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이기는척

일상 2008. 4. 18. 02:15


봄볕의 강요에 못이겨 하얗게 저를 틔운 벚꽃들은 부끄러워 엉엉 울며 제 꽃잎들을 집어 던진다. 두 입술을 앙다물며 꽃을 틔우지 않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가로수들의 단식투쟁도 이제 모두 끝나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짜졌어

일상 2008. 4. 18. 02:04

자취집을 나서서 내리막 길로 쪼로록 내려가면 나오는 낡은 구멍가게
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늘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엔 900원이된 포스틱이 여전히 800원이고 700원이 된 비비빅이 아직 500원이다
흐르지 못한 외로운 시간들이 이 슈퍼에 고여 있다
500원이라 적힌 비비빅을 내 손이 집는 순간 서로 다른 두 시간이 접촉하면서 시간대가 어그러진다. 틈이 생긴다. 찢어진 허공 사이로 500원짜리 비비빅을 몇 십개 숨겨 두고 싶다.
그나저나 과자 집어 가도 모르게 곤히 졸고 있는 저 할아버지는 어느 시간대를 살고 있는 걸까. 꿈에서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흰 우유를 밥과 함께 끓이고 있을 것 같다.
'하라버지'라고 불러 본다.  
반쯤 뜬 눈으로 할아버지는 되려 내게 묻는다.
'얼마냐'
'1300원이요'
거스름돈을 마치 내게 용돈주듯 쥐어 준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선 가게를 나선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들이 보인다. 슬쩍 비껴서선 비비빅 봉지를 길게 쭉 찢는다. 성큼 베어 문다. 오래된 비비빅의 팥 알갱이가 심하게 짜져 있다. 괜찮다. 팥 알갱이들이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입 안에서 살살 녹여 먹는다. 이제 산책을 할 시간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새 이 이미지에 살지요 이야이야이야이야
Loro's 에 도재명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그가 쓴 곡. 어릴 때 그는 난초잎을 닦았다고 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그렇군요

일상 2008. 4. 16. 21:12

우리는 소통이 부족하지 않다. 반대로 우리는 소통을 너무 많이 한다. 우리는 창조가 부족하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이 부족하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형식은 정말 중요하다.
대학내일을 보다 그런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어떤 논리에서도 먹히는 '진정성'이라는 말이 굳이 써본다. 기사가 중심이 돼야 할 잡지에서 '기사'의 진정성이 안느껴진다고.
대학내일은 대학 내에서는 가장 인지도 있는 주간지다. '인지도'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대학생들이 가장 널리 보는 잡지인거지.
지난 해부터 광고가 하나 둘 많아진다 싶더니 올해 복학하곤 처음 만난 대학내일은 광고가 먼저인지 기사가 먼저인기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학내일에서 반가운 기사들을(!) 종종 만나는 지라 기어코 광고 사이를 헤집어서 기사를 찾아 읽곤 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만난 대학내일에겐 좀 화가 났다.  학생논단이나 특히 고미숙씨 인터뷰는 참 반가웠다. 얘기거리가 될 만한 글들을 실었달까. 특히 인터뷰 내용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영토의 근간을 의심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글들을 많이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광고의 욕망에 종속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글들을 광고가 과도하게 난무하는 잡지에 싣는 건 대체 기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게 한다. 학생논단은 본지와 다르므로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러려니 넘어 가고 고미숙씨 인터뷰를 보곤 '요즘은 성형수술로 온 몸을 절차탁마 하더군요. 그리고 주식으로 돈 불리는 방법 같은 실무 기술에서부터 부하를 잘 다스리는 방법 등 정신적인 것까지 다 배우고. 그렇게 해서 결국 얻는 건 중산층의 알량함뿐' '욕망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라는 내용을 보고 끄덕끄덕 자극을 많이 받았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자 마자 늘씬한 연예들이 떼로 나와 과소비와 절차탁마를 강요하고 취업의 압박을 주는 정보로 도배되는 모순되는 상황이란. 좋은 글은 글대로 보고 광고 무시하기엔 대학 내에 독주하는 잡지로서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이경순, 최하동하 감독의 '애국자 게임'을 보면 말이다. 당대비평에 글을 쓰는 임지헌 교수가 조선일보에 체게바라 관련 글을 기고한 것을 보고 감독이 임교수를 찾아가선 묻는다.
'교수님이 쓰신 체게바라의 글로써 전유했다고 표현하셨잖아요. 독자들을 전유했다면
그런 사람들을 정작 '글을 쓴 필자'가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그 사람을 전유한 것인가 그 글을 '실어주는 조선일보'가 그 모두를 다 전유한 것이 아닌가' 라고.
임교수는 조선일보에 게바라 글을 쓰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한다.
그러자 감독은
'이런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체게바라라는 어떤 그 약을 주는데 그 약의 뒷면에는 박정희의 얼굴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조선일보가 이렇게 커졌던 하나의 물리적인 역할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독을 이제 끊어줘야 되지 않는가 .'라고.

대학내일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극단적인 예이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무엇을 담는 형식은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공적인 글쓰기를 담는 틀은 더욱 중요하다는 걸.

글이라는 게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특히 기사라면 말이다. 더욱이 독자를 상대로 한 힘 겨루기잖아. 기사를 전달하고 싶은 걸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거고 소통하고 싶은 거고. 그런데 대학내일은 너무 심하다 싶다. 매끈한 기사 위에 버젓이 광고가 박혀 있는 거나 도저히 기사에 집중할 수 없게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나오는 광고들. 잡지를 집어들자마자 눈에 띄는 책갈피를 위장한 광고까지. 이제 절제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건 니들은 기사 써라 방목시키고 자본을 끌어 들일 수 있는 틀에다가 학생들이 쓴 기사를 끼워넣기 식밖에 안되는 거다. 취업과 인턴정보만이 유효한 잡지를 자기부정하고 넘어 섰으면 좋겠다.


이렇게 비판할 수 있는 건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무력해지는 것이 대학내일 어디를 뒤져보아도 표방하려고 하는 게 없다는 거다. 그저 '내일신문'의 자매지라는 설명과 내일신문에 대한 친절한 설명들 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광고 많이 담으려고 만든 거야 라고 말해버리면 할 말 없는 거다.

좋은 글들을 발견할수록 그리고 모순되는 형식의 배치를 발견할수록 더욱이 이 잡지가 대학생들에게 가장 널리 익힌다는 사실을 생각할수록 한 없이 안타까워지는 일이다. 대학내일이 내일신문을 먹여 살린다는 농담섞인 말을 들으면 왜 대학생을 상대로 이런 장사를 하나 싶다. 굳이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더라도 좀 자제하시고 결벽증을 보였으면 좋겠다.

담론의 부재 운운하는 대학 내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잡지가 최소한의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뭘카너

일상 2008. 4. 13. 01:20


-알라뷰할라방구베베
-뭘카너
-왈랴샹샹블라뱅가베베
-떵까이야야 마샨샤오딩 오안냐마숩?
-오 링가링가 뚜뚜루둡
-빵상 고렐라링우멜랑꼴라레우디 히유우..
-빠빠숑 뚤라뚤리 욤요닝요딩


<배꼽나라에서 온 고굼여사와 감자아줌의 대화>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선동은 당장에는 관객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지만 복잡하게 뒤엉켜 돌아가는 정치 엘리트와 자본 엘리트의 교묘한 네트워킹에 맞설 대중의 능력을 고양시키지는 못한다."

<씩코>보면서 통쾌함과 동시에 느꼈던 무기력함


"민주주의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권력자들은 국민을 절망에 빠트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들어 투표하지 않게 만드는 흔한 수법을 쓴다고 그는 말한다. 투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성취되지 않는다.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고 정치가들은 그들의 대리 권력 행사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 방식에 여전히 회의감이 드는 나지만, 최선책을 위해 차근차근 행동하지도 않는 나같은 소시민은 투표라는 성실함을 보여야 한다는 걸.


"대중은 정치가들을 욕하지만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거울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늘 그 점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정치가들의 수준이 후지다면 그들을 뽑은 국민의 수준이 후진 것이다. 국민은 똑똑한데 정치 시스템은 낙후돼 있다는 식의 얘기는 정치인들이 먼저한다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도 어느 때보다 파워 엘리트들과 그들만의 세상이 당당하게 펼쳐지고 있다. "

우리나라의 지독한 엘리트주의는 정말 문제다. 온 국민이 엘리트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중심으로 가겠다는 열망에 짓밟고 경쟁 또 경쟁. 그렇게 해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떤가. '과정'에서 배운 못된 것들을 그대로 답습해선 결국 자기 이권만 챙기고. '진짜 엘리트들은 자기 재능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했다. 엘리트 엘리트 하지만 실제 엘리트라는 개념 안은 텅 비어 있다.


필름2.0 김영진의 러프 컷 '<식코>, 한국의 묵시록' 중에서 발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며칠 전 방 건조하지 말라고 물을 축여 놓은 걸레가 몸을 뒤틀다 굳은 채 말라 있다. 어설프게 뚜껑을 쓰고 있는 까스활명수 한 병이 웅크리고 있는 제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는 듯한 난로가 지친 듯 내 앞에 있다.  
앞으로 걸어 가고 싶지 않다. 되돌아 가고 싶지도 않다. 퉁퉁 발을 크게 굴리면 이 지점에서 얼음이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 척수가 아리는 그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으면. 잠을 자고 싶지도 깨어 있고 싶지도 않으면.

그래도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마주하며 나는 웃는다. 그런데 가끔 나를 살게 하는 것들 때문에 나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난 삶과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은 얼마나 위대한 건지 새삼 느낀다.  

쪼그려 앉아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았다. 마츠코는 살인을 하곤 베란다에서 몸을 날려 자살하려다 반사적으로 난간에 매달린다. 들려오는 나레이션 '그런데도 아직 내 몸은 살고 싶어했습니다' 뭔가 나를 퉁 치며 온 몸이 울렸다. 내 몸이 그걸 보고 운다.  
지난 밤 꿈에 호텔의 연회장엘 들어섰는데 검은 옷을 입은 아기가 바닥에 코를 박고 잠을 자고 있었다. 놀란 나는 달려가 아기를 똑바로 뉘었다. 돌아 눕히자 하얀 얼굴에 퍼지는 쌔근 하는 숨소리에 나는 마음이 놓여 펑펑 울었다.

이 조마조마한 허무함은 무엇인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

일상 2008. 4. 10. 22:1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업시간에 취업특강을 했다.

'평생 얼마만큼의 돈이 들 것 같아요?'

'20억~'
'15억!'
'30어억'

그때 난 '꿈도 크다' 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천만원대를 넘어 1억원을 침바르며 세고 있던 중.

'18억 정도입니다'

어버버. 꼬깃꼬깃한 지폐들이 슬프게 나를 쳐다보며 '그렇다네요..'

계속되는 친절한 강의

'여러분 공책에 한번 적어보면서 계산해보세요
생활비가 5억
공교육비가 1억 5천 사교육비 더하면 블라블라
노후자금이 몇 억 블라블라 $%&@!
결혼비용이 여자가 7천만원 ^&#@#
*%$$$

이래서 울엄마가 나를 구박하는구나

난 정신차렸을까요.



나랑 상관없는 얘기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넌 니 주위 사람 생각은 안하냐?'
이젠 울엄마도 날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것 같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계속 내 철학만 씨부렁씨부렁

나도 알고 있는 걸. 내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인생은 한번 뿐이라고 말하는 나의 실체를.
서울 오고 싶다고 기어코 다시 공부하면서 내가 끼친 민폐들..
'아빠도 하루에 몇 번씩 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걸 참고 해나가는 게 인생이다'
라고 말하는 아부지한테는 '아부지의 욕망에 충실하세요. 더 즐겁게 살 수 있어요' 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나.
이 모순 떵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수업에서 교수님이 마음 좋은 웃음을 헛헛 날리시며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이미 대학까지 들어 왔으니까 여기에서 벗어나려는게 그냥 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이미 경쟁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만큼 이런 삶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버려야할 것들이 많다는 증거니까. 저도 한번 도망가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헛헛.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사세요. 헛헛'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내 안의 기운이 배우적인 태도로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걸 일상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현장에서도 조명이 들어온다고 해서 바로 행복한 건 아니다. 뭔가 기운이 안 돌아갈 때가 있다. 오히려 일상에서 그런 기운이 조금씩 느껴진다. 사실 누구나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운들이 다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응용하고 펼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지금 행복하시나?

어느 정도. 한 50% 정도? 나머지 반은 여전히 찾아야할 것 같다. 얼마 전에 꼬마 성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큰 스승이 한 아이만 편애를 하니까 제자들이 질투를 한다. 그걸 무마하기 위해 스승이 새를 한 마리씩 잡은 뒤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죽여서 해질녘에 가져오라고 했다. 다들 시킨 대로 새를 죽여서 가져왔는데 편애받는 꼬마는 죽이지 않고 새장에 가둬서 가져왔다. 왜 그랬냐 하니까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못 죽였다고 그러는데 그 말이 가슴이 와 닿더라. 누군가 안 본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필름 2.0'  배우 기주봉 인터뷰 중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