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너무 강해 땅을 보고 걷다가 어디선가 희번듯 거리는 게 있어서 놀라 두리번거렸다.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땅에서 막 올라온 듯한 축축한 지렁이의 몸에서 오로라가 만들어진다.가느다랗고 긴 지렁이가 아스팔트 위를 꿈틀거리며 나아갈 때마다 마치 흑인의 이가 희번듯이는 것처럼 1초 간격으로 번쩍 거린다.
하지만 제 몸을 태우는 저 지렁이는 얼마나 따가울까. 잔인한 햇살.
+어릴 적 내가 살던 작은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선 동네 아이들끼리 맨날 뭉쳐서 장난질을 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서 지렁이를 잔뜩 뽑아내고 지나간 다음 날이었다.
대부분의 남아들과 여아 몇몇이 바가지에 소금을 잔뜩 담아 나와선 화단을 향해 걸어 갔다. 왜 그런지 울동네엔 비가 내리고 나면 지렁이들이 그렇게도 많이 나오더라.
아해들이 소금을 지렁이에게 팍팍 뿌려대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며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의 모습이 그렇게도 매혹적이었던가. 실컷 소금을 뿌리고선 죽어가는 지렁이들을 넋 놓고 바라보던 아이들. 나 역시 늘 소심하게 옆에서서 육체를 비트는 지렁이들에게 안타까움만 날렸었는데 (어느덧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 날만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러잖아도 숨 쉬려고 땅 위로 나온 지렁이들에게 숨막힘보다 더한 고문이라니.
나도 아이였지만 아이들의 순진한 가학이 더 무섭다. 왠지 그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만 같아서. 본능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정당화하는 권력이란.
난 있던 자리에서 슬금 일고여덟걸음 물러났다. 그리고선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마 그만해 니들 진짜 못됐다!
그러자 몸 안에서 숨 막혀 하는 지렁이가 나오듯 눈물이 쑥 떨어 졌다.
나조차도 민망하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머쓱해진 내 남동생은 집에 가자고 가자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많이 달려 마르고 시커먼 어린 나는 흙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안에서 침을 가득 모아선 구멍 속으로 퉤악 뱉고 있다. 구멍을 분주히 오고 가는 개미들을 보며 그들의 소굴을 멸망시키고 싶었던겔까. 우연히 개미집이라도 발견했다 치면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앞에 앉아 오물거리며 침을 모으곤 했다.
그러면서도 난 아스팔트 위에서만 걸으면 풀 하나 꽃 하나도 밟지 않으려 잰걸음으로 조심해서 걸었다. 뭐 그만큼 땅을 많이 보고 걸었단 얘기일게다.
=유년시절을 기억해내는 것은 단지 추억산업이 아니다.
이건 역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