼어냈다 붙이고는 이번엔 상처가 보일 때까지 뜯어내더니 손가락으로 상처를 꾹 눌러 보고 다시 밴드를 붙인다. 여자가가 계속 말을 거는 와중에도 그는 밴드만 쳐다보며 떼어냈다 붙이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밴드 끄트머리의 때를 벗겨내고 있다. 여자가 대답을 원하는지 고개를 숙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더 숙여서 바라보면 그제야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는데, 밴드를 계속 만지작 거리는 채로다. 그렇게 한 번 쳐다봐주고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9.
어린 나는 항상 나만의 아지트를 꿈꿨다. 혼자 살고 싶었고,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떠올렸던 것이 철로 만든 사각형의 집이다. 비가 와도 끄떡없고 원하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집. 천장은 내 머리 크기 하나 정도 더 높고 너비는 누울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리고 삼단짜리 나무 진열대를 만들어서 내가 앉은 오른편에 둔다. 첫 칸에는 만화 위인전을, 짐이 많으면 안 되니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세종대왕> 정도만 두도록 하자. 그리고 오십 번은 더 읽었을 <수지는 멋쟁이>와 <작은 아씨들>도 챙긴다. 두 번째 칸에는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먹을 거리를 둔다. 통조림이나 과자, 빵, 음료수 등이다.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이 내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내가 앉은 왼편에는 아기 인형 재롱이와 곰인형, 개인형을 둔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적당한 크기로 창문을 만든다. 아빠의 장비를 빌려 철을 사각형으로 잘라내고 문구점에서 아크릴판을 사와 오초본드로 덮는다. 그럼 밖을 볼 수 있겠지. 필요하면 커튼을 달아 남에게 나를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중요한 건 머리 맡의 마이마이. 평소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을 녹음해 둔 테입들을 들을 거다. 촛불도 잔뜩 챙겨야 한다. 어두워지면 불을 켜야 하니까. 가끔 비가 오면 천장을 보고 누워 빗물이 철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혼자 있을 공간이어야 하고 몸을 구기지만 않을 정도면 된다. 이 철통집을 들고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그리고 혼자 있으면 좋겠다.  

 

 

10.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백발에 털코트를 단정하게 차려 입은 노인이 지나가는 남자를 붙잡는다. 키가 크고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는 몸을 숙여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은 뭐라고 말을 하더니 울상이 된 표정을 짓는다.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넨다. 노인의 표정이 밝아진다. 남자는 인사를 하고 급하게 이동한다.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로 조금 걷더니 발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으로 간다. 다른 노인들에 섞여 엘리베이터를 타 문 앞에 자리잡고는 B2, B1, 1, 2 숫자가 바뀌는 것을 뚫어지게 올려다 본다. 문이 열리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눈 앞에 보이는 편의점을 향한다. 작은 편의점 안을 서성거리며 몇 바퀴를 돈다. 팥빵을 집어 든다. 직원에게 만 원을 준다. 구천원의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돈을 넣고는 점원을 빤히 바라본다. 얼굴이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다. 노인은 자상하게 웃어 보인다. 밖으로 나와 버스 정류장을 찾는다. 담배를 피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묻는다. “상일동이 어디오.” 남자는 지하철이 빠를 거라고 답한다. “난 버스를 타고 싶은데.” 남자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때 노인의 발 밑으로 비둘기가 다가와 부리로 바닥을 찧는다. 노인이 천천히 무릎을 접어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비둘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면서 바라 본 비둘기의 눈에는 눈꼽이 잔뜩 꼈다. 노인은 빵봉지에서 빵을 꺼내 잘게 찢는다. 손바닥에 얹자 비둘기가 다가와 먹는다. 그리고 노인의 무릎으로 팔뚝으로 그리고 어깨로 올라 자리를 잡는다. 노인이 휘청거리며 일어서려 한다. 하지만 현기증이 나는지 다리가 꺾이고 바닥에 넘어진다. 비둘기가 놀라 날아간다. 젊은 남자가 다가와 부축한다. 그때 눈 앞에 버스 한 대가 온다. 남자의 팔을 뿌리치고 노인은 절룩거리며 그 버스로 다가간다. “이 버스는 종점이 어디지?” 기사가 상일동이라고 답한다. 낑낑대며 버스에 올라선 노인이 좌석에 앉는다. 기사는 요금을 내라고 한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기사에게 다가가 천원을 준다. 버스에는 세 명의 승객이 있다. 나란히 앉은 둘과 이어폰을 낀 채로 노인을 주시하는 교복입은 여학생. 노인은 다시 좌석으로 향하고 막 출발한 버스에 내팽겨치듯이 자리에 앉는다. 노인이 중얼거린다. “내 친구가 상일동에 살아.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야.” 계속 중얼거리던 노인의 얼굴에 햇살과 졸음이 번지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더 이상 누구도 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노인의 숙인 고개는 힘없이 출렁거린다. 그 앞에서 바라보던 비둘기가 노인의 머리를 찧는다. 노인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비둘기가 말한다. “자는 모양이 그게 뭔가. 나이값 좀 하게.” 비둘기는 콩 한 쪽을 노인의 무릎에 두고 간다. 햇빛 가득한 곳에 자리잡은 콩은 뿌리를 내려 노인의 무릎뼈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서서히 자라기 시작한다. 버스 천장을 뚫고 하늘을 향해 높이 높이 자란다. 버스 기사는 차를 세우고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커플도 손을 잡고 콩나무를 탄다. 교복 입은 학생이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가방을 벗고 뒤따라 오른다. 노인이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대체 상일동에는 언제 도착하는 건가!” 비둘기가 콩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비둘기의 눈썹이 새하얗다. 노인은 눈꼽 낀 비둘기의 눈을 오래도록 쳐다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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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순간들

일상 2015. 12. 2. 23:41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게 된다. 담긴 이야기는 올리지 못하는 사진들에 더 많지만 그리고 잊을 수도 없는 순간이지만, 이렇게 올리게 되는 사진들은 잊고 있던 촬영의 그 순간을 환기시키고 사진 그 자체로 새로운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더 각별하다. 아직은 더 많이 찍고 찍은 것을 더 자주 볼 때이다. 

 

2013년 상반기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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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 기억들

일상 2015. 11. 30. 00:31

2014년 4월 19일부터 2015년 2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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