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08.05.10 고통을딛고더강해진휴대폰
  2. 2008.05.06 설레임을 좇아 살아가고 싶다
  3. 2008.05.06 다시 일상
  4. 2008.05.01 왜소들보고미쳤다그러는건데 1
  5. 2008.04.30 서러운것같아
  6. 2008.04.30 설탕친토마토
  7. 2008.04.25 환자, '권리'를 말하다 1
  8. 2008.04.25 커피타임오분
  9. 2008.04.22 빠삭 1
  10. 2008.04.22 딴land로가라 1


기계의 본성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길들여지는 것인가 텔레비젼마다 탁탁 쳐서 회복될 수 있는 부위가 다다르듯이 이여이여우와어어 제조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병원도 없는 내 가여운 휴대폰 귀가 멀었네 미국에선 제손으로 제 상처를 꿰매는 경우도 많다더라 그러니까 울지말아
난 귀가 먼 휴대폰을 1단계로 귀에 바람을 훅훅 불어 회복을 시켰으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먹통 바람에 침까지 텨들어가는 것을 느끼고선 이방법 위험하다 다음 단계 두껑을 세게 닫기 손 끝으로 타악 쳐내리면 휴대폰이 재부팅되는데 다섯에 한번은 회복이 되더만 하지만 또 다시 패닉 잠시 방치해두었다가 어느날 아무런 신호음이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스피커폰 버튼을 무심코 눌렀더니 잠시 후 콱 터지는 스피커소리에 기겁 놀람 환희 이야아아아아 침묵 상태에서 스피커가 터지는 그 미묘한 지점 그 통쾌함 삼단계에 걸쳐 마치 철인삼종경기를 해낸 마냥 당당한 나의 휴대폰 나도 너를 인정하노라 왠지 이 방법은 오래갈 듯한 기분 하지만 한번더 귀가 멀면 어쩔수없이 너완 빠이빠이해야할지도 몰라 혹시 내가 사랑이란 말로 너를 억압하고 있는 거니 가학하고 있는건 아닌지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건만 그래도 내곁에 있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 혹 이모든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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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를 안으로 삼키는 침묵 속에서 글을 읽는다. 하지만 때로 마음에 드는 글귀가 나올 때면 좋아하는 음악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한다. 그리곤 다양한 멜로디에 맞춰 글을 읽기 시작된다. damien rice, monla, 스위트피, 루시드 폴, 허밍어반스테레오.

" 사랑은 일상을 다해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사이에 놓여 있는 여백입니다. "

허공을 유영하는 언어들은 자유롭게 멜로디와 접속한다.



#2. 쉽게 이해되지 않는 글을 읽었다. 하지만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그 글의 언어들은 곧바로 내 몸에 들어와 구석구석을 떠돌며 세포를 밝힌다. 이유도 모른 채 감정이 들썩인다. 글을 읽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시인 김경주의 글이 그랬다. 나를 비우고 싶을 때면 그의 시를 읽었고 이 세계에는 없는 듯한 언어들의 조합들은 낯선 감성을 일으켰다. 그냥 그게 좋았다. 그런 모든 과정이.

#3.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는 부대행사에 낭독이벤트가 있었다. 그 날은 김경주 시인과 북밴이 함께 하는 김경주의 여행 산문집 passport 를 낭독하는 날. 그리고 passport 의 사진작가 전소연씨의 전시회인 '앨리스 증후군' 도 마련됐다.

                          앨리스 증후군은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다.

하나의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영원히 지상으로 착륙하고 싶지 않은 비행기이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쪽의 설렘이 왜 그쪽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굳이 오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행의 동기 같은 것이라고 나는 아직 믿고 싶다.  _ 앨리스 증후군, pas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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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에서 가져 온 모래를 상징한다.앨리스 증후군 사진전



곧 김경주 시인의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숨는다' 라는 글의 낭독이 시작됐고 이어서 그 글로 만든 노래를 북밴이 불렀다. passport에 실린 유목의 땅 고비에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했다. 노래소리와 바람이 마주치면서 맑은 소리를 낸다.

나는 지금 당신과 나의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의 '사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여백은 무엇인가요? 당신과 나의 '사이'에서 무엇을 비워야 한다는 것인가요? 마른 공허들이 흙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길을 걸어 왔습니다. _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숨는다, pas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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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밴



북밴은 문학작품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그룹이다. 단순히 시에 멜로디만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을 토대로 가사, 멜로디, 리듬을 새롭게 만들어 하나의 완전한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책 passport는 여행산문집이다. 유목의 땅 고비에서 유형의 땅인 시베리아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김경주 시인에게 여행은 '설렘을 가장 크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깨달음을 얻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깨닫는 건 곧 설레임이 깨어지는 것이었다. 그저 짝사랑하듯 닿을 듯하지만 만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설레임을 좇으며 살아 가고 싶다며. 전주에 온 그는 처음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했다. 그에게 전주는 학창시절의 뜨거운 시간을 보내며 많은 시를 쓴 곳이다.

그에겐 시 역시 설레임이다. 이해할 듯 못할 듯한 느낌을 즐기면서 그는 그렇게 시를 읽는다. 그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나의 인생관'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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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전소연 사진작가, 오른쪽은 김경주 시인



그랬다. 그는 '남들이 만들지 않은 언어의 질서를 만들고 싶다' 고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확실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내 육체는 확실하지 않아서 자주 영혼을 공모하였습니다. 내 안의 뻔뻔하고 추하고 속물스러운 것들은 모두 내 언어들이 나에게 하는 구애라는 것을 묵묵히 견뎌야 했습니다'

그가 밤마다 글을 쓰는 언어들은 당신과 나의 '사이'에 있는 혼수상태와도 같은 것 이었다. 그 리고 그 깊은 혼수를 견디고 나면 매번 새로운 언어가 태어났다. ("나는 당신과 나의 '사이'에 숨는다" 인용)

어느새 사막 고비에서 불어온 바람이 광장에 가득 모였고 전주의 하늘은 금방 눈물을 툭툭 흘릴 듯이 새하얬다.





                                                                         김경주의 시 '우주로 날아가는 방' 으로 만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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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

일상 2008. 5. 6. 15:53



처음 만났다. 전주 영화제와. 아니 영화제와의 만남이 내겐 처음.
짐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뚱뚱한 배낭에 옆구리 가방까지 메고선 전주행 버스를 탔다.
객석에 엉덩이 질펀하게 붙이고 하루죙일 영화만 보고 싶었지만 취재도 해야 하는 탓에 나름 비장한 마음이었다. 전주는 어떤 곳일까, 고심해서 선택한 영화들은 어떨까,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이 살짝 뜬 채로 버스 창문에 얼굴을 잔뜩 붙이고선 싱그러운 초록 나무들이 산에 알알이 박혀 있는 풍경을 구경했다. 푸르르다. 아 여름이구나.

역시나 여름이었다. 특히나 전주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분 정도 헤맸는데 그새 등에 땀이 촉촉이 배었다. 자그마치 30도였다 한다. 그런데 이런, 전주영화제 안내 표지판이 없어.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안내하는 반가운 표지판이 있었다면. 일요일엔 관광안내소마저 문을 닫았다고 하니 행사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어쨌든 영화의 거리까지 여차 도착했다. 막 개막식을 끝낸 다음날이라 그런지 거리 여기저기에서 행사와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난 낙타처럼 검은 배낭을 지고 후끈한 거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와아아아. 반갑다아. 전주국제영화제여어.

3박 4일간 영화제에 체류하는 동안 나름 영화도 많이 봤고 행사도 즐겼고 사람도 만났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아이디카드로 티켓을 발급받을 때 이미 많은 표들이 매진 상태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들이 급 선택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급 선택'이 예기치 못한 '발견'의 기쁨을 주었으니. 다음날부턴 맘 놓아 두고 마음가는대로 영화를 예매했다.
또 학교에선 한 학기에 한 두번 마주치기도 힘들었던 친구를 전주 영화의 거리 한복판도 아닌 구석에서 떡 하니 만났다. 들리지 않는 전화기 귀에 바람을 훅훅 불어대며 서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짱윤! 어머낫 꺅. 너무 반가와서 우리들의 만남은 전주 밤거리의 술 약속으로 이어지고 그 참에 난 인터뷰도 뚝딱 하고. 그렇게 저렇게 즐거운 '우연'의 만남으로 기억되는 전주국제영화제.

헝가리의 벨라타르 감독의 영화로 시작되어 벨라타르 감독의 영화로 끝낸 영화 관람.
생소한 헝가리 영화는 아주 진한 초콜렛처럼 쌉싸래하면서도 아릿하게 달콤했으며 아직까지도 난 헝가리 전통 음악의 리듬에 젖어 있는 기분이다. 또 베트남 영화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영화로 이야기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 국제경쟁작들 영화는 역시나 국제경쟁작다웠다. 미국 영화 발라스트와 캐나다 영화 켄티넨탈은 아주 미약한 감정의 파동을 만들며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따끈한 한국영화들에선 사채나 가난과 같은 동시대의 비극적인 소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다양성만큼 일상에서도 다양한 영화들을 자주 만나고 더불어 다양한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야 관람까지 챙기느라 내 눈은 오 년은 더 늙어버리고 무릎 관절은 자꾸만 저리지만 난 이제서야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스크린과 마주한다는 것,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영화관의 불이 켜지고 시린 눈으로 거리엘 나서면 어두워진 거리에 루미나리에가 환히 켜져 있었다.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대행사는 다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휴식이었다.
이왕이면 한국의 멋을 느낄 수 있거나 휴식할 수 있는 분위기의 야외도 있으면 좋으련만 너무 빡빡한 거리에 상점과 옷가게만 즐비한 건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도 아쉬움. 또 하나 장애인석이 없다는 것. 다양한 영화만큼이나 다양한 관람객들을 미리 생각하는 흔적을 더욱 세심하게 보여주면 좋겠다.

3박 4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서울. 버스가 마포대교를 달릴 때 저 너머 한강엔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떠 있었다. 울컥 감정들이 밀려 오는데 슬프다, 기쁘다 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며칠 전보다 모세혈관이 두 세가닥 늘어난 기분이다.

전주에 머무는 동안 긁어 모은 영화소식지와 각종 팜플렛들이 가방에서 구겨져 나온다. 단어로만 적힌 수첩, 부지런히 GV기록한 종이들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그냥 널브러져 놓고선 정리되지 말아야 할 날 것의 감정들을 끌어 안은 채 난 잠들었다.

잠들면서 생각한다. 이런. 결국 전라도 백반은 먹지 못했구나. 내년엔 먹거리에 대한 기대를 보태 더욱 수줍게 다시 전주국제영화제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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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병든 소를 먹어야 하냐느니, 미친소 너나 처먹어라 그러는데
난 인간이 광우병 걸릴까 두려운 것보다 소들이 광우병 걸렸다는게 더 슬프다
미친소라느니 소를 처먹으라느니 그러면 정말 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
나는 불쌍하다는 말 쓰기를 너무나 꺼린다 자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불쌍하다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고등학교때
이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한데 말의 어감 자체가 싫다
그러니까 굳이 불쌍하다라는 말을 쓰면서까지 소들에게 너무 연민이 든다는 거다

또 나의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우리는 산으로 가고 인간은 산으로 가고 지구가 산으로 가고
산으로 매일 바위를 굴려야 했던 시지프스는 사실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건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라고 한다
그러면 이 참에 지구를 산에서 굴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소들에게 감사하고 먹어도 모자랄 판에
인간도 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다른 생명체에 도움이 되기 위해 먹혀야 한다면 인간답게 살다가 죽어야 좋잖아. 동물들도 동물답게 살다가 죽어야지. 그들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삶의 권리까지도 빼앗는 건 정말 몹쓸 짓이다

동물들도 우리들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인간보다 앞서 수없이 멸종하는 그들의 예민함 앞에서 인간은 무얼 하고 있나.

그러니까
이명박은 나중에 역사를 통해 냉정하게 평가라도 받겠지만
흉흉한 우리들의 휴머니즘은 반성하기도 싶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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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것같아

일상 2008. 4. 30. 01:44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해야만 했고
이해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채
난 꾸역꾸역 삼켜야 했고
시간은 많이 지나버려서
이제 난 자꾸 내 탓만 하고
내 탓만 해야하고
아직도 탓 타령을 하고 있는 나는
사랑을 잊지 못한 걸까
그래 잊을 수 있는 게 어딨을까
다만 상기하지 않을 뿐이지
그러니까 세상은 필요이상으로 노출증과 관음증에 시달리고
균형을 잡지 못하는 나는
줄을 타다 늘 미끄러져 땅으로 곤두박칠치고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용기내어 울라 치면 내 울음을 봐줄 사람이 주위에
하나도 없다는 걸 발견하곤
그냥 엉덩이만 툴툴 털곤 집으로 돌아 간다
해결되는 건 없고 앞으로도 줄곧 그럴 것이다
그 누구의 기억에도 그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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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친토마토

일상 2008. 4. 30. 01:19

도로변을 걷다가 설탕 가득 친 토마토 냄새가 났다
늦은 밤까지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는 날이면 엄마가 줄곧 내오던 야식, 설탕 뿌린 토마토.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순간 그 달콤한 냄새에 기억이 아뜩해진다
넙적하게 썰린 토마토를 다 찍어 먹고 나면 접시엔 설탕 졸인 토마토즙과 듬성듬성 빠진 토마토 알맹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 달콤한 국물을 마시기 위해 동생이랑 티격했던 날들.
무조건 한 모금씩만 먹기로 하고선 접시에 입을 갖다 대어 꿀꺽 한 침 정도의 국물만 남기곤 한 입에 후루룩 넘긴다. 입을 벌리고 있던 동생은 약이 올라 토마토 만큼 귀가 시뻘게졌다
그런 철없는 맏딸을 보며 약올리지말라며 쿠사리 주던 아버지,
싸우지 말고 니들이 가서 더 만들어 먹으라던 엄마

이젠 가족과 살지 않으니까, 도로변 저 너머에 불 켜진 아파트를 바라 보며
하염없이 마음이 시릴 때,

철원에 있는 동생은 군생활 잘하는지. 부처님귀처럼 오목하고 깊은 귀를 가진 아이.
아가땐 누운 채 울면 귀로 눈물이 또로록 굴러 들어갔다. 그게 신기해서 손으로 귀를 꽉 움켜쥐면 동생은 아프다고 왕왕 울어댔다. 조금 크더니 더이상 울지 않았다. 울고 싶을 때마다 그저 귀 끝만 빨개져선 씩씩거리기만 하더라.
어떻게 지내는지 누나에겐 늘 무관심한 놈. 껌껌한 내무반에서 귓 속으로 눈물 들여보낼 일은 없는 건지.

다시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 한 없이 서글프고 애틋해진다
기억으로 덧대어진 가족에 대한 추억을 한 없이 벗겨내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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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권리에 대한 자료를 뒤적이다가.

환자권리 침해 사례가 되는 언론기사 제목이다

'어쩔거나, 말기 암 환자 같은 우리 대학
외교부는 말기 암 환자 인가
'미국인들은 에이즈보다 더 나쁜 병에 걸렸다
민노당의 정파주의는 한국 정치의 '암적 존재'


사실 아무렇지 않게 암적 존재라는 말을 관용어처럼 썼는데, 좀 더 민감해져야겠다.
환자는 '환자인 상태'로서 긍정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은 거겠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인지 나 역시 환자문제에 예민하다. 특히 만성질환자들의 고통.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기도 힘들 뿐더러 고혈압 약이 효과가 안나타나니까 이 약 저 약 다 복용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대학병원 한번 가면 몇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갈 때마다 다른 의사가 앉아 있어서 매번 자신의 증상을 설명해야 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동네병원은 미덥지 않아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면서 환자의 피로는 높아지고 박탈감까지 생기니 원. 그런 상황들을 보고 듣고 해서인지 생각만해도 현기증이 생겨 난 그냥 병이 생겨도 안고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 몇 년 전에 고미숙샘 강의에서 들은 건데
황우석이 한창 줄기세포로 추앙받고 있을 때 한 티비프로그램에 휠체어 탄 장애인과 함께 나왔단다. 그는 장애인 분을 바라보며 '벌떡 일어설 수 있도록 해서 제대로 된 삶을 살게 해주겠다' 고 했다나 여튼 그랬단다. 그 말이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이었을까. 하지만 정말 불편한 말이다. 그 말은 곧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현 존재를 비하하고 부정하는 것이니까. 벌떡 일어서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이게 정상이라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지 않을까.

'땡땡'이 되기 위한 상태로서 현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미완된 존재가 아니라 현 상태의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며 살 수 있기.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장애를 가진 태아를 낙태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 장애인이 이렇게 답한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장애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자극 받은 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현실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할 상태에 대해서 지금-여기에서 말하는 걸 주저하진 않을 거다.
(하긴 요즘 난 미리 꽁무니를 빼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졌다.)


'차이를 인정하자' 라는 생각. 다양성 존중이란 가치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지침이 됐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까. '차이' 는 언제든지 위계화의 수단이 될 잠재성과 함께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의식있는 사람들조차 '차이는 차이로' 라는 생각을 지키는데에 부단한 용쓰기가 필요하다. '차이'라는 인식조차 사라지는 날이 오면 좋겠지. 차이를 권력으로 만드는 것들이 자꾸 폭로되고 거기에 배신감을 느끼는 부단한 자기 부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차이'를 발견하는데서 오는 창의성은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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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타임오분

일상 2008. 4. 25. 02:00


휴강이라는 말을 했었던가
수업자료를 찾느라 십오분 늦게 들어선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교실 귀퉁이 몇 평을 차지하고 있는 햇살과 드문드문 창을 통과하는 새 소리만 들릴 뿐

삼초간을 멍하니 서있는데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해방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밀려 왔다  난 잽싸게 커피 한 잔을 뽑아와선 햇살을 간신히 비켜간 곳에 앉았다

살아라 강요하던 날들도 다 지나간다
나를 위로하는 건 계절 뿐이라 생각했으므로 난 봄에 예의를 다하려 노력했다, 했을 뿐이다
봄 날씨가 좋아 어찌지 못했던 날들에도 명치는 늘 뻐근했고 그곳에 둘러앉은 체증들의 웅성거림을 견뎌야 했다  그러면서 난 살기를 강요하는 것들에 얼마나 회의가 들었던가  벚꽃 날리는 풍경은 우는 모습 같았다 그제 봄비를 맞고 추락한 꽃잎들에선 희미한 웃음을 보았다
인생이 지난 달보다 몇 편의 영화를 더 보고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글을 썼고 심지어 진정성을 이뤘고 혹 살에 와닿는 몇 평 더 큰 방으로 옮긴 것으로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니라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면 난 이 지루한 생의 반복을 앞으로 어떻게 견딜수 있는 것일까

늘 마지막이라 불리는 날엔 마무리되지 않는 것들 아니 마무리 되지 못할 것들을 서둘러 불러 모아선 함께 반성의 기도를 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여전히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일들을 '새로운 마음가짐' 하나로 반복해 나갈 뿐이다


그냥 이대로 난 이러면서 계속 살아 가겠지 이 모든 것이 과정이니까
갓난아기처럼 칭얼 거리는 나를 귀찮아 하면서도 곧 도닥여 주겠지
그리고 나는 이어 생각한다 아기들은 왜 칭얼거리는 것일까  
그런데 나 이렇게 칭얼거리기만 하다가 현명해질 순 있을까 현명해 지고 싶긴 한걸까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일부러 소리를 내 책의 한 구절을 읽는다
'산 밑바닥에서 실오라기를 뽑아내듯이 매미가 운다'

내 목구멍에서 나온 나의 것이 아닌 소리가 나를 채운다  어두운 밤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 무서움을 달래는 것처럼 소리로 존재를 색칠한다

'죽을 힘을 아아, 달리기 위해서만 바다에 이르기 위해서만 허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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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삭

일상 2008. 4. 22. 16:24


내 노트북이 제 모든 걸 깨끗이 비워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난 '지난 몇 일동안 계속 켜두고 잠들어서 그런 걸까, 무례하게 네 위에다 김밥 얹어 두고 먹어서 그런 걸까'
이건 정말이지 몹시 아끼던 때수건 분실 이후로 가장 슬픈 분실 사건이다. 그래 이건 분실도 아니다. 소멸해버렸다.  

요즘 계속 '정리하고 싶다'  '담백하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기어코 어제는 시험공부하다 말고 옷들을 수수수 다 풀어내선 필요없는 것들은 다 기증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차곡차곡 정리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 기어코 다음 날 아침 노트북이 몸소 버림의 실천을 보여주다니.  
난 지난 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처럼 지워져 가는 기억을 잃지 않으려 과거의 구석구석을 챙기고 다니진 않았던가, 뒤숭숭했던 꿈을 기억해 내려한다.

강박증처럼 기록해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비릿내 나는 내 일기들을 다시 읽을 날도 없겠지. 런던에서 찍은 사진들이 아른거린다. 아아 대추리에서 찍은 설탕 달게 넣은 고구마를 한솥 쪄서 들고 오던 한 할머니의 웃는 사진. 황새울 노을 지는 배경이었는데.
괜찮다. 어차피 '기록'에 '의존'했던 거니까. 그래도. 그립다.


서비스 센타에 가선 하드를 싹 갈아 버렸다. 건물을 나와선 슈퍼에 들러 빠다코코넛을 샀다.
빠삭빠삭 씹어 먹는다. 컴퓨터 휴지통 비우는 소리 같다. 눈물이 찔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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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land로가라

일상 2008. 4. 2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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