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2008.06.29 아임낫데어 2
  2. 2008.06.29 늬들너무구려 1
  3. 2008.06.26 하라버지
  4. 2008.06.24 실질적인 예외상태 2
  5. 2008.06.22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1
  6. 2008.06.19 평.화를 택.하라
  7. 2008.06.18 우리모두는소수자다
  8. 2008.06.17 행복하자아름답자 2
  9. 2008.06.17 아주많이요
  10. 2008.06.14 띠끼뚭띠끼댑

아임낫데어

일상 2008. 6. 29. 15:46

 

1. 툭하면 ‘방황하고 있어’ 라는 말을 내뱉는다. 어차피 방황이라는 것도 잡지 못하는 것을 잡기 위함이 아닌가. 그럼, 방황은 ‘길을 잃은 자인가’ ‘길을 찾는 자인가.’ 길을 잃은 자라고 하면 목적의식이 분명한 상태일 거고 길을 찾는 자는 아직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 사람일거다. 후자가 더 못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난 후자의 방황이 더 매력적이다. ‘나’ 로 불리기를 끝까지 거부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려 하기보다 그 과정을 삶으로 여기는 것. 무언가를 위해 고통을 극복하기보다 자꾸 단단해지는 고통의 극복과정을 즐기는 사람.

‘어떻게’살아갈 지, ‘왜’사는지, ‘무엇이’나를 살게 하는지, ‘언젠가’방황은 멈추는 건지, ‘어디에’나는 있는 건지, 나는 ‘누구’인지. 의미를 찾으려 할수록 무의미 해진다. 그 무의미함은 또 내게 무엇인지. 내 식으로 대답하자면, 그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이 삶이다. 그렇다면 종착지는 죽음인건가. 태어나서 죽음까지..

정체성은 없다. 다만 정체성을 찾는 과정 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그 찾아가야 할 정체성조차 없을 지도. 영화 '아임낫데어'에 이런 말이 나온더라. '사람들은 자유를 꿈꾼다. 그래서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방식대로 사는 건 자유가 줄어드는 일이다.'

2.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라고 머릿속에서만 발버둥치면서 또 다른 자아를 위한 립서비스만 하진 않기를. 사실 난 쉽게 관념적인 구호들에 마음을 뺏기고선 그 아우라에 취해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기분좋아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기에 금방 또 회의가 찾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말들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는가 하고 자기 반성을 하는 거지. 하지만 그 자기 반성은 이내 자기 변명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잦은 반성과 변명의 습관화 속에서 살다가도 눅눅한 삶에서 기어 나와 볕에 정신을 말리는 날들엔 말이다. 그땐 피로한 정신이 빠져 나간 육체가 나의 성장을 증명하기도 하더라. 아 그래도 나 달라지긴 달라지는구나, 몸이 변한다는 게 이런거구나,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반응해 주는 몸, 이렇게 더디지만, 미끈미끈하게 조금씩 성장하는구나. 그러니까 뿌리깊은 긍정적인 마음은 잃지 말아야겠구나.

3.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이자 밥 딜런이 아닌 한 사람의 대사, '내가 하는 모든 건 저항이에요'
중력에 충실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저항한 사람. 또 나는 그런 구호들에 헤벌레.

4. "많은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영원한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영원한 여행을 찾는다."

5.  '나'에 대해 글을 쓸 때면,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이게 내가 맞긴 한 건지 그냥 글은 글일 뿐인 건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 보면 그게 '나'였고, '그 때에 가장 충실한 나' 였더라.

그러니까 난 나에 대해서 선언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늘 생각하듯 그건 내겐 가장 어려운 일이고
무엇보다 나는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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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들너무구려

일상 2008. 6. 29. 15:14


 


그래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이 영상에 눈물이 펑

전경이랑 부딪치는 게 진짜 싸움이 아니란 거 알면서도 전경이 밀고 들어올 때 기어코 안밀리려고 나서선 더 이상 좁혀 오지 말라고 다치니까 천천히 오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의 폭력 앞에 당장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별의별 회의가 든다. 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까. 그리고 늘 나의 관심, 약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 차벽은 자꾸만 좁아지고 항의의 목소리는 더 억눌림을 받고, 그래도 계속 싸우겠다고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왜 이렇게 반대만 해야 하는 걸까. 정말 국가는 왜 존재하는 걸까. 이러는 게 그냥 인간의 역사라는 걸까.



평화가 무엇이냐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이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 문정현 신부님이 작사하고 대추리 지킴이 하던 조약골씨가 작곡한 노래.
평택 대추리, 국가가 미군기지를 이전한답시고 몇 십년간 흙과 벼를 쓰다듬으며 농사지어온 농민들을 쫓아낸 곳, 노을 지는 황새울 들녘이 그렇게 아름답던 곳, '밥먹고 가라'가 인사인 그 인심좋은 분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곳.
언제부터고 국가라는 건 더 좋은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체 증식하면서 자기 배불리기만 한다. 반성없이 국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환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합세는 살기 싫은 세상을 만들고, 그건 명확히 옳지 않게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
국가의 존립이유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라. 이런 식이면 국가가 있을 필요가 없잖아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어떻게든 국익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폭력 또 폭력. 늬들이 말하는 국익이 나의 이익이 아닌데, 잘 사는 사람들 배불리는게 국익이니. 그렇다면, 돈이라는 게 이익이 되는 삶은 또 바람직한건가.

늬들은 미군이 있어야 평화를 지키는 논리를 댔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걸.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러니까 아직 아름다울 수 있어, 아름다워질 수 있어.


난 그냥 돈돈 하는 세상이 너무 싫고
단 한 사람도 굶어 죽는 세상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면 안되는거고!
당연히 자연도 착취하면 안되고 다같이 잘 어울려 사는 게 좋은거고
난 그냥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싶은 거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알게 되는 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니들은 그렇게 생각안하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게 맞다고 생각하냐
모든 사람들이 이래야 한다고 믿잖아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문제인가 알면서도 어쩔수 없는 거라 자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문제인건가.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살건데. 믿는 것을 어떻게 일상에서 믿음의 해냄을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


가장 문제점은 지금 대한민국 악의 무리들은 너무 구리다는 것. 싸울 만한 가치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시하고 싶은데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란 건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어야 할진대. 늬들 너무 구려. 그래서 짜증나. 엉엉.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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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버지

일상 2008. 6. 26. 08:21

잠시만 주머니에서 손을 내어 놓아도 뻘겋게 팅팅 붓던, 그렇게 춥던 작년 겨울 어느 날
친구랑 팔짱 꽁꽁 끼고선 서울역 근처 동자동 쪽방엘 취재간 날.
거기서 만난 두 할아버지.
한 할아버지와는 작은 방에 셋이 앉아 함께 홍시를 까먹으며 생활은 어떠신지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날이 추운데 난방도 잘 되지 않아 보였는데 그 할아버진 연신 괜찮다 괜찮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낡은 워크맨을 꺼내선 작동법을 알려 달라시던 할아버지,
전지를 끼우고 트로트 테이프를 넣어 드리니 밤에 심심하지 않겠다며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또 한 할아버지
간경화가 심해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땐 수급자도 아니셔서 생계가 많이 걱정이라 하셨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통없이 편히 죽는 것, 이라며 연신 무관심한 얼굴로 딴 데보며 툭툭 내뱉으시던 대답들.

그 할아버지를 어제 다시 만났다.
건강권권리학교를 하러 동자동 사랑방엘 갔는데 동자동 쪽방에 사시는 분들이 몇몇 오셨다.
그분들 중 한켠에 앉아 계시던 분이 낯이 익어 오래 흘끔흘끔 바라보며 고민했는데,
글쎄 그 할아버지셨다.
빨리 알아보지못했던 건 할아버지 얼굴이 많이 검어지셨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셨나보다
대신 교육하는 동안 예전엔 못보았던 웃는 얼굴은 어젠 보았다.
이제 수급자가 되어 그나마는 의료비 걱정은 덜 하시나본데 여전히 어려움은 많으신가보다.
건강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라는 질문에 공기가 좋은 방이라고 적으신다.
쪽방엔 창문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남으로 창을 내어 드릴 텐데,
하루 남은 건강권학교에서도 만나 답답했던 거 많이 얘기 나누고 유용한 것들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또 우연히 웃음만큼 하얀 얼굴로 다시 만나뵈었으면 좋겠다.




_ 건강권권리학교 둘째 날, 누가 가장 보고싶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30대에 너무너무 좋아했던
애인이 보고 싶다 하셨다. 너무 많이 외롭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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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예외상태

일상 2008. 6. 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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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당하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에게 '위기상황'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역사의 개념을 이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써가야 한다.    _벤야민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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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 취재할 때도 건성건성 들었고
시위 참여 할 때도 아 노래 빡세다 대충대충 들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 새벽 우비 입고선 비맞으며 서 있는데
비 오는 날이면 은빛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가 소리가 더욱 예민하게 들리듯이,
오늘따라 곧게 귀에 박히는 노래.  
그래서 곱씹게 되는 가사
가까이선 우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광장을 울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교차하며 들린다
아리다 아리다
그렇게 멍하게 듣고 있으니
지나가던 어떤 언니,
얼굴을 삐죽 들이밀며

왜 그렇게 슬픈 표정짓고 있으세요? (웃음)

부끄러워 희미하게 미소짓고선.. (슬퍼지려 한 건 아니었는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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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택.하라

일상 2008. 6. 19. 23:21


(2007년 1월 1일의 글)


2006년의 마지막 날. 내 발걸음은 어느새 평택 대추리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5월 평택미군기지건설반대 시위를 영상으로 보았다. 얼마나 울었던가. 흘린 눈물을 간직하며 나는 꾸준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실천 없는 창백한 나의 관심. 한 해를 돌아보다 불현듯 나는 부끄러워졌고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평택으로 하루빨리 달려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대추리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 안 라디오에선, 후세인이 처형되고 이라크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상했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지구 곳곳에서 평화가 깨지는 소리, 아니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를 평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대추리로 들어서는 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혼자 가는 거라 가뜩이나 소심해져 있던 나는, 대추리 입구에서 전경들이 택시를 세우곤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꼈다. 무서워하지 말자, 몸서리 한번 치고 나는 애써 마음을 편히 가졌다.





▲ 평.화를 택.하라


▲ 평화예술마을 대추리

"
혼자 왔어?"
"네"
"독불장군이구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껄껄 웃으신다.

"들어와서 밥 먹어."

눈 녹듯 긴장이 풀린다. 이 곳 대추리 사람들의 인사는 "밥 먹고 가"다. 그들의 인심을 한아름 얻고 내 마음은 풍성해진다.

한 할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어디서 왔느냐" "처음 온 거냐" 연신 물으시며 마지막에 한 마디 하신다. "와줘서 고맙다." 밥숟가락을 넘기는데 목이 콱 멘다. 오길 정말 잘했구나.

일찌감치 밥을 실컷 얻어먹고 커피까지 마시곤 도둑고양이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는 너무나 늦게 왔다. "여기 사람들 힘 다 빠지고 나서야 왔느냐"고 웃으며 말하시던 한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이곳 저곳 부서진 집들. 밀물에 쓸려나간 흙두꺼비집처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막무가내로 철거된 집들은 온갖 집안 살림들을 토해 놓았다. 그 더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여미며 마음이 아파졌다.




▲ 철거된 집들

▲ 주인에게 전해지지 못한 우편물들

하지만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 위에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덧칠하고 있었다. 대추리 입구에 적힌 평화예술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담벼락의 시들, 그림들, 박물관에 도서관까지, 지킴이들이 직접 꾸민 집들도 이 곳은 관광을 위한 하나의 문화마을 같았다.



▲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바라며


▲ 담벼락에 그려진 농사짓는 할아버지 그림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눈물겹고 아름다웠다.



▲ 대추리 사람들 박물관 내부

▲ 한사람, 한사람 지켜주고픈 소중한 삶

날이 저물면서 담벼락의 글귀와 그림 그리고 건축물에 노을이 섬세하게 스며들며 만드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 대추리에 노을이 지는 풍경

대추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연일 노인정에 모여 있다. 거기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나누며 위로한다. 그나마 연말에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김지태 이장이 석방된 것이다. 이장님의 어머니는 "지태가 구속됐을 때 내가 흘린 눈물이 양동이 하나도 넘을 거야, 석방되니 마음이 아주 좋아졌어"하시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정신없이 나누는 사이 꿀과 설탕에 달콤하게 졸인 고구마 맛탕이 한 솥 나왔다. 따뜻한 노인정 방안에서 고구마에 시원한 물김치를 들이키며 오래도록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한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 보였던 고인 눈물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대추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모든 사람들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평화를 위협받고 있는지도. 자본과 폭력 앞에선 우리 모두가 소수자다.

그래도 그들은 삶을 긍정한다. "미군기지 건설이 5년 늦춰졌으니 우선 지금은 이렇게 오순도순 즐겁게 살고 그때 가서 앞날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뭐"하며 소탈하게 웃으신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아무 선물도 준비해오지 못한 나는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이 말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사올 테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이런 내 말에 "맛있는 건 무슨, 그냥 와서 주는 거나 맛있게 먹고 가" 하시는 할머니들.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다. 그들이 꾸려나가는 것은 삶이다. 국익의 논리로 파괴된 집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고 있는 곳 평택 대추리. 지속되는 삶을 통해 존재를 가치 있게 하는, 더 나은 것을 위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2007년 새로운 시작의 해가 떴다. 아마 평화를 택하는 희망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뒤늦은 나의 실천이 늦지 않았길 바라며 희망이 있는 그 곳에, 황새울 들녘에 노을 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나의 기도를 보탠다.



▲ 황새울 들녘에 노을 지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주세요


▲ 대추리의 하늘을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



그리고 2008년 6월 18일
근로하던 중 너무너무 졸려서 앉은 채로 스스륵 잠이 들었다.
잠깐동안 그 불편하게 잔 낮잠 속 꿈에서
난 황새울 들녘에 서 있었다. 오마이..
꿈에서 살결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도 생생했다. 꿈이란 걸 알았고 갑자기 왜 난 여기로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도니, 저 쯤 있었던 몹시 부서진 집의 흔적이 없어졌더라.
금방 졸음에서 깼고 눈 앞엔 시집이 엎어져 있고 뒤집으니 촛불집회 896일째 라는 시가 있다. 과제제출 때문에 한참 시를 보고 있던 중이었던 거다.
아무리 그래도 금방 본 시가 꿈에서 바로 이미지로 현현되다니..
여하튼 꿈에서 보아도 예전에 보았던 그 아름다운 황새울 들녘에 대한
벅찬 마음은 여전했다. 오래지나 숨이 많이 죽은 기억인데도
그때 참 많이 감격했던 감정은 남아 있다. 그때 그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다들 어디에 계실까.  


촛불집회,896일째
                 장윤서 

대한민국에선
힘없는 자나
들녘을 뺏긴 가난한 농부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촛불뿐인가
더구나 오늘은
잔류주민 이주가 확정된 날
895일을 불타온 촛불
힘이 없다
따뜻하지도 않다

봄비는 내리고 

대추리 농협창고
할머니들, 이젠 다 지겹단다
가뭄이 너무 길었나
싹을 틔우려는 들녘들
태울 게 없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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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는소수자다

일상 2008. 6. 18. 02:03

1. 원래 사람들은 이절적인 '다중'에 가깝다. 사람들은 하나로 소급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래서는 통치가 쉽지 않다. 집단의 정체성이나 성격을 파악하고 규정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관리 방법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사람들을 동질적인 성격의 '군중'으로 만드려고 한다. '국민'이나 '노동자'와 같이 특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 들이 '군중'의 예들이다.
이런 동질적인 집단은 관리하기가 훨씬 쉽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것에 분노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잘 봤듯이 '국민'은 그 엄청난 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에 감동하고 동일한 것에 분노한다.
하지만 이런 동질화 작업이 모든 사회 성원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랬다가는 권력에게 별 이득이 없다. 모두가 같은 것만 할 줄 알고 같은 것만 느낀다면, 사람들을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여러 다른 집단을 형성시키되, 각 집단의 규칙을 공고하게 유지해서 지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2. 권력은 대중의 흐름이나 이동보다 결코 앞서서 존재하지 못한다. 들뢰즈는 권력을 어디로 튈지 모르고 무엇을 생산할지 알 수 없는 '흐름'들을 명확하고 동일한 성격을 지닌 몰적인 '선분'으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한다. 즉 권력은 대중이라 지칭되는 여러 사람들의 흐름과 창의성을 특정한 형태로 고정함으로써 기능한다. 권력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리 고정시키고 경계를 명확히 해 놓았다고 여겨도 또 빠져나가는 흐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흐름 자체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 다시 그 흐름을 쫓아가서 고정시켜야 한다. 권력은 끊임없이 쫓아갈 뿐이다.

3. 가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 밑에는 '이주노동자도 비참한 존재이고 우리와 같이 고통받는 존재'라거나 '우리도 이주노동자처럼 고통 받을 수 있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주노동자가 오히려 내 고통을 가중 시킬 경우, 내 직장을 빼앗아간다 여겨질 경우 같은 노동자라도 이주노동자에게 적대적이다. 함께 뭉쳐 고통을 극복하고 부르주아와 협상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가 오히려 그 협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진정 힘을 가지는 것은 부르주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협상이 아니라 혁명을 할 때, 부르주아 질서로부터 이동할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꾸로 말해야 하는게 아닐까.
노동자의 일부에 이주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모습은 이주노동자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노동자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비참함을 공유하지 않는다. 반면 이동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다양성을 공유한다. 그리고 권력은 그런 무수한 횡단과 이동을 통해 무너진다. 이제 고쳐 말할 때다.
동자는 이동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와 이동' 中 , 만세



2년 전이던가. 수유+너머에서 들었던 소수성의 정치학 중에서의 한 강의였다. 이주노동자 관련 자료를
찾다 다시 꺼내 읽게 됐다. 자꾸만, 자꾸만 더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공부? 이런 공부.

이런 글을 보면 구호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시위 현상에서 불편한 구호들이 많다. 예컨대 이명박 I'm gay 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확성기녀라는 말은 얼마나 듣기 불편한가.
또 내가 암묵적으로 끄덕이고 있는 구호 중에 생각해 볼거리가 있는 것도 많을 거다.
지금의 촛불 시위 현장에 더 많은 소수자들을 불러와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타자들이 만나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고 더 넓은 인식으로 그 균열을 다시 메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 내부는 자꾸만 싸워야 한다. 반성할 거리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그게 시위 문화의 발전이다.

좋은 구호하나를 마음에 도닥도닥 잘 묻으면 얼마나 풍성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경험이 내겐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 라는 말이었다.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알게 됐고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됐다.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물과 흙바람이 소수자이고
뻘의 조개와 들판의 곡식이 소수자이며
농민과 노동자 청년 여성 장애인 학생 예술인이 소수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수자입니다 (수유 + 너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행복하자아름답자

일상 2008. 6. 17. 01:34

한번은 오광록 선배랑 함께 술마시고 돌아가는데 선배가 내 주머니에 돈을 슬쩍 찔러줬어요. 그리고 문자로 그렇게 썼더라고요.

"이 감독님, 아름다운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아름답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세파에 휘둘려도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가는 거죠.

                                                                                           씨네21 한대수-이무영 대담 중


아름답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건 아름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다짐. 아름다운 인연에 대한 소망.
아무렇지 않게 듣던 아름답다 라는 말이 이토록 벅차게 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
어느 새해의 아침에 온 문자,
'우리 행복하자 아름답자'
응응. 그 문자 닳고 닳도록 보면서 마음 속으로 계속 끄덕끄덕.
그 사람은 떠났고 사람은 없지만 담백하게 그 말만 남아서 이제 내겐 부적같은 말,
기분좋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되뇌이는 말, 행복하자아름답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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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많이요

일상 2008. 6. 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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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버린 그의 책을 슬며시 내밀었다
그 좋은 웃음으로 날 기억한다 했다

"우리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바보 같이 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여행은 오롯이 여행하는 자의 것입니다. 좋은 여행 하세요.'

오롯한, 극진하다, 충만한, 그런 말들을 가르쳐준 사람, 그 말들을 인식하게 해준 사람.

2년 전 기숙사 2층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페이퍼 잡지를 읽다 글 하나 때문에 한 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한창 진정성이라는 말에 매료됐을 때였던가. 읽던 잡지를 펼친 채 가슴에 얹고 한참이나 누워 있었다. 그리고 벌떡 앉아선 떠오르는 상념을 여백에 정신없이 적어내려 갔었다. 그때 그 기억.  
이후로 그의 글이 나올 때마다 찢어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너무 좋아 싶은 그의 글을 볼 때면 그 면을 곱게 찢어선 차곡차곡 접어 몇날 몇일이고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 꺼내 읽을 것도 아니면서 괜히 주머니에서 헤져 가는 종이를 매만지며 덜커덩 거리는 마음을 안심시키곤 했던 날들.
그의 사진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어떤 모습을 한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기 전부터 그저 혼자 부끄러워서 복작거렸던 마음. 그리고 만남. 그리고 또 다시 만남. 반짝반짝.
 
난 그의 책을 항상 천천히 읽었고 한 페이지를 읽고 잠들었다 잠시 깨선 또 읽고 다시 잠들면서 온 오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바닥에 책을 두곤 양반다리를 하고선 고개를 푹 숙이고 집중하며 읽다 그대로 펑펑 울어버린 날도 있다. 왜 슬픈지도 모른채 그냥 울기 위해서 울었나 보다.
 

 거대한 폐허 위에 빛나던 푸른빛. 그 물빛은 이제 무서우리만치 더욱 푸르고 투명해졌을 거다. 더 이상일 수 없이 마지노선에 다다른 푸르름. 그 절망과 허무의 푸르름 끝에 이젠 새로운 열정의 싹이 피어나기도 하는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속단할 수 없는 힘이
그곳에 있는 걸 나는 보았다. 깊게 슬프고 푸른 폐허의 트랑코말리는  늘 새로운 시작의 직전, 그 어디쯤일 것만 같다. 해일이 이는 건 사람을 죽이려고 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그저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그 해변 위에 서서 그 거대한 푸르름을 몸소 대면해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푸른 물에 당신 몸을 흠뻑 적셔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고작 사랑밖에 기댈 것 없는 당신'이.

그리고 당신,
만약 당신이 힘들게 사랑을 감당했다면 사랑 없는 시간 또한 깊은 마음씨로 감당합시다.
이 세상 연애가 곧 사랑이라면 그런 것 당분간 없이도 별 탈 없습니다. 알싸함으로 과장된 사랑을 뒤로 하고, 버려진 채로 폐허 속에 널린 심심하고 무덤덤한 시간의 진실들을 우직한 마음으로 발굴해보는 것은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트랑코말리, 그 푸른 폐허의 눈빛이 당신 눈 속에도 있습니다.



늘 알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읽으려 하는 노력에도 지칠 무렵의 나는,
내 안의 무엇이 날 자꾸 이리도 이유 없이 허허롭게 하는 것인지  
아무 것에도 위안 받지 못하고 원래 나는 이렇게 태어났나보다 그렇게 혼자 견뎌내야 했던
허무함 혹은 외로움.
그의 글은 내게 위안이었던 것일까. 감히 내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엄마 잃어버릴까 잰걸음으로 뒤따르는 아이, 엄마 언제 오나  해질무렵 창문에 기대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 그를 대하는 내 태도는 아마 이런 아이의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제서야 이런 수줍은 고백.  

아아. 저 당신에게 많은 걸 빚지고 있어요.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요
.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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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끼뚭띠끼댑

일상 2008. 6. 1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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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연주하고 나니 손에 가득 묻어 나는 슬픔. 이 슬픔을.
기타줄에 맺혀 있던 슬픔들이 간간이 공기 중에 흩어 집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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