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4.02.24 타닥, 타닥,
  2. 2014.02.16 불안의 꿈
  3. 2014.01.22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
  4. 2013.11.19 절빛
  5. 2013.10.12 떠돌고 싶다
  6. 2013.09.15 외투
  7. 2013.08.18 불투명하지 않은 세계였던 것이다.
  8. 2013.08.15 응. 엄마.
  9. 2013.06.01 여지 1
  10. 2013.05.12 죽고 싶은 요일

타닥, 타닥,

일상 2014. 2. 24. 02:58

저녁밥을 먹고 볼만한 티비 프로그램도 다 보고 나면 엄마와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엄마는 옛날 살던 얘기도 해주고 누구 욕도 하고 대개는 사람들 걱정을 하였다. 한동안의 수다가 끝나고 나면 어느새 긴 침묵, 고요해진 방 안, 그리고 소리 하나가 들린다. 벽을 보고 누운 엄마는 꼭 손가락으로 벽을 퉁겼다. 손등을 벽 쪽으로 향한 상태에서 약지 그리고 중지 순으로 반복해서 두들기는 소리. 타닥, 타닥, 타닥. 등을 보이고 누운 엄마 뒤에 나도 같은 모양으로 누워선 간헐적인 그 소리를 듣다 잠들기도 하고 엄마 등을 긁어주기도 했다. 멍하니 옆으로 누워 있다 보면 그 모습이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 엄만 무슨 생각을 했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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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꿈

일상 2014. 2. 16. 22:06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조금 듣다가 바닥에 누웠다. 게스트인 소설가 김연수의 목소리가 막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인데 왠지 익숙했다. 바닥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시린 계절이다. 자고 일어나면 손끝 발끝까지 데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숲속이었다. 거기에 야외 스튜디오가 있었고 그 자리에 신형철과 김연수가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음량을 조절해주었다. 작지만 복잡한 기계에 열중하는 사이, 두 사람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이제 목소리들의 음량은 일정했고 나는 둘이 있던 자리에 남은 소형 녹음기를 보았다. 예뻐보여 그걸 챙겼다. 숲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니 숲과는 완전히 분리된 듯한 공간이 펼쳐졌고 그곳은 운동장이었다. 사람들이 열을 지어 앉아 방송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디쯤에 앉아 방송에 필요할 만한 장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판자로 지붕 같은 걸 만들었다. 숲속 나무들만으로는 비를 완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 그런 걱정에 나무판자들을 잇고 못질을 했다. 김연수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던 걸 그만두고 다시 숲으로 걸어갔다. 스튜디오에는 피디와 작가들이 있었다. 녹음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디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녹음기를 어쨌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턱만 보였고 그 턱에 눌릴 것만 같아서 사태를 잘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알게된 건 나에게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꿈에서 나는 벙어리였다. 찌를 것 같은 턱을 밀어내면 낼수록 오히려 내가 점점 작아졌다. 점점 눈앞의 화면이 닫히고, 아주 천천히 의식이 열렸다. 김연수가 낭독을 하고 있었다. 뭉개진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손을 흔들고 웃는 그 단순한 동작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손을 흔들고 웃는다는 그 느낌이 좋아 몇 번 되뇌어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웅얼거렸다. 온기가 돌아 말랑해진 몸을 움직여 옆으로 누우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마저 조금 더 잤다. 후에 찾아보니 김연수가 낭독했던 책의 이름은 <불안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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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밝히려는 노력조차 부담스러워서 제껴두기만 하던 내 죄책감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차피 알 수도 없거니와,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는 망령때문에 괴로웠던 건, 내가 받은 만큼 베풀지 않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한 시절에 그리고 여전히, 어떤 공간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게 많다. 그리고 그 받은 것들이 정말 소중하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당위들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내가 느끼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피하게 만든다. 해야만 한다고 믿는 걸 하지 않아서 느끼는 죄책감과, 내가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해서 느끼는 죄책감은 다르다. 고통을 고충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마음이 좀 밝아졌던 것만큼이나 괜찮은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마음이 편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어쨌거나 내가 나에게 늘 바라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은 행동하는 것이다.

2.

 

불편한 신발을 바꾸는 것만으로 삶이 훨씬 나아진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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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빛

일상 2013. 11.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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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고 싶다

일상 2013. 10. 12. 19:23

In Morocco - 2013 from Vincent Urban on Vimeo.

 

쏟아지는 별 아래 눕고 싶다

몰아치는 파도 앞에 서고 싶다

 

다시, 낯선 곳에 가고 싶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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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일상 2013. 9. 15. 04:19


카키색에다가 검은색을 많이 섞어 색이 좀 점잖았고 표면은 벨벳 같은 것이어서 문지르는 대로 결이 쓸렸다. 안감은 두툼한 흰 털인데 그게 무슨 털인지는 한 번도 알 생각을 못 하였다. 그 흰 털이 목 위까지 올라와 있어서 자크를 끼워 목 끝까지 올리면 목도리를 한 것처럼 따뜻했다. 내가 입으면 기장이 엉덩이를 조금 못 덮을 정도까지 내려와서 아무데서나 엎드려 자도 맨 살 보일 염려는 없는 옷이었다. 가장 좋은 건 주머니가 아주 깊다는 것인데 작정하고 주머니를 뒤지면 잊고 있던 물건도 나오고 그랬다. 휴대폰을 넣고 카드 지갑에 또 그 위에다 손을 얹어도 넉넉한데 그 깊숙한 아래에 집 열쇠가 이미 들어 가 있고 심지어 받고 잊은 명함도 주머니 벽에 오래 붙어 있기도 하는 식이었다. 한겨울에 입고 다니면 바람도 못 뚫고 둘어와서 오래 걷다 실내로 들어가 자크를 내리면 옷 안에서 시큼한 냄새와 함께 따뜻한 공기와 훅 올라왔다. 옆으로 기다란 흰 종이백 안에 들려 내 손에 쥐어진 옷. 다음 날 풋내 나는 새 옷을 목 끝까지 올려 입고 호수에서 돌도 던지고 난로가 있는 식당 안에서 전도 먹었다. 겨울엔 줄곧 이 옷만 입었다.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겨울 책상에 앉아 무얼 해야 할 때, 내복 위에다 그 외투를 입고 있으면 참말로 따뜻했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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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진전없이 항상 달고 다니는 물음.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신기하다.

이 구절을 읽으며 물음의 한귀퉁이는 조금 허물어졌다.

 

*

 

무도(舞蹈)병에 걸린 듯 발작적으로 움직이던 그 승강기 안의 아녜스를 상기해 보자. 사이버네틱스 분야 전문가면서도, 그녀는 그 기계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전화기 옆에 놓인 소형 컴퓨터에서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매일 마주치는 그 모든 물건들의 작동 원리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괴상하고 불투명하기만 했다.

 

그런 반면 괴테는,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 일상의 안락을 허용해 주기는 하되 교양인이라면 주변 집기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짧고 독특한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았다. 괴테는 자신의 저택이 무엇으로 어떻게 건축되었으며 어째서 석유 등이 빛을 내는지 알았고, 자기가 사용하는 망원경의 원리를 알았다. 물론 감히 직접 외과수술을 해 보지는 않았을테지만, 몇 차례 시술 과정에도 참관해 본 만큼 의술을 아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보살핀 의사와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도 되었다. 불투명하지 않은 세계였던 것이다. 유럽사에서 위대한 괴테기(期)는 바로 그랬다. 이 시기는 요동하고 춤추는 승강기 안에 갇힌 인간의 가슴에 향수의 상처를 남길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위대한 괴테기가 종결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세계는 점차 자신의 투명성을 상실하고 불투명해지며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불가사의 속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그런 세계에게 배반당한 인간은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 자신의 향수, 꿈들, 반항 속으로 도피한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이제 더는 바깥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들을 듣지 못한다.

 

『불멸』, 밀란 쿤데라, p119-120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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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

일상 2013. 8. 15. 21:30

아무래도 아프기 전의 엄마, 흐트러짐 없이 예쁜 얼굴의 엄마, 빠알간 복주머니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준다. 열심히 모아둔 거야, 절에 가서 스님들한테 드려.    

응, 엄마.
이제 다시 못 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등을 돌렸다. 여기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마 엄마는 나를 붙잡지도 않을 걸. 갓 볶았는지 머리에서 파마 냄새가 났다. 아마 내일 학교엘 간다면 난 브로콜리처럼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거나, 쓰레기를 줍는 척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수업종이 치고 아이들이 입을 다물 때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 조금 그립다니 내가 자라긴 자랐나 보구나. 그래도 난 인디언 같다고 놀리는 아이들이 싫은 것보다 갓 파마한 머리를 보고 정말 좋아하는 엄마의 얼굴이 좋았다. 무엇보다 뭐든 이겨내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구슬로 꿴 발을 걷고 들어간 방엔 스님 네 명이 앉아 있다. 한 스님이 온화한 얼굴로 내 손에서 주머니를 가져간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내 머리에 얹는다. 쓰다듬어 주진 않는다.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비에 젖었는지 눅눅해져서 한 장을 떼기도 쉽지 않다. 순간 엄마가 너무나 가여워졌다.
이제 스님들은 나를 잡아 가둘 것이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몸에서 물을 몽땅 빼앗아 가버릴 거라고 했다. 도망쳐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죽어버려 나마저 가여워질 순 없다. 
 

슬프지만 꼭 슬프지만도 않다. 도망쳐야 한다는 절실함과 함께, 도망치는 나는, 도망치기 위해 하늘로 날 수 있게 되리란 걸 예감했으니까. 내달려 절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힘껏 날아 담장을 넘었다. 더 높이, 더 멀리, 바다와 사막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런 곳에 닿고 싶었다. 점점 동네에서 멀어졌다. 이제 정말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할 거라는 예감이 들자 어서 빨리 숨을 곳을 찾아 울고 싶었다. 흐트러짐 없던 엄마의 예쁜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도시의 밤을 날아 다니는 건 쉽지 않았다. 높은 건물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더 높이 높이 높이 더 높이 하늘로 솟아야 했다. 힘이 빠져 자꾸 땅에 가까워지려하면 다시 안간힘을 쓰며 속력을 높였다. 150, 160, 200, 250, 힘껏 소리쳤다. 제발, 제발, 제발. 밤새 메말라 있던 내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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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

일상 2013. 6. 1. 00:01

새로 일을 시작하고 이제 한 달, 그 사이 키우던 꽃 하나가 거의 죽어가는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바빴어 제때 물 주고 햇빛 고르게 받도록 관리하는 게 그리 힘든 일이었을까 싶다. 저녁 산책을 하다 조그맣고 노란 꽃들이 예뻐 나름 거금을 주고 산 화분이었다. "3일에 한 번씩은 물 꼭 주세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규칙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책임 소홀해지면 곧잘 스스로를 탓하던 나였다. 여지없이, 눈길이 가지 못 했던 스스로를 탓하다 문득, 고개 돌리기만 하면 금세 생명력을 잃고 마는 것들이 있다는 게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딱할 수 있는 손 하나 없이 자신을 오직 다른 무엇에 의지해야만 하는 것들. 그것들이 가여워서 끔찍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그 사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운명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여지가 주어져 있다는 그 사실이 왠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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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요일

일상 2013. 5. 12. 02:12

 

비 오던 아침. 오래 걷다가 어느새 젖은 신발 속 양말. 젖은 발로 들어간 극장. 양말을 슬쩍 벗어두고 발을 말리며 본 영화. 카프카에 관한 다큐. 몇 가지.

 

이상하리만치 흐릿한 빛, 죽고 싶은 요일을 생각해볼 것,

방을 나서다 넘어진 아이를 보고 카프카가 다가가 했던 말, "능숙하게 넘어지고 날렵하게 일어나는구나"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단다, 자신만 빼고."

 

카프카를 만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알고자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바르고 교훈적이라서 쉽게 넘기게 되는 말들을 붙잡아 볼 것.

 

벼락 떨어지는 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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