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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09 그렇게 해야
  2. 2017.09.19 정오의 반지하
  3. 2017.09.19 불안의 기운
  4. 2017.06.22 누가 있지
  5. 2017.02.08 할머니의 장례식
  6. 2017.01.23 휴대폰의 메모들
  7. 2016.12.12 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2
  8. 2016.12.10 이상한 일이지만,
  9. 2016.10.30 달에 부는 바람
  10. 2016.09.22 <파도의 목소리> 연출 의도 1

그렇게 해야

인용 2017. 10. 9. 21:46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 그들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동물과 식물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평선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p399)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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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사장에 누워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 볕에 내 몸에 붙은 모래들이 피부를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더운 바람이 굴러와 한 줌의 모래를 귀 안에 뿌렸다. 귀 안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얼굴로 퍼지며 눈과 코를 간질였다. 문득 잠에서 깼다. 서서히 내 의식이 열리는 동안 그 소리는 멀어졌다. 새벽 늦게까지 내리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친 것 같다. 정오의 강한 볕이 내 얼굴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오에만 잠깐 허락되고 마는 볕이다. 고개를 돌리자 창틀을 오가는 쥐가 보인다. 어떻게 여기로 들어온 걸까. 이곳에 이사 온 후 가끔 꿈에서 들리던 버석거리던 소리는 너였을까. 쥐는 창틀에 낀 물에 젖은 꽁초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생명체의 모습은 귀엽다. 솟은 등뼈의 모양을 머릿속으로 한 번 따라 그려본다. 햇빛 속에서 등 위에 돋은 털들이 잘 보인다. 건강해 보이는 저 털이 금방이라도 여름의 나무처럼 높고 무성하게 자랄 것만 같다. 시선을 느꼈는지 쥐가 나를 돌아본다. 작고 새카만 눈. 눈 안이 환하다. 저 눈에 보이는 모습은 내 지각으로 보이는 풍경과 많이 다르겠지. 저 작은 머리통에도 내 머릿속에 든 것과 같은 모양의 뇌가 있다. 그 작은 뇌에 뻗은 수많은 핏줄들을 상상하니 귓속이 간지럽다. 무엇을 보았는지 모를 쥐는 다시 고개를 돌려 꽁초에 얼굴을 파묻는다. 몸에 해로운 건 먹지 마. 좋은 건 못 먹더라도. 나는 중얼거리며 꽁초를 치우려고 몸을 일으킨다. 그때 쥐의 머리통만 한 시시오의 발바닥이 나보다 앞질러 쥐를 친다. 고양이는 고양이구나. 시시오는 쥐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발톱을 세우지 않은 발로 쥐를 툭 치더니 그저 이리저리 뒤집으며 괴롭힌다. 쥐는 소리도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 바닥은 빠르게 마르고 있었다. 산책 중인 직장인들의 다리가 보인다. 거의 매일 이 다리들을 본다. 대부분 낯익고 간간이 낯선 이 다리들을. 사람들이 얇은 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물이 튀면서 반짝거린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려는 차에서 비켜서느라 똑같은 치마와 구두들의 무리가 내가 있는 창에 가까이 붙는다. 근처에서 보았던 치과의 직원들인 것 같다. 누군가 음료를 다 마신 플라스틱 통을 흔드는지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는 방충망을 열고 시시오의 뒤통수를 쓸기 시작한다. 그 뒤통수보다 큰 내 손길에 시시오의 눈이 감겼다 떴다 한다. 그리고 반대 손으로 시시오의 발을 툭 때린다. 그 틈을 타 쥐가 창밖으로 달아났다. 다시 방충망을 닫고 시시오의 뒷덜미를 들어 품안에 데려와 꼭 안았다. 짧고 낮은 고양이의 신음. 이내 밖에서 무언가가 푹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팽팽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차가 친 거겠지. 그리 생각해보아도 순간 온 몸에 모래알처럼 돋는 소름을 견딜 수가 없어 빠르게 커튼으로 빛을 가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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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기운

여행 2017. 9. 19. 11:21

베란다 문을 열면 남해가 펼쳐졌다. 바다는 어제 늦은 오후 숙소에 도착해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해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었다. 친구가 카메라를 집어 들더니 산책을 가자고 했다. 나는 어제 저녁으로 먹은 순두부찌개가 담긴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순두부, 애호박, 팽이버섯과 제조된 양념으로만 만들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밥을 감탄하며 먹은 건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의 한 끼 분량이 꼭 남아있었다. 그럼 아침식사를 하고 나설까, 하고 친구에게 물었다가 좀 더 배가 고프기를 기다리자고 내가 먼저 답했다. 알람 없이 일어나 바다를 보았고, 이제 산책을 한 후 아침식사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여행이지. 우린 모자를 단단히 쓰고 숙소를 나섰다. 펜션 주인네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깔끔한 펜션이었다. 편백나무로 깔았다는 바닥 덕분에 상쾌한 향이 나는 것하며 식탁, 침대, 진열장 같은 가구도 신경 써서 갖춘 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집보다 좋은 숙소에서 단 며칠이라도 묵는 게 아니겠는가. 내일도 기대되는 기분 좋은 상태로 땡볕 아래를 걸었다. 바다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었다. 좁은 흙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위들이 보였다. 바위까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먼 곳에 작고 새카만 섬이 보였는데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라고 친구가 일러줬다. 신발을 벗고 마른 발로 바위 위를 걸어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가 높이 칠 때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바지가 젖었다. 우리는 까불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젖은 발로 바위를 걸으니 표면에 쫀득하게 붙는 발바닥의 느낌이 좋았다. 뜨거운 볕에 발은 금방 말랐다. 한껏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던 바다의 표면도 그새 강한 볕에 조금 누그러진 듯 보였다. 모래밭이었다면 바다를 끼고 근처의 유명 해수욕장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저 너머까지 바위 길로만 돼 있어서 우리는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그만 돌아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베란다에서 본 큰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가자고 했다. 크고 푸르렀으며 누가 관리를 하는지 아주 단정한 나무였다.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던 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달력 사진처럼 완벽했다. 우리는 멋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며 기대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이제 배가 고프네.”라는 말이 나왔다. 다시 둘 중 누군가가 “나무랑 사진만 찍고 어서 순두부찌개 먹으러 가자.” 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발이 멈췄다. 순간 머릿속에서 화악하고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질렀다. “가스렌지 불 켜놨어!” “언제! 난 못 봤는데.” 친구가 말했고, “아닌가? 아니 켰는데 껐을지도 몰라. 아니야. 켜둔 것 같애.” 말은 오락가락했지만 사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찌개를 데우려고 가스 불을 켰다가 끄지 않았다는 걸. 일단 펜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이라 금방 지쳤다. 친구가 빠르게 앞서 달려갔다. 더 빨리 힘을 내서 달려야 하는데, 나는 두려운 마음에 도착을 피하고만 싶었다. 펜션에 연기가 나고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불이라도 붙었으면 어떡하나. 감당할 수 있을까. 사고라는 건 이렇게 순식간에 벌어진다는 걸 실감했다. 몇 분을 달려 펜션 앞에 도착했다.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화난 얼굴의 펜션 관계자들도 없었다. 뛰어오느라 헐떡거리는 숨과 겁이 나 벌렁거리는 심장소리가 온 몸을 두드렸다. 빠르게 숙소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집 안은 희끗한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차 있었다. “불 켜 있었어?” 친구는 묵묵히 냄비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응.” 난 쭈뼛거림과 신속함이 뒤섞인 걸음으로 다가가 싱크대를 내려다 봤다. 국은 완전히 졸아 냄비바닥에 시커멓게 덩어리져 있었다. 그때 주인이 문을 세게 두드렸다. “음식 태웠죠?” 죄송하다고, 음식이 좀 탔다고 했다. 주인은 손으로 코앞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거 다 편백나무라 냄새 배이면 안 된다구요!” 얼굴을 찡그렸지만 길게 말하지는 않고 떠났다. 혹시 주인이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가 집에 없었다면, 아찔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어떻게 불을 켜둔 걸 까맣게 잊을 수 있는지, 그런데 또 어떻게 순식간에 그 사실이 빠르게 환기가 됐는지. 난 또 이런 사실들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괜찮다며, 다행이라며 냄비 바닥이나 열심히 닦자고 했다. 국을 데울 때 물 한 컵만 넣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이 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머릿속에서 가스렌지에 불이 붙을 때 나는 화악 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햇반을 데워 참치 한 캔과 밥을 먹었다. 목이 말라 자꾸 물을 마셨다. 결국 밥에 물을 부어 말아 먹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안심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느낀 평온함은 싹 사라졌지만, 그 평온함보다 이 안심하는 감정이 더 달콤해서 냄비 닦는 일은 제쳐두고 침대에 누워 그만 낮잠에 들었다. 꿈에 결국 가보지 못 한 아름다운 나무가 보였다. 나무를 올려다보는데 내 쪽으로 커다란 파도가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곧 온 몸이 물에 젖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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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지

카테고리 없음 2017. 6. 22. 01:18

할머니 돌아가신 후. 그녀의 방.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누가 있어?
누가 있지. 책상과 의자가.
책상과 의자를 무엇 아니고 누구인 것처럼 실리는 말했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명실」p104, 『아무도 아닌』,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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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 재택 알바를 했다. 마감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야 일을 끝냈다.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새벽 늦게 잠을 자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위에 눌리기도 한다. 심장이 너무 쿵쿵 거려서 잠에 잘 들 수 있을까 싶었고, 이 걱정은 내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망상으로 이어졌다. 집이 좀 지저분해서 이대로 죽으면 안되는데, 일어나서 치우고 자야하나, 그렇지만 기력이 없다, 그러다 훅 잠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잠든 시간은 없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마취처럼, 그리고 전화 진동에 놀라 깼다. 그렇게 받은 전화가 할머니의 부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평소처럼 잠들었다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 늘 그랬듯이 어떤 꿈이라도 꾸었으면 나는 그 꿈을 애도의 구실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했던 내 망상이 부끄러웠다. 

# 아빠의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왔다고 했다. 왠지 느낌이 안좋아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주 그랬듯이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주무실 시간이려니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출근을 하고서도 작업 현장으로는 나가지 않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엄마도 어지러운 꿈을 꿨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자꾸 뭘 줬다가 받았다가를 반복하는 꿈을 꾸다 너무 일찍 깼고, 피곤했는데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는 높은 벼랑에서 한 바위가 흔들흔들 거리다가 쾅 떨어졌다고 했었다. 꿈에 그걸 보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려나 하고 느꼈단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이의 생과 사를 감지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꿈이란 뭘까.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이 갑작스럽다고는 하지만 가족인 우리들 모두 마음 깊이에는 불안을 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 부끄럽고 유치하다고 느끼면서도 <죽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몇 페이지 읽었는데 다행히도 몇 문구들이 위로가 됐다. “죽음을 무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의지”, “존재했음과 살았음의 신비로 통하는 문을 열어두려는.” “존재했던 사람은 이제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을 살았다는 신비롭고도 극도한 난해한 사실”

# 장례식장에서 나도 모르게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을까, 창 밖의 풍경이 보고 싶었던 거였을까. 추측으로 말하는 건 나는 그 행위를 할 뿐 내가 왜 창문 밖을 보는 지는 알 수 없었다는 거다. 그건 내 습관도 아니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창문 밖을 바라보는 행위가 이해되는 것이었다. 행위 그 자체로 이해되는 느낌.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창문 밖을 보는 행위를 지금까지는 대수롭게 여겼다면 이제부터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은. 의도가 아닌 의미. 행위 그 자체의 의미. 여전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창문 밖을 보는 행위가 이제는 내게 특별해졌다는 건 분명하다. 먼 곳에 뿌연 산등성이가 보이고, 앞에는 초록빛이라고는 없는 누런 밭이 있었다. 영정 사진 앞에 있다가도 자주 창문 앞으로 가곤 했다. 

# 할머니의 입관을 지켜보았다. 곱게 화장한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이마의 주름이었다. 열심히 얼굴을 마사지했다는 장의사도 펼 수는 없었던 그 주름. 그 상황에서 나는 내가 저 주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의 주름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까지 편집본에 넣을지 말지 고민했던 ‘컷’으로서의 그 주름 장면이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왜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인지. 나는 살아생전의 그 주름과 내 눈앞의 주름을 번갈아가며 머리에 떠올렸다. 그 주름 밑으로 눈을 조금만 내리면 멍이 든 상처가 보였다. 한번 본 후 두 번은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얼굴이 참 평안해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장의사가 할머니의 표정을 평안하게 만드려 얼마나 노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슬프다. 

# 내가 참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촬영하며 함께 보냈던 1박 2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할머니를 관찰했던 그 이틀이 내 인생에서 소중한 몇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 할머니가 맨 손으로 풀을 뽑던 그 땅에 할머니가 묻힌다. 잡초를 잡아당기다가 그 뿌리가 너무 깊어 다시 흙으로 덮고 말았던 그 자리. 포크레인의 삽질에 그 잡초의 뿌리도 뽑혀나갔을 것이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꿈을 꾸었다. 쭈글거리고 거친 할머니의 손이 젊은 사람의 것처럼 재생되는 장면이었다. 꿈에서 깬 날 전화로 들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힘있게 들렸다. 할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그의 마음 한켠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묻힌 할머니의 무덤을 보며 문득 스쳐지나갔던 그 꿈의 이미지. 

# 할머니의 집. 방에 들어서자 창문에 걸린 커튼이 보였다. 예전엔 몰랐는데 연꽃 무늬였다. “엄마는 왜 다 쓰지 못할 휴지를 저렇게 알뜰히도 모았을꼬.” 고모가 말했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걸두고 ‘왜’라고 묻거나 할머니를 질책하는 게 싫었다. 유별나게 아끼고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자신을 아끼거나 가꿀 줄을 몰랐던 사람. 쓰던 고무줄들을 손목에 끼고 다니면 엄마는 “니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가방을 무겁게 넣어 다니는 걸 보고 엄마가 “니는 니 할머니랑 똑같다”고 했다. 고모들을 배웅한다고 할머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섰다가 울음이 터졌다. 이른 새벽 할머니가 걸어갔을 길 어딘가를 돌아보았다. 춥진 않으셨을까. 방 한켠에 예쁘게 말린 할머니의 허리 보호대를 유품으로 챙겼다. 당분간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를 자주 생각할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느낌이셨을까를 더 많이 생각하고 오래 슬플 것 같다. 

# 장례식장에서 어떤 분이 할머니를 두고 “참 재밌고 유머러스한 분이셨는데.”라고 했다. 이 말이 마음의 어떤 부분을 툭 건드리더니 내 기억에서 할머니의 그랬던 모습들이 갑자기 와르르 쏟아졌다. 왜 나는 할머니를 마냥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치부했을까. 할머니가 겪었을 역경과 고생에 대한 상상에 오히려 내가 더 짓눌렸던 건 아닌지. 할머니 입관할 때 모두들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편히 쉬세요.”라길래 나도 덩달아 고생 많으셨다고 했는데, 할머니 활짝 웃는 모습을 좀 더 떠올릴 것을, 그래서 참 멋지게 잘 사셨다고 혹은 살아내셨다고 말씀드릴 걸 좀 더 밝은 이야기 속삭여 드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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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메모들

여행 2017. 1. 23. 13:39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슬러 중국까지 되돌아가는 메모)

-사방을 둘러싼 산들. 밤이면 산들이 마을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산등성이에서 빠르게 솟아오르는 달.

-멀리서만 보던 라다크의 독특한 산을 오늘은 차를 타고 달리며 가까이서 보았다. 손을 뻗으면 곧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멀리서 볼 땐 그저 아름답다고만 느꼈는데 곁에서 보고 있자니 이건 오를 수 없는 산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동키가 풀을 뜯는 모습은 하루종일이라도 보겠다.

-이렇게 세상의 멀리까지 오니까 세상은 쉽게 멸망하지 않을 거라는 묘한 위안이 생긴다. 그 위안이 희망 때문인지 절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뚜르뚝 마을. 벌이 많은 곳. 꽃이 많은 곳. 열매가 많이 열리는 곳. 지천에 떠있는 살구들.

-나무껍질같은 산과 산등성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 이 아름다운 롱테이크를 눈을 깜박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지켜보았다.  

-도로 곳곳에 비석처럼 세워진 표지들: Don't worry, Be happy. Never give up. 달라이 라마의 말씀. 어딘가에선 흔해진 말이 다른 어딘가에서는 가장 절실한 말이다.

-킬롱으로 가는 로컬버스 안. 내 왼편엔 젊은 여자와 그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있다. 아마도 모녀. 아이는 작은 손으로 과자를 꽉 쥐고 있다. 내가 쳐다보니 행여 과자를 뺏을까 싶어 눈을 살짝 흘기고는 등을 돌린다. 아이는 먹은 과자를 금새 토한다. 작은 머리통. 여자는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토를 받는다. 오백 원짜리 동전 만큼의 토사물. 비포장 도로에 버스가 넘어질 듯이 비틀거린다. 어느새 여자와 아이는 잠에 들었다. 아이를 품에 앉은 채로 여자는 한 손에 토사물을 감싼 수건을, 또 한 손으로는 앞좌석을 꽉 쥐고 있다. 운전 기사가 핸들을 꺾을 때마다 내 몸은 좌석 밖으로 튕겨나가거나 모녀에게도 쏠린다. 그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엉덩이에 힘을 준다. 힘이 풀렸는지 이제 여자의 검지 손가락 만이 손잡이에 걸린 채 버티고 있다. 둘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는다. 아이가 자꾸 여자의 품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여자. 까맣고 긴 머리를 땋았고 작고 마른 몸. 안경을 끼고 있다.  

-창 밖으로 개가 짖는 소리. 여행하는 동안 보았던 끔찍한 기사들. 터키, 방글라데시, 이스라엘의 테러들. 터키의 쿠데타. 이게 모두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벌어졌다. 

-윤회를 끊기 위해, 그래서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바라나시에 죽으러 간다는 노인들. 이 말을 듣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파키스탄와 인도의 국경인 와가보더. 인도로 넘어가자 입국장으로 데려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거리를 굳이 버스로 이동시켜주니 편안하긴 한데 왠지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버스 안에서 광광 울리는 음악도 시끄럽다. 그래도 흥이 나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그립던 문화.

-여행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루하루 즐겁고 싶어서. 보람과는 상관 없는 것.

-중국에서 자꾸 중국 아닌 것을 찾고 있다. 우루무치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총을 든 군인들을 보았다. 몇 년 전 위구르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테러의 끔찍함 보다는 중국의 폭력적인 중화 사상에 더 치를 떨게 된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위구르인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이다. 도시의 끝에 와서야 만났다. 이들은 도시의 변두리으로, 더 서쪽 지역으로 떠밀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시 반,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2,400km 떨어진 이곳은 어쨌든 중국의 땅. 그래서 베이징의 표준시각을 따르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체시계는 그렇지가 못하다.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어디서 만나도 좋은 풍경.

-둔황의 막고굴을 만들기 위해 당시 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천년 후를 생각해 투자했다. 아 이거 정말 멋지잖아.   

-중요한 건 내가 여행지에서 무엇을 느끼느냐다. 나의 느낌. 그리고 그걸로 쉽게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

-난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해발 삼천 미터의 샤허에 오고 고산병 증상에 시달렸다. 두통이 멈추질 않았고 그래서 평소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없었다. 입맛이 없고 무기력했다.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마냥 누워 있을 수는 없겠어서 마을을 천천히 산책했다. 기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봤을 때 두 시간이 지난 걸 보고 놀랐다. 깊은 주름이 박인 산들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고, 지붕 없는 집들은 높은 데서 보면 마치 납작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이 집들이 받들고 있는 것은 라브랑 사원. 티벳 불교의 3대 사원 중 하나가 이 샤허에 있다. 야크 버터를 들고 사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법당에선 24시간 내내 야크버터를 태운다. 처음 법당을 들어섰을 때 압도당한 것은 시각도 청각도 아닌 이 야크버터 냄새에 놀란 후각이었다. 코끝에서 야크 버터 냄새가 가실 즈음 고산병도 나았다.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닌, 그래서 가장 평온할 땅들이 창밖으로 한참이나 펼쳐진다. 

-중국에서의 첫 기차. 인도에서의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밤기차를 타고 침대에서 자다보면 새벽에 문득 깨는 일이 있다. 달리던 기차가 잠시 멈춘 탓이다. 선로가 하나로 바뀌는 곳에서 반대편의 기차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잠시 고요한 사이 들리는 잠의 소리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머-언 곳에서 경적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눈을 감고 있으면 안개를 뚫고 달려오는 피곤한 얼굴의 기차가 보인다. 이내 기차는 레일을 누르며 내 옆을 지나가고 그 진동의 여운이 내 몸까지 전해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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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티트 포트에 갔다가 알리라는 가이드를 만났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카페트가 깔린 방에 앉아 짜이를 두 잔 마시고 막 따온 체리도 잔뜩 먹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었다. 학교에서 여동생이 돌아왔다. 요람에서 잠자던 아기가 그녀의 딸이었다. 남편은 돈을 벌러 외국으로 갔다고 했다. 아기는 삼촌인 알리가 아빠인 줄 안단다. 집에서 나와 수로길을 걸었다. 훈자의 수로는 유명하다. 빙하에서 녹은 물을 마을까지 끌어다 쓰는 거다. 미네랄이 많아 회색빛이다. 그가 동네 아이에게 컵을 얻어 수로에서 물을 떠서는 내게 권했다. 시원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알리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모르겠다고, 그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해외에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도와줄 수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건 잘 모른다고, 나는 답했다. 꼭 오고 싶던 아름다운 훈자, 설산과 포플라 나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주는 곳, 그리고 이곳에 사는 한 청년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는 먼훗날 자신의 집을 지을 터를 보여주었다. 사과와 체리나무가 많은 땅이었다. 물이 흐르는 아랫마을과 설산이 잘 보였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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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를 계속 읽는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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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정신없이 책에 몰입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의 느낌이 좋다.

-뭘 잘못 먹었는지 체했다.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하고는 다음 날에도 내내 잤다. 꿈에서 엄마와 이글네스트에 다녀왔다. 꿈에서 자꾸 목이 말랐다.

-S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에 전혀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새로운 여행자와 나란히 혹은 마주 앉아 몇 시간씩 대화를, 그것도 즐겁게, 목소리에 힘이 빠지지도 않고 한다. 놀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잘 노는 사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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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건강하게만 살고 싶은데 슬프고 고통스럽기도 할 거라는 걸 감안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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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질듯 슬플 것 같다. “어머니가 죽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했던 정릉동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눈화장을 하고 반바지를 입은 파키스탄 청년을 만났다. 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물론 많지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남에게 뭐라하지 않으니 당신도 나에게 뭐라하지 말라.”고 한단다. 그는 이 나라의 옛 것을 존중하지만 그래도 자유가 좋다고 했다. 중국어, 페르시안어,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페르시안어는 유투브를 보고 배웠단다.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곧 중국으로 가서 공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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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부터 자전거로 여행 중인 또래의 홍콩 청년을 만났다.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 영어가 유창해서 이 사람과 더 깊이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다. 저녁 여덟 시가 되기 전에는 길기트에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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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훈자왕이 사는 궁전엘 갔다. 궁전이라고 부르지만 대저택에 가까웠다. 이곳 정원의 체리맛은 여지껏 먹어본 것들 중 최고였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경호원이 나서서 체리를 따주었다. 그리고 파라솔 아래에서 같이 수다를 떨었다. 우린 왕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왕이 자신의 창 너머로 놀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깔깔거렸다. 허술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느슨함이 좋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일하다가 올해 훈자로 배치된 이 경호원은 “이곳에서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일이 없다”고 했다. 평화롭다 못해 심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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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 체리나무를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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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포시 베이스 캠프 트래킹을 하는 날. 새벽 네 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네 시 오분에 동행이 방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쿠리와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쿠리는 스위스 사람이다. 셋이서 같이 쓰는 방에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짐들을 늘어 놓았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지 않는다. 입던 바지, 그 앞에 신던 양말, 그 옆에 티셔츠, 그 앞에 먹던 빵과 잼. 하루하루 차곡차곡 짐들이 진열되고 쌓여갔다. 미소를 지은 채 자곤 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라고 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는데 물어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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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포시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 남자 동행들의 걸음에 뒤처지지 않아야 했다. 숨이 심장까지 전달되도록 숨을 끝까지 들이쉬고 길게 내뱉기를 반복했다.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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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에 한 사람씩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만났다. 난간이 없고 오른편엔 낭떠러지였다. 이 길의 건너편에서 소 세마리가 줄지어 걸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못 지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가이드는 주저하지 않고 길로 진입했다. 사람이 보이자 소들은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방향을 틀어 도망치다가 좁은 길에 두 마리가 지나가려고 우왕좌왕 하더니 한 마리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소들이 놀라서 움찔하던 순간, 근육질의 몸이 펄떡거리며 방향을 트는 모습, 한 마리가 또 한 마리를 추월해서 달리려다가 좁은 길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던 순간, 짧은 순간 그걸 보아야했던 나는 비명을 질렀고 순간 눈앞이 하얘져서 차마 아래를 보지 못했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우리는 소들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굴러 떨어져서 아마도 저 먼 아래에 죽은 채로 있을 줄 알았던 소는, 그 소는, 몇 미터 아래의 절벽에 붙은 바위 위에서 우리를 향해 큰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걸음만 걸어나가면 바로 추락할, 딱 소 한 마리가 서 있을 만한 크기의 바위 위에서 말이다. “유아 럭키!”라며 가이드가 얄밉게 소리쳤다.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소는 정말 운이 좋았지만 거기서 소가 올라올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냐며, 구해줄 수 없느냐고 우린 걱정했고, 가이드는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하며 주인이 와서 구해줄 거라고 태연히 말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두 마리의 소가 우리 주위를 서성였다. 아아, 나는 괴로웠다. 사람이라고 저 무거운 소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밧줄로? 소가 제 몸에 밧줄을 묶을 수 있을까, 그냥 두면 결국 굶어죽는 거 아닌가? 가이드는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못해 우리도 발길을 돌려 따라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움머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세 마리의 소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당황해하는 우리를 보고 가이드는 “히 이즈 스트롱, 히 이즈 로컬 카우” 하며 웃었다. 네 발로 기어오른 것이다. 아아 네 발의 힘, 네 발의 힘, 저 근육질 몸의 힘. 너무너무 놀라웠다. 기어오르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게 몹시 아쉬웠다. 아아, 로컬의 힘이란... 그리고 소들이 겁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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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끝난다. 이제 훈자를 떠나 이슬라마바드로 간다. 이른 새벽인데 쿠리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동행할 친구가 손을 흔드는 쿠리의 사진을 찍었는데 푸른빛의 공기와 푸른 옷과 모자를 쓴 쿠리의 모습이 참 좋았다. 친구는 “언니 나 내년에 여기 꼭 다시 올 거예요.”라고 했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 새벽 네 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낮에는 나도 친구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잤다. 이슬라마바드도 라호르도 숨막히게 더울 거라고 다들 겁을 주었다. 기사 한 명이 스무 시간 내내 운전을 했다. 처음에는 노동권이 안 지켜지네 어쩌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저 그가 지치지 않기만을 응원했다. 무사히 도착하게 해달라고.. 그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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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동안 대여섯 번의 검문을 받았다. 어느 검문소에서는 기사가 총을 받아왔다. 장총을 운전석 옆에 툭 하고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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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는 길에 세계 최고봉의 설산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설산이 너무 좋다.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릴 때는 버스가 넘어질 듯이 흔들거리고 그 버스보다 내 몸이 더 흔들린다. 흔들리는 대로 몸을 편하게 둔다. 비가 내리면서 더위가 좀 가셨다. 해 질 녘 버스는 강을 오른쪽에 끼고 절벽 위를 달린다. 갑자기 선명해지던 비 냄새, 비에 젖은 흙 냄새, 기름 냄새, 사람들의 땀 냄새, 절벽 아래의 강물 냄새.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익숙하고도 낯선 이 냄새를 오래 기억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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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에서는 지인의 집에 묵었다. 외곽에 위치한 베리아 타운이라는 곳이다. 여기는 테러의 위협이 없다고 했다. 전기가 끊기는 일도 없단다. 이 타운에 들어갈 때는 신분 확인을 받았다. 이 부유한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담이 느껴졌다. 밖은 거의 50도에 육박하는 더위로 끓는데 지인 덕분에 우리는 시원하게 이틀 밤을 잤다. 뜨거운 물로 사워도 했다. 지인은 삼계탕을 해주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베리아 타운을 구경했다. 타운 안에는 주거지 건물들뿐 아니라 학교, 영화관, 쇼핑 센터, 카페 등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마련돼 있다. 거주민들 대부분이 타운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과 거리는 깨끗하고 세련됐다. 아이스크림 집에서 만난 아이들은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왕이면 막 잡은 닭을 사자고 해서 타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늦은 새벽에 도착해서 어제는 보지 못했던 풍경, 타운의 입구를 지나자 어지러운 전깃줄과 낡은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포장 안 된 거리는 더운 모래가 날렸다. 그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차를 향해 다가왔다. 아이들은 차를 쫓아 달려왔고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닭집 주인은 빗자루로 아이들을 쫓았다. 사실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두려웠다. 이렇게 선명한 부와 가난의 대비는 낯설다. 하나의 프레임에 들어오는 이 풍경은 거짓말 같다. 그래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거잖아. 놀라는 내가 당황스럽다. 생닭을 잡는 것을 보았다. 닭장 안의 닭들은 자신들 앞에서 하나의 닭의 목이 비틀리고 털이 뽑히고 토막이 나는 것을 쳐다보았다. 죽어가는 닭을 볼 수 없어서 그걸 보고 있는 닭장의 닭들만 바라보았다. 닭값을 계산하는데 직원이 피 묻은 손으로 거스름돈을 건넸다. 내가 잠시 망설이자 지인이 대신 받았다. 건네받은 봉지가 묵직했다. 마늘을 아낌없이 넣어 만든 삼계탕은 맛있었다. 사실, 너무너무 맛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씻고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었다. 근처에 큰 마트가 있다고 해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갔다. 이렇게 크고 밝고 물건들과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이상하게 점점 기운이 빠졌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것 같은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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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에 물렸다. 훈자에서 물린 것 같다. 빈대가 배를 좋아한다더니 정말 뱃살 위를 잔뜩 물었네. 진짜 너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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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로 간다.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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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는 이슬라마바드보다 더 덥다. 새벽 내내 잠의 근처를 서성이면서 이마에서 굵은 땀이 귀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내 감각이 흐르는 땀들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땀의 궤적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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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걷다가 렌즈가 빠지는 꿈을 꾼다.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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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 박물관을 다녀왔다 폭탄 테러와 명예 살인으로‘만’ 알려진 파키스탄.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철학자도 예술가도 죄다 서양이 익숙하다. 문득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를 더 알고 싶으니까. 이해하고 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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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의 힘을 믿고, 그 힘으로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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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적이 있었고 어느 시절이 지나고부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럼에도 내 마음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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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는 챠만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 두 컵을 내리 퍼먹었다.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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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지만,

인용 2016. 12. 10. 13:46

“교수대까지는 40야드 정도가 남았다. 나는 바로 앞에 걸어가는 죄수의 갈색 등을 지켜보았다. 그는 팔이 묶여 있어 어색하긴 했으나 저벅저벅 잘 걸었다. 절대 무릎을 펴지 않고 까닥까닥 걷는 인도인 특유의 걸음이었다. 걸을 때마다 근육이 매끈하게 제자리로 미끄러졌고, 두피에 바싹 붙어 있는 짧은 머리털이 아래위로 춤을 추었고, 젖은 자갈땅엔 맨발 자국이 절로 생겨나듯 찍혔다. 그리고 한 번, 어깨를 한쪽씩 붙든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는 도중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살짝 옆으로 비켜갔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ㅡ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을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ㅡ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조지 오웰, ‘교수형’,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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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이승준 감독의 <달에 부는 바람>에 있다.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예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영화이고 무엇보다 예지의 엄마가 예지와 소통하려는 노력에 관한 영화다. 
영화가 끝에 다다를 즈음 예지네 가족이 바다에 가는 씬이 나온다. 예지는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한다. 튜브 위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따가운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예지가 짓던 표정,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 그것은 ‘지었다’고 말할 수 없다. 보여주기 위한 표정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얼굴이었기에. 나는 감히 그 얼굴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내 안의 어떤 갈망을 (역설적이게도 보여주는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담은 그 한 장면을 통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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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장애를 타자화하는 시선일까. 일단은 비장애의 한계와 장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를 비장애인이라 규정했을 때의 한계와 내가 가진 장애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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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다큐라면 꼭 챙겨보려 한다. <파도의 소리>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특히 단순하지만 특별해보이는 카메라의 이동이 감동적인데, 인터뷰만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명을(인터뷰이+인터뷰이, 인터뷰이+인터뷰어) 사선에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각 인물들의 정면으로 옮겨가고 그때부터는 두 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이다. 카메라가 사선에서 정면으로 이동하는 그 편집점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사건처럼 느껴지는데, 연출 의도를 참고해보자면 어색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평상시 대화하는 것처럼(카메라가 그들에게서 잊혀질 즈음) 친밀감이 감돌 때에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에 좀 졸다가 깨었는데 스크린에서는 나이든 여자분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으로 죽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린 둘 다 역사소설을 좋아했는데 늘 일본 역사소설만 보던 자신에게 중국와 한국의 역사소설도 즐겨 읽던 그 친구가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고, 그 후로 그런 소설도 재밌게 읽게 되었다고 한다. 살면서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말한다. 졸음으로 말랑해진 내 온몸을 따뜻하게 주무르던 이야기.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2013 
-연출: 하마구치 류스케, 사카이 고
-연출의도:

<파도의 목소리>는 2011년에 만들어진 <파도의 소리>에 이어지는 작품이다이 영화는 <파도의 소리>와 같은 접근법으로 진행한동일본 대지진과 이후 이어진 쓰나미 사태 생존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파도의 소리>가 재난 사태 이후 6개월간 이와테 현에서 후쿠시마 현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파도의 목소리>는 후쿠시마 현 신치마치와 미야기 현 게센누마시의 두 지역을 일 년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을 선정할 때, ‘그들이 얼마나 그 재난으로부터 참혹한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그들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기준으로 두고인터뷰이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우리가 만난 생존자들은 자신들보다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자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지진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집이 무너졌거나 가족사랑하는 사람들을 파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 재난의 핵심에서 멀어질수록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적어진다는 것이다우리의 인터뷰이들도 역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그들은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재앙의 진짜 핵심을 담고 싶다면 우리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들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목소리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21명의 사람들은 재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을 하는 동안그들의 말투 또한 평상시에 대화를 나누는 말투로 변해간다즉 우리는 희생자의 목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가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영화의 목소리들도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파도의 목소리>를 만들면서 우리의 소망은 100년 후에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었던, 파도에 휩쓸려간 이들의 목소리와 이어주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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